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김기찬의 인프라

글로벌 무대 데뷔한 쿠팡이 던진 질문과 과제

중앙일보

입력 2021.03.23 00:28

업데이트 2021.03.23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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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기찬 기자 중앙일보 고용노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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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쿠팡은 2010년 8월 설립됐다.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이 미국에서 사업해 마련한 30억원이 밑천이었다. 그로부터 10년 6개월 만에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글로벌 유통기업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JP모건과 같은 큰 손들이 쿠팡 공모에 주저 없이 뛰어들었다.

스타트업 성장 막는 실핏줄 규제
근로자 보호에 소홀한 노무 관리
경영과 노동권, 두 측면 숙제 들춰
정부의 혁신 수용성에 의문 제기

놀랄 일이다. 한편으로 쿠팡의 글로벌 자본시장 행이 던진 질문과 과제도 한꺼번에 풀렸다.

한국 택배산업은 성장일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물동량만 33억7373만 박스였다. 2019년보다 20.9%나 늘었다. 2012년(14억598만 박스)에 비하면 2.4배 증가했다. 지난해 매출액은 7조4925억원으로 2012년(3조5232억원) 보다 112.7% 늘었다. 가위 로켓급 성장이다.

지난 11일 쿠팡 상장에 맞춰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쿠팡 로고와 태극기가 게양됐다. [사진 쿠팡]

지난 11일 쿠팡 상장에 맞춰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쿠팡 로고와 태극기가 게양됐다. [사진 쿠팡]

쿠팡이 뉴욕 증권거래소에 낸 상장 신고서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한국의 유통·식료품·음식배달·여행 시장 규모는 4700억 달러(약 520조원)다.’ 아직도 70배 더 성장할 수 있다는 말이다.

쿠팡의 이런 자신감은 혁신의 DNA 덕이다. 그 누구도 시도한 적 없던 직배송과 로켓배송은 시장을 뒤흔들었다. 온라인 쇼핑몰이 배송까지 하는 회사는 없을 때였다. 쿠팡을 온라인 쇼핑 또는 배송의 동의어처럼 각인시켰다.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은 여기에 매료돼 3조원이 넘는 돈을 흔쾌히 투자했다. 쿠팡의 뉴욕 증권거래소 행도 충격이었다. 아마존이라는 시장지배자가 있는 곳이다. 그런데도 보따리를 싼 이유는 단 하나. 혁신의 DNA를 받아줄 곳이라고 생각했단다. 1주당 29주의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차등의결권은 창조적 파괴를 뒷받침하는 든든한 토대다. 경영권을 두고 지분 다툼을 벌일 필요가 없다. 글로벌 자본시장과 한국 시스템의 차이다.

국내택배단가추이.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국내택배단가추이.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스타트업으로서 쿠팡은 한 해 수조원의 적자를 내면서도 꿋꿋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실핏줄 규제가 포진하고 있어서다. 오죽하면 글로벌 상위 스타트업 10곳 중 3곳은 국내에서 사업을 하기 어렵다는 보고서도 있다. 빅데이터 기반 위캐시, 에어비앤비, 그랩, 블록원 등이다.

특히 노동분야의 혁신은 괄목할만하다. 기존 택배회사의 배송기사는 자영업자다. 택배회사는 이들과 계약을 맺고 배달 건수에 따라 수수료를 지급한다. 두 개의 회사처럼 굴러가는 셈이다. 그러나 쿠팡의 배송기사는 정규직 사원이다. 수수료 대신 월급을 받는다. 자영업자가 아니기에 공정거래법 대신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노동법의 적용을 받는다. 기존 회사는 쿠팡의 노무 시스템을 흉내조차 내기 어렵다. 엄청난 비용이 들어서다. 막대한 손실을 내면서도 괜찮은 서비스 일자리를 확 늘린 이런 노무 방식은 고용혁신이라 할 만하다.

국내택배물동량.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국내택배물동량.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하지만 쿠팡이 풀어야 할 최대 난제 또한 노동문제다. 특히 산업재해는 심각하다. 김 의장이 경쟁상대로 삼은 아마존과 같은 처지에 놓였다. 아마존은 미국 전역에 150여 포장배송 센터를 두고 있다. 이곳에 근무하는 직원의 부상 비율은 2016~2019년 사이 33%나 증가했다. 오죽하면 미국 워싱턴주는 여러 물류창고 가운데 아마존의 물류 창고만 떼어내 고위험 업종으로 분류하려 한다. 고위험 업종이 되면 업주가 부담하는 산재 보험료가 15%, 시간당 2.17달러 인상된다. 워싱턴주에서만 창고직원이 1만1199명이다. 산재보험료의 사업주 부담분이 시간당 2만4000달러 증가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고용노동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쿠팡발 산재승인 건수는 2016년 223건에서 지난해 758건으로 3.3배 증가했다. 타사의 산재승인 건수가 한 자릿수인 점을 고려하면 엄청나다. 물론 다른 물류회사 배송기사는 자영업자여서 산재로 인정받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가 있다. 쿠팡으로선 억울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일하다 다치는 근로자가 지나치게 많다.

쿠팡은 “주당 50시간으로 근로시간을 조절한다”며 과로에 따른 산재를 부인한다. 하지만 이런 일률적인 근로시간 개념이 산재를 키울 수 있다. 실제로 올해 초 과로사 판정을 받은 직원의 평균 근로시간은 주당 52시간 이내였다. 과로사 판정기준인 60시간에 못 미친다. 그래서 쿠팡은 “과로사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산재 판정을 할 때는 야간근로의 경우 실근로시간에 1.3배를 곱해서 근로시간을 산출한다. 숨진 근로자의 근로시간은 60시간을 훌쩍 넘겼다. 근로환경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무지와 오류가 빚은 산재였던 셈이다. 로켓 배송이나 새벽 배송 등에 대한 근로시간 가산제 도입과 같은 업무 강도를 고려한 근로시간 개념의 재확립과 근로자의 자기 결정권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또 한 번의 혁신이 필요한 까닭이다. 휴가제도를 포함한 보상체계의 혁신, 외부의 입김에 흔들리는 노사관계 등을 다잡을 내부 혁신도 필요하다.

지속가능한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도 숙제다. 세계경제포럼(WEF)은 향후 10년 동안 세계 100대 도시에서 배달수요는 78%, 배달차량은 36%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배출가스는 32%나 많아진다. 대부분 경유차량을 사용하는 국내 택배회사가 안은 숙제다.

이런 질문과 과제에는 모든 기업이 답해야 한다. 특히 혁신을 받아줄 준비가 돼 있는지 정부와 정치권에 묻고 있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Innovation L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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