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뽕 열풍" 기막힌 기회 잡은 중국의 재벌 2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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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랩

“리닝”

중국 체조 영웅의 이름이자 그가 만든 스포츠용품 브랜드.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리닝 특수’로 몸값이 급등했다가 이후 침체기에 빠졌던 리닝은 10년 뒤 글로벌 패션쇼 무대에서 주목받으며 중국의 국풍(国潮)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탈바꿈했다. 내리막길을 걷던 리닝이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리치린(李麒麟)이라는 숨은 공신이 있었다.

[사진 터우탸오]

리치린은 중국의 국민 체조 영웅 리닝(李宁)의 조카이자, 브랜드 리닝의 공동 창립자 리진(李进)의 아들이다. 2012년 해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리닝에서 본격적으로 일하기 시작, 주로 그룹의 마케팅과 혁신 전략을 담당했다.

중국 체조영웅이 만든 스포츠 브랜드 '리닝' #애국주의, 복고풍 활용해 힙한 이미지 구축

회사에 막 합류했을 때만 해도 그가 기업 발전의 전환점을 마련할 거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푸얼다이(富二代), 우리말로 재벌2세를 바라보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리치린 [사진 터우탸오]

하지만 리치린은 많은 이의 예상을 깨고 과감한 혁신을 시도했다. 그는 리닝에서 처음으로 스포츠 용품에 패션 트렌드를 결합하는 결단을 내린 장본인이다.

이 같은 발상은 기존의 틀을 흔드는 것이었다. 회사 창립자 리닝과 리진은 스포츠 브랜드가 패션계에 발을 들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지금과 달리 당시 사람들은 패션과 스포츠를 별개의 개념으로 여겼다. 전자가 디자인을 중시한다면 후자는 기능성에 중점을 뒀다.

리치린은 아버지와 삼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각을 밀어붙였다. 리닝이라는 스포츠 브랜드를 패션업계에 진출시키는 데 공을 들였다.

리닝 패션쇼 [사진 터우탸오]

이윽고 2018년, 리닝은 기존과는 완전 다른 새로운 디자인을 가지고 미국 뉴욕 패션위크에 등장, 전세계 패션업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중국 스포츠 용품 브랜드가 뉴욕 패션쇼에 오른 것은 리닝이 처음이다.

그후 몇 년 간 리닝은 뉴욕 패션 위크에 꾸준히 등장해 눈도장을 찍었다. 런웨이 위, 중국적 색채를 녹여낸 리닝의 디자인은 중국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리닝이라는 이름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제품의 정중앙에 ‘중국 리닝(中国李宁)’이라는 중국어 간체자를 새겨 넣은 디자인은 레트로 열풍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일각에서 ‘촌스럽다’라고 하던 디자인이 ‘힙한’디자인으로 탈바꿈했다. 마침 중국산 제품에 대한 자부심을 표출하는 ‘국풍’이 불면서 리닝은 중국 젊은이들 사이 국풍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리닝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중국 배우 샤오잔 [사진 웨이보]

2019년 리치린은 또 한번 놀라운 결정을 내렸다. 5억 위안(약 850억 원)을 투자해 e스포츠팀을 사들인 것. 팀 인수의 모든 과정이 단 3주 만에 쾌속으로 진행됐다. 여론은 리치린의 결정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당시 e스포츠 사업은 기업의 홍보에 도움이 될 뿐 수익을 낼 수 있는 업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리치린은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켰다. 2018년 기준 3억 명, 점점 더 늘어나는 e스포츠 관중이 자사 브랜드의 잠재 소비자라고 그는 판단했다. 더군다나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젊은 남성들은 스포츠와 패션, 즉 리닝이 추구하는 방향에 부합하는 소비층이었다.

[사진 웨이보]

그밖에 리치린은 e스포츠 팀과 콜라보를 통한 제품을 선보여 큰 성공을 거뒀다. 콜라보 상품은 출시 직후 완판되는 등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4월 7일 리닝 2021 FW 신제품 발표회 현장 [사진 터우탸오]

올 들어 중국 내 서구 브랜드 보이콧 분위기가 가세하면서 ‘국풍’의 상징인 리닝에 대한 중국 소비자의 충성도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관측된다. 실제로 중국 현지 일부 중개상들이 리닝 등 로컬 브랜드 운동화를 '사재기'해다가 온라인 사이트에 30배 가격에 올려 폭리를 취한 사건이 보도되기도 했다. 지난 4월 7일 리닝의 2021 FW 신제품 발표회 현장에는 수많은 스타들이 참석해 국풍 열풍에 동참하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차이나랩 홍성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