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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 불안 … ´유기농 급식´ 뜬다

중앙일보

입력

26일 경기도 안양의 호계초등학교 5학년 5반. 낮 12시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교실은 배식 준비로 부산했다.

이날의 특별메뉴는 우리 밀로 만든 피에 유기농 재료로 소를 채운 만둣국. 아이들의 식판에는 흰 쌀밥과 햄 대신 현미밥과 호박볶음이 가득 채워졌다. 어묵 등 가공식품으로 만들어진 반찬은 자취를 감춰버렸다. 한 입 가득 잡곡밥을 넣고 우물거리던 이상현(11)군은 "처음엔 흰 쌀밥보다 맛이 없는 것 같았지만 먹다 보니 고소한 맛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몸에도 좋을 것 같아 많이 먹게 된다"고도 했다. 이 학교는 이번 학기부터 학생들이 먹는 모든 먹거리를 안양 율목 생활협동조합(생협)이 공급하는 친환경 식재료로 만든다.

생협은 쌀.보리.콩 등 곡식에서부터 채소와 육류 전부를 산지에서 직접 공급받고 있다. 생협이 원가로 식재료를 공급하기 때문에 학부모들의 부담은 거의 늘지 않았다고 한다. 농약이 묻어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한 달에 한번 꼴로 학부모 대표 등이 불시에 생협에 직접 가 농약 검사를 한다. 농약이 검출되는 품목은 즉시 계약이 해지된다.

두 자녀를 이 학교에 보내고 있는 임정자(37)씨는 "이젠 아이들이 집에서도 잡곡밥을 잘 먹는다"며 "중국산 농산물 파동과 상관없이 안심하고 학교에 보낼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호계초등학교에서 '급식 혁명'이 시작된 것은 2003년 영양사 이흥남(34)씨가 부임하면서부터다. 직원과 학부모를 상대로 한 설명회와 식단연구 등에만 2년이 걸렸다. 이씨는 "처음엔 '입맛에 안 맞는다'며 밥을 굶고 가는 아이들이 일부 있어 학부모들의 항의도 받았다"며 "그러나 지금은 된장국이 좋다는 학생이 절반이 넘는다"고 밝혔다. 유기농 급식 이후 아토피를 심하게 앓던 아이들의 건강상태가 크게 좋아진 것도 성과라는 것이 이씨의 설명이다.


호계초등학교와 같은 급식혁명이 가장 활발한 지역은 제주도다.

2003년 3월 아라중학교에 '친환경 유기농 급식준비위원회'가 구성되면서 급식운동이 시작됐다. 올해 초 주민 발의로 '친환경 우리 농산물 학교급식 지원 조례'까지 만들어졌다. 제주도는 이에 따라 29개 초.중.고교 등에 학생 1인당 하루 500원씩의 친환경 급식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각 학교는 지역 생협 등과 연계해 농산지로부터 직접 무공해 농산물을 공급받는다. 제주도는 2007년까지 100억원의 예산을 확보해 도내 모든 학교에 친환경 급식을 지원할 계획이다.

제주도 구엄초등학교와 함께 친환경 급식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생협연대 황영묵(35)씨는 "급식개혁은 청소년들의 건강을 지키고, 농촌의 유기농업을 유도할 수 있는 대안"이라며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이창우 박사는 "미국에서도 1990년대 후반부터 생산지와 지역사회.학교를 연결해 친환경 농산물을 공급하는 운동이 활발하다"며 "주민과 지자체의 협력이 시스템 정착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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