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항공권 3000원 vs 그린피 28만원…코로나19 명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5면

골프 일러스트

골프 일러스트

#직장인 이영수(45) 씨는 친구와 주말 골프장을 예약할 때마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골프장 그린피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올랐기 때문이다. 국내 대중(퍼블릭) 골프장을 가려 해도 1인당 그린피로 20만원 이상을 내야 한다. 주말에 웬만한 수도권의 골프장 그린피는 25만~28만원을 넘는다. 여기에 캐디피도 올라 13만~15만원쯤 한다. 카트 사용료 12만원은 별도다. 지난해 초만 해도 카트 사용료는 8만원, 캐디피는 12만원 정도였다. 이 씨는 “코로나19로 국내 골프장이 만원이라지만 최근 가격은 지나친 것 같다”고 말했다.

수요 늘었지만 가격 흐름 정반대 #이달 국내선 이용객 193% 증가 #항공사 출혈 경쟁에 가격은 바닥 #골프장은 고객 몰려들어 상한가

# 지난 15일 ‘청주~제주’ 노선 운항을 시작한 저비용 항공사(LCC) 에어로케이는 편도 3000원(평일 기준)에 제주 항공권(유류 할증료 및 세금 등 포함 총액 9200원)을 판매했다. 에어부산도 부산에서 제주로 가는 편도 항공권을 8600원에 내놨고, 제주항공은 회원에 한해 이달 21일까지 모든 국내선 항공권을 9900원부터 판매했다. 항공업계에선 요즘 “커피 한 두잔 안 마시면 제주까지 갈 수 있다”는 자조 섞인 농담이 나온다.

국내선은 코로나 이전 수요 회복

레저용품 매출 증감.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레저용품 매출 증감.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골프와 제주 항공 노선의 수요는 모두 크게 늘었지만 가격 흐름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22일 한국공항공사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18일까지 전국 14개 지역 공항 국내선을 이용한 항공 여객은 356만명에 달한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여객이 줄어들던 지난해 같은 기간(122만명)보다 193% 커졌고,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의 같은 기간 이용객(325만명)과 비교해도 9%가 늘어난 수치다. 국내선만 보면 사실 코로나19 이전 수요를 완전히 회복한 셈이다.

실제로 국내선 공항 출발장은 요즘 시장판을 방불케 한다. 대한항공을 비롯한 항공사가 참여하고 있는 김포공항 항공사 운영위원회(이하 AOC)가 공항 운영사인 한국공항공사를 상대로 “김포공항 국내선 출발장 혼잡도를 개선해 달라”는 공문을 보낼 정도다. LCC의 가격 공세에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 역시 울며 겨자 먹기로 국내선 가격을 낮추고 있다. 공항 운영사인 한국공항공사는 항공기 운항과 여객 증가에 대응해 안전한 공항 이용을 위한 ‘공항이용 가이드’를 따로 내놓았다.

자금난 겪는 일부 LCC 공격적 마케팅

국내 14개 공항 국내선 이용 승객 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국내 14개 공항 국내선 이용 승객 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항공 수요가 늘었지만 항공권 가격은 바닥을 면치 못하는 건 코로나19 장기화로 자금난을 겪고 있는 일부 LCC의 공격적인 마케팅이 주원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코로나19 위기로 기초체력이 완전히 떨어진 이들은 사실상 이익을 보지 못하더라도 어떤 식이든 비행기를 계속 띄워야 하는 상황이다. 이윤이 크지 않아도 꾸준히 현금 유입을 기대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고용도 유지할 수 있다. LCC업계 1위인 제주항공은 이달 초 제주행 비행기만 하루 101편을 편성해 운영한 바 있다. 익명을 원한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국내선만 놓고 보면 여객 수요가 사실 예전 수준을 거의 회복했지만, LCC들의 동남아 노선이 회복될 때까지는 이런 출혈경쟁이 계속될 것”이라며 답답해했다.

퍼블릭과 회원제 골프장 가격 역전도

골프업계는 희색이다. 골프 인구가 꾸준히 늘고 있고, 수요 증가에 맞춰 그린피도 계속 올리고 있다. 지난해 10만원 대 중반이던 그린피(주말 기준)가 최근엔 수도권에서 떨어진 충북권 골프장까지 최소 20만원까지 올랐다. 회원제 골프장은 오히려 가격을 자유롭게 못 올리다보니 퍼블릭 골프장과 가격이 역전되는 상황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일부 골프장과 골퍼 사이에선 불만이 쏟아져 나오는 이유다. 직장인이 즐겨 찾는 실내골프장(스크린골프) 요금도 조금씩 오르고 있다. 직장인 진기욱 씨는 “스크린은 작년에 인당 1만5000~2만원 선이었는데 올해는 2만5000~3만원으로 된 것 같다”며 “그나마도 퇴근 시간 이후엔 부킹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골프용품 매출 올 1분기 65% 폭증

골프장 그린피 인상은 최근 골프 인구 증가와 코로나19 탓에 해외에서의 원정 골프가 사실상 불가능해진 데다, 요즘엔 SNS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 해외 여행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올리던 20·30세대가 최근엔 국내 골프장에서 찍은 사진을 올린다는 것이다.

덕분에 골프용품·의류업계까지 호황을 누리고 있다. 롯데백화점의 경우 올해 들어 3월 말까지 골프용품 매출은 65%, 골프의류 매출은 50.7%(남성)·39%(여성)가 각각 늘었다. 반면 상대적으로 수요가 줄어든 자전거나 수영 관련 용품 매출은 49.4~87.4% 감소했다. 코로나19나, SNS를 통한 과시욕이 단기간에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만큼 골프업계가 거는 기대도 크다.

롯데백화점 손상훈 치프바이어는 “골프 시장의 성장과 20·30세대의 골프 참여 증가 트렌드가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며 “주요 점포를 중심으로 젊은 골퍼를 타깃으로 한 젊고 과감한 하이엔드 브랜드를 발굴하고 유치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수기 기자 lee.sooki@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