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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정애의 시시각각

정은경 위에 기모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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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9월 충북 청주 질병관리본부 긴급상황센터에서 정은경 초대 질병관리청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정세균 국무총리가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이임식을 마치고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에게 꽃다발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 방역기획관에 기용된 기모란 국립암센터 교수의 배우자(더불어민주당의 총선 후보)가 거론되는 걸 보니 영국의 벤처투자자 케이트 빙햄이 떠올랐다. 지난해 5월 영국의 백신 태스크포스 의장으로 임명됐을 때 남편(보수당 의원) 덕분이냐는 비난을 받았다. 지금은 ‘백신 수프리모(최고의 인물)’로 불린다.
 빙햄이 태스크포스를 이끌 때만 해도 백신이 존재할지조차 불확실했다. 그래도 “가능한 한 빨리 전도유망한 백신을 확보하자. 50펜스(770원) 깎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란 입장을 정했다. 어디서 오느냐(geography)가 아니라 오느냐가 결정적이었다는 의미다. 그러곤 위험 분산 차원에서 네 개 범주의 7개 백신을 추려냈다. 과학적으로 ‘섹시한’ 아데노바이러스 백신인 아스트라제네카와 얀센, mRNA 백신인 화이자와 모더나가 한 축이라면 덜 섹시하지만 믿을 만한 단백질 백신인 노바백스, 비활성 코로나바이러스를 이용한 발네바 등이 다른 축이었다.
 동시에 이들 기업엔 ‘좋은 고객’이 되기로 했다. 제조 지원이 필요하면 제조를, 임상 지원이 필요하면 임상을 지원했다. 노바백스를 위해 후지필름 공장을 백신 공장으로 바꿨고, 45만 명이 넘는 임상 자원자를 모집했다. 빙햄 자신도 노바백스 3상 실험에 참여했다. 이런 게 바탕이 돼 두 달여 만에 7곳 중 6곳과 계약할 수 있었다.
배우자가 아닌, 당사자를 봐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기 기획관의 그간 발언을 떠올리는 게 좋겠다.
“화이자 것을 (계약)해놨는데, 더 좋은 게 나오면 물릴 수도 있다. (중략) 가격도 화이자와 모더나가 가장 비싼 축에 들어가는데 아스트라제네카는 4달러 정도밖에 안 한다.”(지난해 11월), “(다른 나라가) 예방접종을 먼저 해 위험을 알려주는 것은 우리가 고마운 것이다. 별로 우리가 직접 하고 싶지는 않다.” “백신은 급하지 않다. 공공의료를 먼저 강화시켜야 한다.”(이상 지난해 12월)
그가 백신 아닌 방역기획관인 게 다행이지 싶다. 사실 전문성도 논란이다. 청와대에선 방역 전문가라는데 그의 이력을 아는 인사들은 회의적이다. 주로 암 관련 역학 연구를 해서다. 한 인사는 “전문가라면 정부를 칭찬할 때도, 비판할 때도 있는데 기 교수에게선 어느 순간 비판이 사라졌다”고 했다. 근래엔 정부 두둔 논리의 단골 제공자가 됐다. 이 때문에 야당에선 ‘보은 인사’(윤희숙 국민의힘 의원)라고 본다.
보은에서 멈추면 다행이련만 일을 하려 할 테니 걱정이란 사람도 적지 않다. 청와대 행정관이 육군 참모총장을 불러내고, 비서관이 전한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장관이 원전 사업을 고사시키는 ‘청와대 정부’ 아닌가. 재정기획관 때문에 부총리의 기획재정부도 패닉에 빠졌었다. 방역기획관이 차관급 질병관리청을 압도하리라는 건 불문가지다. 질병청 사람들은 벌써 “당혹스럽다”고 하소연한다.
괴이함도 있다. 급하기로 따지면 백신이다. 세계에서 칭송한다는 ‘K방역’ 아닌가. 그런데도 백신기획관이 아닌 방역기획관이 신설돼야 했던 이유에 대해 익명을 요청한 한 교수는 이렇게 분석했다. “백신 접종 진행이 잘 안되고 보급도 잘 안된다. 11월 집단면역 달성이 어려우니 여권으로부터 ‘그래도 방역을 완화할 대안이 뭔지 내달라’는 시달림을 받고 있다. 그때까지 해결 못 하면 대선도 물 건너가니까.” 정은경 청장이 보수적으로 접근해 여권에선 불만이 많다는 얘기도 했다. 그렇다고 “K방역의 영웅”(문재인 대통령)인 정 청장을 바꿀 수도 없으니 기 기획관을 임명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이런 가운데 16일 오후 정 청장이 오송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이임하는 정세균 국무총리에게 꽃다발을 건네는 행사 때문이었다. 지난해 9월 질병청 승격 때 문 대통령은 “한시라도 자리를 비울 수 없다”며 오송으로 향했었다.

고정애 논설위원

고정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