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새 삶 찾은 환자들과 평생 친구 됐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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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이식 수술을 받는다고 끝이 아닙니다. 수술 후 과체중이 되거나 다른 합병증이 생길 우려가 있어요. 음식 조절을 잘 하시고 질병에 감염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19일 오후 서울 강남성모병원 소강당. '간의 날'(20일)을 기념해 이 병원에서 마련한 간질환 관련 공개강좌에 400여 명의 청중이 몰려 자리를 가득 메웠다. 진지한 표정으로 의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참석자들은 강당 한켠에 서있던 전희옥(46)씨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환한 미소로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전씨는 이 병원의 '장기이식 코디네이터'. 장기 이식을 필요로 하는 환자를 맡아 이식 수술의 과정.비용 등을 상담하고, 수술 스케줄을 잡아 진행하는 것은 물론 수술 후 건강 관리까지 맡아 종합적으로 보살피는 일을 한다. 국내 각 병원에서 활동 중인 60여 명의 코디네이터 중 최고참 격이다.

"오늘 오신 분들은 모두 제 '평생 고객'이세요. 간 이식 수술을 받은 분과 가족들, 간 이식을 희망하며 대기 중인 분들이죠."

여기다 장기 기증자(뇌사자가 아닌 생체 기증자)까지 포함하면 그가 관리하는 고객은 수천명을 헤아린다고 한다.

17년 동안 간호사로 일했던 전씨는 2000년 장기이식 코디네이터를 자원했다. 1998년 이 병원 장기이식센터가 처음 문을 연 뒤 세 명의 전임자가 과중한 업무를 이겨내지 못하고 잇따라 그만둔 뒤였다.

"전문성을 살릴 수 있을 것 같아 씩씩하게 지원하긴 했는데 처음엔 진짜 힘들더라고요. 언제 뇌사자 장기를 확보할 수 있을 지 몰라 24시간 휴대전화를 켜놓고 대기상태에 있어야하는 게 그렇고요. 절박한 상황에 놓인 환자와 가족들을 온종일 상대하는 것도 여간 에너지를 뺏기는 일이 아니에요."

하지만 전씨를 버티게 하는 건 환자들에게 새 생명을 선물하고 있다는 사명감과 보람이다. 죽을 날만 기다리던 환자들이 기증자와 연결돼 무사히 수술을 받고 건강을 되찾는 걸 볼 때마다 쌓였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진다는 것이다.

간경화.간암 환자는 이식 외엔 달리 살 방도를 찾을 길이 없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간은 사람 장기 중에서 유일하게 재생이 돼, 이식 수술 후 1년 가량 지나면 정상 크기로 회복된다.

하지만 기증자를 찾는 일이 녹록지 않다.

"대개 혈액형이 맞는 가족이 나서지요. 하지만 세태가 변해서인지 식구끼리도 이식을 꺼리는 일이 적지 않아요."

간경화인 남편에게 아들이 이식을 하겠다고 나섰지만 부인이 만류하는 바람에 환자가 숨진 경우도 있고, 남편에게 부인이 간을 떼주려했는데 친정 부모가 끝까지 동의해 주지 않아 사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희망은 있어요. 피 한 방울 안 섞인 타인에게 선뜻 자신의 장기를 내주는 아름다운 분들을 보면서 진정한 사랑이 뭔지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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