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주치의] 교통사고 대처 요령

중앙일보

입력

오늘은 교통사고에 관한 몇 가지 의학적 조언을 해 드릴까 합니다.

교통사고가 줄고 있다지만 국민 보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크기 때문입니다. 10년 전만 해도 사망원인 4위였으나 지금은 8위로 내려앉았습니다. 한해 사망자 숫자도 10년 전 1만여 명에서 현재는 절반 수준인 5000여 명으로 줄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자동차 1만 대당 사망자 수는 3.9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 1.9명보다 2배나 많기 때문입니다. 특히 어린이 사망자가 많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연간 14세 이하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10만 명당 평균 4.1명으로 일본의 1.3명, 영국의 1.5명 등 선진국에 비해 3배나 됩니다.

저도 한때 응급실에서 당직의사 생활을 한 적이 있지만 교통사고는 정말 잔인합니다. 암이나 뇌졸중이 무섭다지만 그래도 우리 몸에서 비롯된 병이므로 온순한 구석이 있습니다. 그러나 금속 파편이 살갗을 파고드는 교통사고는 인정사정이 없습니다.

교통사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의 보호입니다. 자동차가 많이 부서지지 않은 교통사고의 경우에도 사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부분 목을 다치기 때문입니다. 목뼈 안에는 호흡과 맥박 등 필수적 생명현상을 주관하는 뇌간(腦幹) 등 중추신경이 있습니다. 이들은 두부처럼 물렁물렁하지요. 부러진 목뼈의 날카로운 파편에 의해 쉽게 절단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대개 다음 세 가지 경우가 한꺼번에 겹칠 때가 위험합니다. ▶조수석에 앉아서▶안전벨트를 매지 않고▶졸고 있을 때입니다. 이 경우 조수석 탑승자는 자동차가 과속하지 않고 충돌할 때도 몸이 앞으로 쏠리면서 이마가 차량 천장에 부딪치면서 목뼈가 부러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교통사고 현장에서 차량 안의 부상자를 함부로 끌어내지 않는 것입니다. 부러진 목뼈가 신경을 더욱 심하게 손상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부상자는 사지마비 등 평생 심각한 장애에 시달려야 합니다. 목뼈나 척추가 부러진 부상자는 부목 등으로 척추를 고정한 뒤 일자형으로 옮겨야 안전합니다.

여러분이 할 일은 휴대전화로 119 구급요원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차량에 불이 나서 부상자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가 아니라면 말입니다. 조금 냉정해 보이지만 내버려두는 것이 정답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인 미국의 패튼 장군도 교통사고로 목을 다쳐 숨졌습니다. 사고 당시 수행원에게 "나는 괜찮다"라고 말했습니다만 무리하게 차량에서 꺼내는 과정에서 즉사했습니다.

참고로 안전벨트 매는 법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많은 분이 안전벨트를 윗배에 가볍게 두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고속충돌시 내장파열을 일으켜 안전벨트가 오히려 흉기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안전벨트는 꺾이는 부분을 골반뼈에 고정한다는 느낌으로 아랫배로 바짝 끌어당겨 매야 합니다. 이 경우 운전자는 오른쪽 골반뼈가, 조수석 동승자는 왼쪽 골반뼈가 지지대가 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과속하지 않는 것입니다. 수년 전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죽음에서도 보듯 세계 최고의 세단으로 알려진 벤츠 S클래스도 과속 앞에선 무용지물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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