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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선덕여왕의 유리 장신구, 클레오파트라와 같은 것?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민은미의 내가 몰랐던 주얼리(69)

유리잔, 신라 6세기, 높이 7.4cm, 경주 천마총, 보물 제620호. [사진 국립경주박물관]

유리잔, 신라 6세기, 높이 7.4cm, 경주 천마총, 보물 제620호. [사진 국립경주박물관]

“…고운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어느 가요의 가사처럼 감탄이 절로 나오는 신비한 빛을 만났다. 낯설고 이국적인 푸른 빛. 세로빗살무늬와 거북 등 같은 육각형 무늬로 이루어진 코발트블루색 유리잔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소장품을 보유한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나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진열된 작품이 아니다. 유리 제품을 예술로 승화시켰다고 평가받는 프랑스의 보석세공사이자 유리공예가 르네 랄리크(1860~1945)의 작품도 아니다.

놀랍게도 1973년 7월,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에 있는 신라시대 무덤 천마총에서 발견된 유리잔이다. 경주는 신라의 고도이자 화랑과 귀족의 화려한 불교 문화를 꽃피운 곳이다. ‘천마총 유리잔(보물 제620호)’은 신라 금관, 팔찌, 귀걸이 등과 함께 출토됐다.

신라 능묘서 출토된 유리그릇. [사진 국립경주박물관]

신라 능묘서 출토된 유리그릇. [사진 국립경주박물관]

유리는 4500년 전 지중해 지역에서 탄생했다. 기원전 1세기 대롱 불기라는 혁신적 기법이 개발되면서 로마 제국에서 대량 생산됐다. 고대 동아시아에서는 오색을 띠며 빛을 발하는 유리를 서역에서 온 진귀한 보물로 여겼다. 주로 장신구에 활용했고, 서방보다 그릇류는 보편화하지 못했다. 그래서 신라 능묘에서 출토된 다수의 유리그릇은 놀랍고 이례적이다.

이제까지 7개의 능묘에서 제대로 형태를 갖춘 유리그릇 15점이 발견됐다. 특히 황남대총의 경우 8점에 이른다. 이들은 세계 다른 지역의 유리기와 비교해봐도 보기 드물게 아름답다. 다채로운 색과 기형을 보여준다.

봉황 모양 유리병, 신라 5세기, 높이 24.7cm, 경주 황남대총 남분, 국보 제193호(좌). 상감 유리구슬 목걸이. 신라 5~6세기, 길이 24cm, 경주 미추왕릉, 보물 제634호(우). [사진 국립경주박물관]

봉황 모양 유리병, 신라 5세기, 높이 24.7cm, 경주 황남대총 남분, 국보 제193호(좌). 상감 유리구슬 목걸이. 신라 5~6세기, 길이 24cm, 경주 미추왕릉, 보물 제634호(우). [사진 국립경주박물관]

최근 조사에서 생산지를 추적한 결과 이집트,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지역, 코카서스 산맥 이남 지역, 중앙아시아 등 다양한 곳에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유라시아를 가로지르는 육로와 해로를 통해 신라로 전해진 오색 영롱한 빛깔의 유리 용기는 신라인의 국제적 감각, 높은 심미안, 특별한 취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또한 경주가 서역에서부터 출발한 실크로드가 당나라 서안을 지나 동쪽 끝 국제 무역로의 종착지이자 국제도시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능묘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신라 권력층에게 유리는 무덤까지 가져갔던 지극히 귀하게 여겼던 호화품이자 명품이었다. 황룡사 구층목탑, 구황동 삼층석탑 등에서 발견된 다량의 유리구슬은 유리가 부처에게 바치는 귀한 보석이었음을 보여준다. 더욱이 천마총 유리잔은 1600여 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오늘날 유리 분야의 최고의 명품으로 꼽히는 랄리크의 유리병과 비교해봐도 손색이 없다.

르네 랄리크의 아들인 마르크 랄리크가 공장을 물려받은 후 특유의 기법을 살려 제작한 고급 유리병. [사진 랄리크 홈페이지]

르네 랄리크의 아들인 마르크 랄리크가 공장을 물려받은 후 특유의 기법을 살려 제작한 고급 유리병. [사진 랄리크 홈페이지]

그래서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BC 69~BC 30)가 사용했던 유리 장신구를 신라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647)도 시공을 초월해 똑같이 사용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해본다. 클레오파트라의 남편이자 로마의 장군 안토니우스(BC 83~BC 30)와 신라 김유신 장군(595~673)은 똑같은 유리잔에 술을 마셨을 수도 있다.

'오색영롱, 한국 고대 유리와 신라' 특별전 포스터 국립경주박물관

'오색영롱, 한국 고대 유리와 신라' 특별전 포스터 국립경주박물관

신비한 신라 유리를 감상할 수 있는 ‘오색영롱, 한국 고대 유리와 신라’ 특별전이 2020년 12월 8일부터 2021년 4월 11일까지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신라 사람들이 특별히 아끼고 사랑한 유리를 중심으로 한국 고대 유리의 전반적 흐름을 조명한다. 고대 유리를 주제로 한 최초의 대규모 전시로, 철기시대에서 통일신라 시대에 이르는 유리 제품 1만8000여 점을 선보인다. 천마총 유리잔과 황남대총 남분 출토 봉황 모양 유리병(국보 제193호)을 비롯한 국보 3건과 보물 8건이 포함되어 있다.

지금까지는 알지 못했다. 우리에게도 낯설고 이국적인 오색영롱한 유리가 존재했다는 것을. 이쯤 되니 의문이 밀려온다. 과연 신라인에게 금이 먼저였을까, 유리가 먼저였을까? 한국 고대 유리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주얼리 마켓 리서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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