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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기찬의 인프라

자장면값 인상분의 37%는 최저임금 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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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기찬
김기찬 기자 중앙일보 고용노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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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내년에 적용할 최저임금 심의가 시작됐다. 2022년 최저임금은 최저임금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8월 5일 고용노동부 장관이 확정 고시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 2년 동안 최저임금은 한꺼번에 30%가량 올랐다. 청와대와 정부는 “최저임금이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고 강변하며 방어에 총력을 기울였다. 최저임금이 소득주도성장의 첨병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존을 위해 생물처럼 움직이는 시장의 역동성을 어설픈 논리나 이념이 이길 순 없었다. 노동시장이 요동을 쳤다. 그제야 하늘을 향해 흔들던 꼬리를 슬그머니 내렸다. 직전 2년 동안 최저임금이 동결에 가까운 수준으로 묶이면서다. 물론 반성은 없었다.

노동경제학회, 최저임금 집중 해부 #최저임금도 못 버는 자영업자 27% #임금근로자 전환해도 일용직 전전 #청년·노년층 일자리 감소 직격탄 #“인상 부작용 반영해 결정해야”

문 정부 임기 마지막 해에 적용될 최저임금 심의를 앞두고 한국노동경제학회는 『노동경제논집』 최신호에 최저임금 연구 논문 3편을 실었다.

① 외식비에 고스란히 반영되는 최저임금

전병힐 한국외국어대 국제통상학부 교수팀은 최저임금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들여다봤다. 그랬더니 최저임금 관련 근로자 비율이 1%포인트 상승할 때 생산자 물가지수가 0.77~1.68% 올랐다. 생산자 물가지수 상승분 가운데 대략 0.82~3.01%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것이라는 점도 확인했다. 이 분석에 사용된 데이터는 2010~2017년 치다. 최저임금이 16.4%나 확 오른 2018년 치를 뺀 연구 결과가 이 정도였다.

최저임금 오르면 외식 가격도 덩달아 인상.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최저임금 오르면 외식 가격도 덩달아 인상.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주요 외식비의 변화도 분석했다. 서민이 접하는 냉면·비빔밥·김치찌개 백반·삼겹살·자장면·삼계탕·칼국수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2013~2018년 최저임금의 평균 인상분(8.69%)을 대입했더니 최저임금 조정에 따라 삼겹살은 연평균 62~117.1원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삼겹살의 연평균 인상분은 249원이었다. 연평균 인상분의 24.9~47%가 최저임금 인상 때문이라는 얘기다. 자장면은 연평균 인상분(93원)의 15.3~37%가 최저임금 인상과 연동해 자동으로 인상됐다. 연구팀은 “연평균 외식비 증가분 중 4.45~47.04%가 최저임금 변화로 설명된다”고 지적했다.

② 자영업 접고 임시·일용직 아니면 실업자

배진한 충남대 경제학과 명예교수팀은 최저임금이 자영업의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해 연구했다. 최저임금도 못 받는 임금근로자는 2015년까지 8% 수준이던 것이 2018년 11.6%로 치솟았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노동시장에선 임금 동맥 경화로 비화한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자영업자다. 최저임금도 못 버는 자영업자의 비중이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른 2018년 23.2%에 달했다. 2019년 최저임금 인상분(10.9% 인상)을 대입하자 최저임금도 못 받는 자영업자 규모는 26.8%나 됐다.

최저임금 오를수록 최저임금도 못 버는 자영업자 급증.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최저임금 오를수록 최저임금도 못 버는 자영업자 급증.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희한한 건 2009~2018년 임금 근로자의 비중이 증가했다. 이 기간 동안 자영업자의 비중은 감소했다. “저소득 자영업자가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자영자로 남아있기보다 임금 근로자로 이동한 결과”라는 것이 연구팀의 분석이다. 최저임금도 못 버니 차라리 장사 대신 임금을 받는 쪽으로 갈아탔다는 의미다.

문제는 고용의 질이다. “상용직이 아니라 임시·일용직으로 입직했다”는 게 연구 결과다. 생계를 위한 벼랑 끝 선택인 셈이다. 이른바 자영업자 밀어내기 가설(push hypothesis)이 노동시장에 현실화했다. 특히 고졸 이하 저소득 자영업자는 취업조차 못하는(미취업) 확률이 10%에 달했다.

③ 최대 34만명 일자리 사라져

강창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저임금이 고용규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따졌다. 강 교수는 “갑작스럽게 빠르게 최저임금이 인상됨에 따라 2018년의 노동시장은 최저임금의 고용효과를 추정하기에 적절한 실험실을 제공했다”고 꼬집었다.

연구에 따르면 2018년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은 근로자 고용규모를 1.5~1.74% 감소시켰다. 2017년 근로자가 총 1993만명 임을 감안하면 29만9000~34만7000명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소규모 사업체의 고용 충격은 더 컸다. 2018년 기준으로 1~4인 사업장은 2.39~2.99% 고용규모가 감소했고, 5~29인은 1.96~2.04% 줄었다. 30~299인 사업체는 1.47~1.65% 감소했다. 반면 300인 이상 사업장에선 고용 감소효과가 관측되지 않았다. 결국 ‘없는’ 집 근로자만 일자리를 잃었다는 뜻이다. 전 연령층에서 고용이 감소했지만 특히 청년층(18~29세)과 노년층(55~70세)에서 감소 추세가 더 강했다. 강 교수는 “향후 최저임금 인상 폭을 결정할 때 최저임금 인상이 노동시장에 미칠 부정적 고용효과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세 편의 논문을 종합하면 최저임금이 올라도 외식비를 비롯한 물가가 오르면 근로자 입장에선 임금인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돈 가치가 떨어져서다. 그 와중에 자영업자는 최저임금이 파놓은 늪에 빠져 허덕이게 된다. 임금근로자로 전환을 꾀하지만, 최저임금 인상으로 진입 문턱이 높아져 임시·일용직을 전전하게 된다. 청년도 일자리를 못 구한다. 시장을 이기려 드는 이념의 고집이 빚은 실상이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