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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올해 무명의 방역 전사에 배달될 은반지 1000개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민은미의 내가 몰랐던 주얼리(71)

작년 11월 중순 어느 날 단양보건소 강규원 소장에게 우편물 하나가 배달됐다. 우편물을 열어보니 상자 속에는 반짝이는 은반지가 담겨 있었다. 이 은반지는 마스크 모양으로 ‘덕분에 반지’라는 설명서가 함께 들어 있었다. 서울 종로 지역의 주얼리 전문가들이 펼치고 있는 ‘덕분에 반지 기증 챌린지’에 K방역지킴이로 강소장이 추천된 사실을 알게 됐다.

단양보건소에 찾아온 ‘덕분에 반지’

'덕분의 반지'케이스를 열어 보이는 단양보건소 강규원 소장. [사진 주얼인]

'덕분의 반지'케이스를 열어 보이는 단양보건소 강규원 소장. [사진 주얼인]

단양팔경(丹陽八景)으로 유명한 충청북도 단양군의 한 지역 주민이 ‘덕분에 반지 기증 챌린지’ 이벤트에 “코로나 시대에도 안전하게 단양 관광을 즐길 수 있었던 건 휴일도 반납해가며 방역을 진두지휘한 단양보건소 강규원 소장 덕분”이라며 추천한 것이다.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입은 업종이 관광업이다. 이동 제한을 권고하는 방역 조치 때문이다. 그러나 단양군은 봉쇄 없이 안전하게 주요 관광지를 정상 운영하고 있는 특별한 지역이다. 작년 11월 11일까지 단 2명의 확진자만 발생하고 더 이상 추가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선물이 된 ‘덕분에 반지’

단양보건소 팀원들과 함께 '덕분에 반지'를 착용한 모습. [사진 강규원]

단양보건소 팀원들과 함께 '덕분에 반지'를 착용한 모습. [사진 강규원]

강소장은 도착된 반지를 받고 보니 자신보다 더 고생한 팀원들이 먼저 생각났고 반지의 주인은 본인이 아닌 팀원이라는 생각이 앞섰다. 우편물을 보낸 곳(주얼인)에 연락해 팀원 반지를 보내줄 수 있냐고 요청했고 주얼인에서 흔쾌히 보내주겠다고 수락했다. 선별진료소 10명, 자가격리팀 10명을 위한 반지 20개가 도착했다.

강 소장은 팀원들에게 ‘덕분에 반지’를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하다가 크리스마스 때 깜짝 선물로 주기로 했다. ‘덕분에 반지’ 덕분에 단양의 방역전사들은 특별한 크리스마스를 맞게 되었다. 당시 팀원 전체가 모일 수 없는 거리두기 기간이라 몇차례 나눠 전달했는데 강 소장은 “반지를 나눌 때마다 울컥했고, 감동적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민정씨(단양군보건소 선별진료소 간호사, 30세)는 “작년에 감염병관리팀에 있으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소장님이 반지를 주시더라. 소장님은 정은경 청장처럼 부쩍 흰머리도 늘고 살도 많이 빠지셨다. 치마 정장이 정말 잘 어울리셨던 분인데, 치마를 언제 마지막으로 입었는지 기억조차 안 난다. ‘코로나 전쟁터’라고 말씀하시면서 운동화 신고, 바지 입고, 매일 직접 바쁘게 일하신다”며 “총과 칼이 있어야만 전쟁터가 아니다. 작년 12월~1월, 날씨가 너무 추워 방호복 입고 선별진료소에서 근무하는 게 아주 힘들었다. 패딩이나 두꺼운 겉옷을 입을 수 없어 안에 내복과 얇은 경량 패딩을 입고 핫팩을 붙이며 버텼다. 고글에 김 서림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고, 방호복을 입고는 화장실을 갈 수가 없었는데, 이런 점도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만큼 전쟁을 방불케 하는 두렵고 힘든 시간을 팀원들과 서로 격려하고 배려하며 견뎠고, ‘코로나를 이겨보자’는 한뜻으로 싸웠다. 그래서 보건소에서 함께 근무는 분들을 ‘전우’라고 칭하고 싶다. 특별한 반지를 제작해 기증해 준 주얼리업계 종사자분들게 감사하다. 반지는 보석함에 넣어 보관 중이다. 코로나가 종식되어 칼퇴하는 그날까지 지치지 않고 힘내겠다”며 소감을 전했다.

홍혜지씨(단양군 보건소 치매안심센터 자가격리 모니터링 요원, 34세) 역시 강규원 소장에게 반지를 받았다. 홍씨는 “반지를 받고 주변에서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계시다는 걸 알게 돼 든든했다. 저에게 ‘덕분에 반지’는 굉장히 뜻깊고 소중해 착용은 하지 않고 잘 보이는 곳에 고이 전시해 두었다”고 감회를 밝혔다. 홍씨는 ‘덕분에 반지’를 전하고 싶은 K방역지킴이에 예방접종 백신 관련 업무를 하고 있는 단양보건소 한은선주무관을 추천했고 한은선주무관에게도 덕분에 반지가 배달됐다.

작년 큰 호응을 얻었던 ‘덕분에 챌린지’는 정부가 주도한 국민참여형 캠페인이다. 이와는 달리 ‘덕분에 반지 기증 챌린지’는 순수한 ‘민간의 자발적 운동’이라는 점에서 ‘덕분에 챌린지’와는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덕분에 반지 기증 챌린지’는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쳤다. 반지는 만들어 놓았으나 가장 쉬울 것으로 생각했던 기증처를 찾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이들은 첫 기증으로 국민의 각광을 받는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을 생각했으나 “마음만 감사히 받겠다”며 질본측이 고사했다. 간호사 단체나 의사 단체에 기증하는 것도 추진했으나 단체 내부에서 반지를 받을 대상자를 선정하는데 상당한 시일이 걸리고 행정적인 진행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난색을 표했다.

상자에 담긴 '덕분에 반지'. [사진 민은미, 주얼인]

상자에 담긴 '덕분에 반지'. [사진 민은미, 주얼인]

반지를 만드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힘든 상황에 놓인 것이다. 모처럼 뜻있는 일을 해보려고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으나 좋은 뜻이 흐지부지될 위기를 맞았다. 기증을 위한 작전을 다시 세우고 방역 전사 가운데서도 음지에서 ‘무명’을 찾자는 데 뜻을 모았다. 이렇게 지난해 10월 29일 첫 기증처인 서울 종로구 방역봉사단 65명을 시작으로 단양보건소를 포함해 석 달간 약 500명의 방역전사를 ‘찾아내서’, ‘발굴해서’ 반지를 전달하고 2020년을 마무리했다.

‘덕분에 반지 기증 챌린지’는 이제 2년차에 돌입했다. 주얼리인들은 올해도 챌린지를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 작년보다 두배인 1000개의 반지를 이미 만들어 놓았다. 1000명의 무명의 방역 전사, 자가격리요원, 모니터링 요원, 수화통역사 등 코로나와 사투를 벌이는 영웅을 찾아 내겠다는 것이다.

‘덕분에 반지 기증 챌린지’를 시작한 김성기 주얼인 대표(한국주얼리소사이어티 모임 회장)는 “묵묵히 일하면서도, 조명은 덜 받는 방역전사를 계속 발굴해서 ‘당신은 빛나는 다이아몬드입니다’라는 의미를 담은 덕분에 반지를 보내드릴 것”이라고 한다. 보석상 30여명이 본인 생업 현장의 생산라인까지 멈추고 만든 ‘덕분에 반지’, 다른 말로는 ‘마스크 은반지’. 음지에서 묵묵히 고생하는 방역전사의 손가락에 반지가 끼워질 때까지 주얼리인의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주얼리 마켓 리서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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