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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재산' 구분 못했을까···윤희숙은 모를 '이재명 비밀'

중앙일보

입력

이재명 경기지사가 지난 25일 주장한 ‘재산비례 벌금제’ 를 둘러싼 논란이 정치권에서 이어지고 있다. 동일 범죄에 동일한 벌금을 내는 현재의 총액 벌금제 대신, 경제 사정에 따라 벌금을 달리 매기자는 것이 핵심이다.  그는 “(총액)벌금형이 빈자(貧者)에게 더 가혹하다”며 “핀란드는 1921년, 독일도 1975년에 이(재산비례 벌금제) 제도를 도입했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연합뉴스

이재명 경기도지사. 연합뉴스

대선 앞둔 이재명, 공정ㆍ친문ㆍ여론 이슈 포섭 전략

4ㆍ7 재ㆍ보궐 선거 후 한동안 잠행했던 이 지사가 재산비례 벌금제를 화두로 꺼낸 이유는 대선후보 경선을 앞두고 공정 이슈를 선점하겠다는 포석으로 읽힌다. 그는 지난해 말부터 “다음 대선의 화두는 공정”, “시대의 중요한 화두가 공정”, “공정한 룰이 지배되는 사회를 만드는 게 시대적 과제”라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공정 이슈를 거론하고 있다. 이번 제도에 대해서도 “보다 근본적으로 실질적인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란 표현을 썼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5일 오전 9시 30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페이스북 캡처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5일 오전 9시 30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페이스북 캡처

재산비례 벌금제가 특히 진보 진영의 전통적 의제였던 부분도 주목할 점이다. 일수 벌금제(日收罰金制)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려온 이 제도는, 18대 국회에서 조승수 당시 진보신당 의원이 ‘일수벌금제도의 도입에 대한 특별법 제정안’을 처음 발의한 이래, 지금까지 유성엽ㆍ박완주ㆍ김영록ㆍ김기준(이상 19대)ㆍ이상민ㆍ최재성(이상 20대)ㆍ이탄희ㆍ소병철(이상 21대) 의원 등 진보 진영 인사들이 법안 발의를 주도해왔다.

일반인에겐 생소한 '일수 벌금제'란 표현을 ‘재산 비례’ 개념으로 공론화시킨 건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전 법무장관이다. 문 대통령은 2017년 대선에서 ‘차등 벌금제’란 공약을 내놓으며 “재산에 따른 벌금납부 형평성 문제를 시정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2019년 조국 당시 법무장관 후보자는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임을 강조하며, “현행 ‘총액 벌금제’를 ‘재산비례 벌금제’로 바꿔 형벌의 실질적 평등을 달성하겠다”고 말했다. 조 후보자 발언 직후 민주당은 법무부와 함께 재산비례 벌금제 도입을 추진하기도 했다.

이 지사가 엄밀하게는 ‘소득비례 벌금제’를 도입한 핀란드와 독일을 사례로 들면서도 굳이 ‘재산비례 벌금제’라는 표현을 쓴 것도 결국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사쯤 되시는 분이 ‘소득’과 ‘재산’을 구별하지 못한다”(윤희숙 국민의힘 의원)는 비판이 나왔지만, 이 지사는 “재산비례 벌금제는 벌금의 소득과 재산 등 경제력 비례가 핵심개념”이라며 윤 의원의 독해력을 문제 삼았다. 학계에서도 “아직 이 제도가 국내에 안착한 적이 없기에 용어 혼선이 있을 수 있다. 입법 취지가 중요하지, 용어는 차후에 정립해도 늦지 않다”(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반응이 있다.

각 국가별 일수벌금제 도입 현황 국가.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각 국가별 일수벌금제 도입 현황 국가.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수도권 초선 의원은 “그간 이 지사는 기본소득을 주요 의제로 끌어왔고, 그 과정에서 친문(親文) 진영과 갈등을 빚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을 비롯한 진보 진영 전체의 오랜 의제를 화두로 던지면 비문이나 반문 이미지를 중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지사의 이번 주장엔 단순히 정책적인 의미뿐 아니라 정무적인 의도까지 포함돼 있다는 뜻이다. 이 지사 측 관계자도 “이 지사가 틈만 나면 원팀을 강조하고 있지 않나. 이번 주장도 그런 차원에서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국책연구기관 조사 결과 재산비례 벌금제 찬성 비율이 높은 것도 이 지사에겐 추진 동력으로 작용한다. 이 지사는 “한국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일반인 76.5%가 ‘재산비례 벌금제’ 도입을 찬성할 정도로 우리나라도 사회적 공감대가 높다”고 말했다. 이 지사와 가까운 수도권 의원은 “재산비례 벌금제는 시대적 화두인 공정에 들어맞는 제도”라며 “주로 생활범죄에 부과되는 벌금형 개선을 통해 민생에 영향이 있는 생활밀착형 검찰개혁을 해 나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개인 소득 파악 어려워…기본소득과 모순 지적도

하지만 개인 자산 파악이 쉽지 않다는 점과 불법 정도에 따라 형벌이 정해져야 한다는 점(책임주의 원칙)을 위반한다는 논란이 있다. 지난 수십년간 번번이 제도 도입이 무산됐던 이유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일본도 과거 일수 벌금제 도입을 논의하다 경제 사정에 대한 정확한 조사가 어렵다는 이유에서 무산된 적이 있다. 영국도 1988년 시범 도입했다가 경제 사정을 파악하는 데 업무가 가중된다는 이유 등으로 6개월 만에 폐지됐다.

특히 개인 자산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지적은 ‘보편복지 대 선별복지’의 주요 쟁점이기도 하다. 보편복지를 옹호하는 측에선 “선별을 위한 행정적 비용과 시간이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선별복지론을 비판한다. 이재명 지사의 대표 브랜드인 기본소득이 바로 보편복지를 바탕으로 둔다. 익명을 원한 법학 교수는 “이 지사가 둘 다 주장하는 건 이율배반 아니냐”고 했다. 다만 율사 출신의 이 지사 관계자는 “복지인 기본소득과 형법 문제는 전혀 다른 문제다. 그런데도 이를 엮는 건 이 지사 반대론자들의 주장일 뿐”이라고 했다.

재산비례 벌금제에 대해 다수의 전문가는 “제도의 취지는 옳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출신인 노희범 변호사(법무법인 제민)는 “개인 자산 파악이 아무래도 가장 큰 난관이다. 소득 파악이 용이한 ‘유리 지갑’이 더 피해를 볼 수도 있다"며 "하지만 논의도 전에 포기하기보단, 각계 인사들이 활발하게 토론해서 틀을 잡아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준영 기자, 김보담 인턴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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