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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독립' 팔 걷은 정부…정작 업계 "중복투자 우려"

중앙일보

입력

정부가 차량용 반도체를 중심으로 반도체 산업의 국내 생산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이런 정부의 지원 움직임을 환영하면서도, 중복투자에 따른 과잉 공급을 우려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리는 확대경제장관회의에 앞서 참석자들과 환담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리는 확대경제장관회의에 앞서 참석자들과 환담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5일 주재한 확대경제장관회의에서 “자국 중심으로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그 움직임이 가장 뚜렷한 업종은 반도체”라며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우리가 계속 주도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의 반도체 공급망 강화 지시는 미국 등 다른 나라 반도체 생산능력 확대 움직임에 대한 대응 성격이다. 앞서 12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업계 관계자들과 '반도체 공급망 대책 회의'를 열고 글로벌 기업의 자국 내 투자를 요구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세액공제 등 파격적 정부지원과 차량용 반도체 생산 능력 확충을 담은 ‘K-반도체 벨트’ 대책을 상반기 중 준비 중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외부요인에 흔들리지 않은 자체 반도체 공급망 강화하는 내용이 담길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급처 변경 필요” 응답 기업 7% 불과

하지만 이런 정부 정책 방향과 달리 정작 기업들은 공급망 변경에 소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22일 502개 표본기업을 설문한 결과 공급처를 다른 나라로 변경할 필요성에 대해 “그렇다”고 한 곳은 응답한 171개 기업 중 7%에 불과했다.

수입처 다변화 대응 여부를 묻는 설문에는 63.4%가 “대응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2019년 일본 수출규제에 이어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겪으며 공급 불안을 경험했는데도 공급처를 바꾸거나 다변화할 생각이 거의 없는 셈이다.

수입처 선택 이유 설문조사 결과.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수입처 선택 이유 설문조사 결과.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기업들이 공급망 변경에 소극적인 이유는 현재 글로벌 가치사슬(GVC)이 가지고 있는 이점 때문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조사에서 중국을 수입처로 둔 기업의 77.2%는 '가격 경쟁력 우위'를 장점으로 꼽았다. 일본을 수입처로 둔 곳 중 86.5%는 '기술력 부족과 국내 미생산', '좋은 품질 때문'에 거래처로 이용한다고 답했다. 이 같은 경제적·기술적 장점 덕분에 현재 조달처를 대체할 수 있는 나라가 있느냐는 질문에 93%가 “없다”고 답했다.

“투자 지원 옥석 가려야”

전문가들은 정부가 무조건 자체 생산을 강화를 지원하기보다 옥석 가리기를 통한 전략적 투자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공급 안정만을 강조한 채 무리하게 투자를 늘리면 결국 나중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 수급난에 멈춰선 현대차 아산공장. 정부는 공급망 안정을 위해 차량용 반도체 국내 생산시설 확충을 추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도체 수급난에 멈춰선 현대차 아산공장. 정부는 공급망 안정을 위해 차량용 반도체 국내 생산시설 확충을 추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표적인 것인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차량용 반도체 생산능력 확충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지금 차량용 반도체 부족은 코로나19에 따른 수요예측 실패로 나타난 일시적 현상”이라면서 “이를 무시하고 자립화를 한다며 생산 시설을 늘렸다가 나중에 되레 공급과잉이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한국은 결국 반도체 제조국이기 때문에 반도체 자체가 아니라 반도체를 만드는 데 필요한 핵심 공급망을 강화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면서 “자체 생산 안정만 강조해 지원하면 기업들이 불필요한 중복투자를 하게 되고 그 피해는 결국 다시 기업들이 지게 된다”고 말했다.

세종=김남준 기자 kim.nam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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