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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놓고 돈 먹기” MZ세대 알트코인에 올인…정부, 운동장·룰 만들 생각도 안 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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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4호 08면

[SPECIAL REPORT] 코인 광풍 

4월 29일 오후 한 암호화폐 거래소 현황판에 알트코인 시세가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4월 29일 오후 한 암호화폐 거래소 현황판에 알트코인 시세가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암호화폐에 투자하는 친구 대부분이 자신이 투자하는 코인이 어떤 코인인지도 모른다. 솔직히 알 필요도 없다. 암호화폐 투자는, 어릴 때 하던 홀짝 게임이나 지금도 가끔 하는 사다리 타기 게임과 다를 바 없다.” 서울 마포구에서 사는 대학생 윤덕희(22)씨는 암호화폐 투자를 “돈 놓고 돈 먹기”라며 이렇게 말했다. 주변의 많은 사람이 하지만, 대개 어떤 상품에 투자하는지도 모르고 분위기에 휩쓸려 투자한다는 것이다.

운 좋으면 대박, 아니면 쪽박 #비트코인보다 가격 싸고 변동률 커 #2030 밀물, 국내 거래량 비중 94% #30분 만에 10만% ‘돈복사’ 되기도 #“거품 끼어 있는 것 알지만 뛰어들어” #정부, 불개입 원칙 고수 사실상 방치 #“투자 상품 인정, 엄격히 관리해야”

그럴 만도 하다. 최근 비트코인을 위시한 암호화폐시장엔 광풍이 몰아치고 있다. 국내 암호화폐 하루 거래대금은 25조원 수준으로 국내 주식 거래 규모를 넘어섰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병욱 의원(더불어민주당)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4대 암호화폐 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 신규 가입자는 249만5289명에 이른다. 신규 가입자 10명 중 6명은 2030세대(MZ세대)다. 20대가 81만6039명으로 전체의 32.7%에 이른다. 30대는 76만8775명으로 30.8%를 차지했다. 특히 취업포털업체인 사람인에 따르면 3명 중 2명은 코인 투자를 시작한 지 불과 6개월이 안 되는 초보다.

상승·하락 무제한, 365일 24시간 거래

직장인 185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43.1%가 투자 기간 1~6개월, 23.8%가 1개월 미만이라고 밝혔다. 6개월~1년 미만이라고 답한 비율은 10.7%였다. 올해 들어 불어 닥친 암호화폐 광풍 때 입문한 초보 투자자, 즉 ‘코린이(코인+어린이)’가 대부분이란 뜻이다. 이 같은 암호화폐 열풍은 비단 한국만의 풍경은 아니다. 지난해 말부터 비트코인 가격이 수직상승하면서 전 세계에서 암호화폐 투자 열풍이 불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선 암호화폐 중에서도 유독 변동성이 큰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암호화폐) 투자 비중이 높아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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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암호화폐 투자정보를 집계하는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세계 암호화폐시장에서 비트코인의 거래량 비중은 30% 정도인데, 한국에선 6%에 불과하다. 나머지 94%는 알트코인 투자라는 얘기다. 업비트가 알트코인의 거래량·가격을 지수화한 알트코인인덱스(UBAI)는 26일 현재 7543.01로 지난해 말(12월 31일 1707.52)보다 5배가량 불어났다. 업비트 운영사인 두나무의 이수진 이사는 “알트코인 투자자가 크게 늘고, 이에 따라 몸값도 급등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빗썸의 알트코인지수(BTAI) 역시 지난해 말 899였으나 26일 현재 3463으로 급등했다.

알트코인은 그나마 가격이 안정된 비트코인과 달리 변동성이 클 뿐만 아니라 실체가 없는 예가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게 도지(DOGE)코인이다. 도지코인은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시장을 풍자하기 위해 ‘재미 삼아’ 만든 것으로 실질적인 사용처가 없다. 그런데도 유명인의 말 한마디에 수백 % 급등하기도 한다. 이런 알트코인이 전 세계에 2만여 개가 넘는다. 김한진 KTB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알트코인의 변동성 자체가 2030이나 코린이에겐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가격이 십원대, 백원대여서 적은 돈으로도 투자할 수 있는 데다 운이 좋으면 단 며칠 새 수백 %에 이르는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실제 지난달 20일 빗썸에 상장한 알트코인 아로와나토큰(ARW)은 이날 오후 2시 30분 50원에 거래를 시작했는데, 오후 3시 1분 5만3800원까지 치솟았다. 30분 만에 10만% 급등한 것이다. 50원에 1000만원어치를 사서 3시 1분에 팔았다면 1000만원이 불과 30분 만에 100억원이 된 것이다. 흔히 암호화폐 가격이 급등할 때 쓰는 말로 ‘돈복사’가 이뤄진 것이다.

이 같은 투기 장세를 전문가들은 ‘더 큰 바보 이론’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비싸게 구매한 자신이 ‘바보’라는 것을 알지만, 더 비싼 값에 사 줄 ‘더 큰 바보’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투자에 나선다는 것이다. 취업준비생이자 암호화폐 투자자인 김모(26)씨는 “시장에 거품이 끼어 있다는 것을 잘 안다”며 “하지만 ‘나만 아니면 돼’라는 생각에 계속 뛰어들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암호화폐 투자 접근성도 나쁘지 않은 편이다. 주식과 마찬가지로 암호화폐 거래소에 가입한 뒤 거래소가 중개하는 종목(코인)을 사고팔면 된다. 다만 주식시장은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제한된 시간 내에 거래해야 하고 하루 상승·하락 폭이 30%로 정해져 있지만, 암호화폐는 무제한이다. 1년 365일 24시간 거래할 수 있다. 상한가나 하한가도 없어 단 몇 분, 몇 시간 만에 1000% 상승, 99% 하락 사례도 나온다. 주식과 또 다른 점은 거래소마다 거래할 수 있는 암호화폐가 다르다는 점이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거래소가 자체 심사를 통해 상장한 암호화폐만 거래 중개를 하기 때문이다.

국내 알트코인 종류 미국보다 훨씬 많아

거래소는 보통 암호화폐 거래 1건당 수수료로 돈을 버는 구조로, 거래소로선 더 많은 종류의 암호화폐를 취급하는 게 유리하다. 국내 거래소가 미국 등지의 거래소보다 취급하는 암호화폐 수가 많은 이유다.

업비트는 178개, 2위 빗썸은 170개를 취급한다. ‘수익 극대화’를 꿈꾸는 투자자와 ‘매출 극대화’를 노린 거래소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생긴 현상이란 분석이다. 국내 거래소가 ‘알트코인 투기에 판을 깔아줬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가 암호화폐시장이 과열 양상을 빚을 때마다 ‘거래소 폐쇄’ 카드를 꺼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거래소 폐쇄만이 능사가 아니라 세계적인 암호화폐 투자 흐름을 인정하고, 투자자가 제대로 뛰어놀 수 있는 ‘운동장’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투자자를 보호하라’는 게 아니고 암호화폐가 투자 상품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투자자·거래소·재단(암호화폐 개발사)을 한 데 모을 수 있는 운동장을 만들고 이들이 각각 자신의 위치에서 정당하게 플레이할 수 있는 룰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주식시장처럼 종목(암호화폐) 상장을 엄격히 관리하고, 재단에겐 공시 의무를 부과하는 식이다.

지금은 각 거래소가 ‘알아서’ 상장하고, 상장 이후 공시는 재단 ‘마음대로’다. 정부는 관련 법이 없고, 암호화폐는 화폐나 금융상품이 아니라는 이유로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면서 사실상 시장을 방치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의 한 관계자는 “주식시장처럼 잘 짜인 운동장에선 투자로 손해를 보더라도 그건 정부가 아닌 전적으로 투자자 책임”이라며 “거품이 언젠가 터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지금처럼 정부가 운동장 만들 생각을 안 하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김형중 고려대 암호화폐연구센터장은 “3월 시행된 개정 특정금융정보거래법은 암호화폐를 ‘가치가 있는 자산’으로 인정하고 있다”면서 “정부는 이를 애써 부인할 게 아니라 법의 취지를 받아들이면 된다”고 말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도 “암호화폐 문제를 놓고 정부와 여당이 우왕좌왕, 갈피를 못 잡고 있는데 암호화폐에 대한 제도 등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황정일 기자, 윤혜인·오유진 인턴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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