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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봄 맞은 이스라엘 대사관, 문 앞엔 다윗의 별과 태극[시크릿 대사관]

중앙일보

입력

최근 서울 한남동 대사관저에서 인터뷰 중인 아키바 토르 이스라엘 대사. 임현동 기자

최근 서울 한남동 대사관저에서 인터뷰 중인 아키바 토르 이스라엘 대사. 임현동 기자

올봄, 이스라엘엔 자유가 찾아왔습니다. 백신 덕분이죠. 수도 텔아비브의 거리 카페엔 사람이 북적이고, 해변가엔 일광욕 인파가 돌아왔어요. 마스크를 꼭 쓰지 않아도 되는 곳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백신 모범국, 이스라엘의 저력입니다.

이스라엘을 대표해 한국에서 근무하는 인물이죠, 아키바 토르 주한 이스라엘 대사의 생활은 어떨까요. 서울 중구 이태원의 고즈넉한 주택가에 자리잡은 관저 문을 두드렸습니다. 관저 문이 열리고 방문객을 제일 먼저 맞는 건 그림 한 점인데요. 태극기의 태극과 이스라엘 국기의 다윗의 별이 사이좋게 나란히 그려져 있습니다. 무려 토르 대사의 딸이 한국과 이스라엘의 관계 발전을 기원하며 직접 그렸다고 합니다. 대사의 보물이죠.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저에 들어서자마자 손님을 맞는 그림. 아키바 토르 대사의 딸이 직접 그렸다. 한국의 상징인 태극과 이스라엘의 상징인 다윗의 별의 화합을 뜻한다. 임현동 기자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저에 들어서자마자 손님을 맞는 그림. 아키바 토르 대사의 딸이 직접 그렸다. 한국의 상징인 태극과 이스라엘의 상징인 다윗의 별의 화합을 뜻한다. 임현동 기자

토르 대사는 지난해 12월 문재인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정했습니다. 임기를 시작한 지 100일이 채 되지 않은 셈이죠. 지난 2월 본국에서 백신을 맞으러 오라고 했지만 임기 초반 임무에 집중하고 싶어 미뤘다고 합니다. 그만큼 한국 근무에 애정이 깊은 거겠죠. 그러다 지난달에서야 이스라엘로 잠시 귀국해 백신을 맞았고, 마스크 없이 친구들과 라이딩도 즐겼다고 합니다. 기사 후반 영상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어떻게 백신 모범국이 될 수 있었을까요. 대사의 설명에 따르면 정부 차원에서 ‘웃돈(얼마인지는 비밀이랍니다)’을 감수했고, 제약회사 측에 ‘우리가 백신 실험국이 되겠다’고 어필한 게 주효했다고 합니다. 유력 일간지 중엔 처음으로 이스라엘 현지를 취재한 본지 취재진의 기사 등, 자세한 내용은 아래 기사를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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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백신 접종 속도만 부러울까요? 아닙니다. 요즘 우리 일명 ‘서학개미’들도 관심이 지대한 나스닥(NASDAQ) 잘 아시죠? 미국의 3대 증권거래소이자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에서 상장된 기업 국적 중 미국ㆍ중국에 이은 3위 국가가 어디일까요? 이스라엘입니다.

면적은 대한민국의 약 5분의 1인 220만7000헥타아르로 세계 150위이고, 인구는 서울특별시보다 적은 878만명인 이스라엘 사람들이 만들고 상장시킨 기술 관련 기업에 세계에서 3번째로 많다는 얘기입니다. 놀랍죠. 이스라엘 특유의 후츠파(Chutzpahㆍ담대함) 정신의 결과입니다.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하누카 촛대.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의 손님용 찻잔에도 새겨져 있다. 임현동 기자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하누카 촛대.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의 손님용 찻잔에도 새겨져 있다. 임현동 기자

토르 대사는 그러나 겸손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국토가 좁다보니 산업화 베이스가 없고 제조업이 약하다”며 “바로 이점에서 제조업과 마케팅 능력이 뛰어난 한국과 경제 협력의 잠재력이 엄청나다”고 말이죠. 한국과 이스라엘이 경제 및 산업에서 환상의 짝꿍이 될 수 있단 얘기죠.

아마 중동 정세에 민감하신 분들은 아마 이런 질문을 하시지 않을까 싶네요. 이스라엘과 관계를 맺으면 중동국가들이 싫어하지 않을까? 실제로 이란 등 중동 원유 의존도가 높은 국내 업계 특성상 중요한 질문입니다. 하지만 중동은 지금 변하고 있습니다. 중동 스스로가 오일머니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신(新) 중동’으로의 패러다임 쉬프트가 한창 진행 중인 거죠.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 이스라엘과 중동의 관계 설정도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토르 대사가 관저에서 소중히 간직하는 아이템에도 이런 의미가 녹아있어요. 바로 이겁니다.

이스라엘 대사관의 하누카 촛대와 모스크 장식품. 모스크 장식품은 주한 UAE 대사의 선물이다. 전수진 기자

이스라엘 대사관의 하누카 촛대와 모스크 장식품. 모스크 장식품은 주한 UAE 대사의 선물이다. 전수진 기자

이슬람 사원의 모스크를 표현한 장식품이지요. 다름 아닌 주한아랍에미리트(UAE)의 압둘라 사이프 알 누아이미 대사가 토르 대사에 선물한 거라고 합니다. 이스라엘과 UAE는 평화협정도 맺으며 신 중동 패러다임의 새 장을 열었죠. 토르 대사는 이 선물을 이스라엘의 상징인 하누카 촛대 옆에 두고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고 합니다.

토르 대사는 “이스라엘과 관계를 공고히 하면 한국과 중동의 관계가 마이너스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오해”라고 강조했죠. 이스라엘과 한국의 경제협력, 이 정도면 이제 위기가 아닌 기회의 창으로 봐야할 것 같습니다.

압둘라 사이프 알 누아이미(오른쪽) UAE대사를 관저로 초청해 식사를 겸한 환담 중인 토르 대사.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제공

압둘라 사이프 알 누아이미(오른쪽) UAE대사를 관저로 초청해 식사를 겸한 환담 중인 토르 대사.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제공

진지한 얘기만 한 것 같은데요, 사실 토르 대사는 농담도 뛰어나고 분위기를 부드럽게 이끄는 천상 외교관입니다. 한국 문화 공부도 열심히 했는데요. 부임 전부터 한국의 영화와 TV드라마 등을 열심히 봤다고 합니다. 좋아하는 한국 문화 작품이 있냐고 물으니 아예 직접 적어온 목록을 보여줬는데요,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과 ‘마더’부터 송해성 감독의 ‘파이란’ 등 다양한 작품을 줄줄이 읊으며 “아름답고 주옥같은 작품들이 너무 많다”고 하더군요.

한국에서 흥행은 실패했지만 높은 평가를 받았던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 같은 작품도 다 챙겨봤다고 합니다. 문학 작품도 열심히 읽고 있는데 한강의 ‘채식주의자’ 등이 인상 깊었다고 하네요. 등반이 취미인터라 인수봉과 같은 한국의 명산명소에도 관심이 크고요.

아키바 토르 대사의 특기 중 하나인 기타. 임현동 기자

아키바 토르 대사의 특기 중 하나인 기타. 임현동 기자

대사의 이런 행보에 맞추어 이스라엘 대사관은 트위터·페이스북에서도 다양한 활동을 하는데요, 한국과 관련한 콘텐트가 많아요. 최근 '인싸 아이템'이 된 접는 김밥을 이스라엘 식으로 만드는 영상을 선보이는 식이죠.

토르 대사는 라이딩을 즐기는 스포츠맨이기도 하다. 한국의 명산도 모두 방문해보고 싶다고. 이스라엘 대사관 제공

토르 대사는 라이딩을 즐기는 스포츠맨이기도 하다. 한국의 명산도 모두 방문해보고 싶다고. 이스라엘 대사관 제공

그런 그가 꼭 이루고 싶은 목표 중 하나는 한국 대통령의 이스라엘 방문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대통령의 방한은 수차례 성사됐지만 반대의 경우는 없었다고 하네요. 토르 대사는 “한국과 이스라엘은 비극적 역사를 딛고 일어섰다는 점과,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높다는 점 등 공통점이 많다”며 “앞으로 더 무궁한 양국 관계 발전이 기대된다”고 밝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정한 뒤 정의용 외교부장관과 함께 기념사진 촬영 중인 아키바 토르 대사.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정한 뒤 정의용 외교부장관과 함께 기념사진 촬영 중인 아키바 토르 대사. [청와대사진기자단]

마지막으로 한 가지 좀 엉뚱한 질문을 던져봤는데요. 일부 극우 성향의 일명 ‘태극기 집회’에서 이스라엘 국기가 등장하는 걸 본 적이 있냐고 물었죠. 있다는군요. 토르 대사는 “좋은 뜻으로 들어주시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극단적 성향의 장소에서 우리 국기가 등장하는 것은 조금 당황스러운 면도 있다”고 답했습니다.

글ㆍ영상=전수진ㆍ김선미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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