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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존버'라는 각오로 때를 기다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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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이태호의 직장 우물 벗어나기(28)

신설 스타트업 법인 수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며, 신규 벤처투자 금액도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요즘이다. 이처럼 외형적으로는 붐에 가까운 스타트업 생태계 확장이 이뤄지고 있는 건 분명하다. 실제로 로켓 성장으로 이젠 스타트업이라는 명판이 무색할 정도로 잘 나가는 기업도 언론에서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대다수의 초기 기업은 지금 이 순간에도 다음 달에 문을 닫아도 전혀 이상치 않을 만큼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기업 10곳 가운데 4곳은 돈을 벌어 이자도 내지 못하는 한계상황으로 내몰린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기업의 전반적인 채무상환능력이 떨어지고 기업 간 차별화가 심화했으며, 지난해 코로나 경제충격으로 빚으로 연명하는 이른바 ‘좀비기업’이 증가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변변치 않은 매출액과 큰 폭의 적자를 기록하며 정부지원사업과 외부투자자금으로 연명하는 것을 ‘좀비기업’이라고 한다면 상당수의 초기 기업이 이에 속할 것이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기업 10곳 가운데 4곳은 돈을 벌어 이자도 내지 못하는 한계상황으로 내몰린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pxhere]

코로나19 확산 이후 기업 10곳 가운데 4곳은 돈을 벌어 이자도 내지 못하는 한계상황으로 내몰린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pxhere]

나 역시 코로나19로 인해 작년 한 해 직격탄을 맞았다. 주변의 많은 기업이 버티지 못하고 폐업을 선언했다. 창업한 뒤 3년 동안 여러 미팅에서 만난 거래처의 홈페이지를 오랜만에 접속해보니, 이제는 업데이트는 물론 접속이 되지 않는 홈페이지가 많아  그들의 현재 상황이 어렵지 않게 유추된다.

망하려고 창업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창업 전에 기대했던 것이 창업 이후에 바로 나타날 턱이 없다. 컨설턴트는 누구보다 쉽게 사업재편을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정작 본인이 그 안에 들어와 있으면 냉철한 시선으로 바라보기가 여간 쉽지 않다. 지금만 버티면 언젠간 사업계획서에 적혀있는 내용처럼 기회가 꼭 올 것만 같다.

그러다 보니 우리 스스로 알게 모르게 ‘좀비’가 되어 가고 있다. 창업자 본인의 희생만으로 버티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다는 것을 각자 스스로 잘 알고 있다. 나도 일종의 데드라인 같은 것을 스스로 정해 놨다. 그 기간까지 삶이 나아지지 않고 변변치 않으면 나의 실패를 인정하고 쿨하게 접자는 것이다. 물론, 말처럼 쉬울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 창업자에게 창업은 자식과도 같기 때문이다. 희생을 조금 더 연장하더라도 자식 같은 기업을 지키고 싶기에 말이다.

회사를 차리고, 어느 정도 시장에서 자리가 잡히기까지는 투입해야 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존재한다. 그때까지 창업가에게는 철저한 희생이 요구된다. [사진 pixabay]

회사를 차리고, 어느 정도 시장에서 자리가 잡히기까지는 투입해야 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존재한다. 그때까지 창업가에게는 철저한 희생이 요구된다. [사진 pixabay]

얼마 전 세계적인 가수의 반열에 오른 ‘BTS’ 역시 한때는 해체해야 하나 싶었을 때가 있었다고 한다. 역주행의 신화로 주목받고 있는 ‘브레이브 걸스’ 역시 해체를 앞두고 있었다. 그들의 사례는, 우리가 중도 포기가 아닌 끝까지 가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고 있다.

초기 기업은 대부분 망한다. 망했다는 건, 끝까지 살아남아 보겠다는 ‘좀비’의 길이 아닌 길을 택한 것인 게 된다. 스타트업의 필수 덕목을 ‘바퀴벌레 같은 생존력’이라고 이야기한다.

회사를 차리고, 소비자에 인지 되고, 어느 정도 시장에서 자리가 잡히기까지는 투입해야 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존재한다. 창업가는 철저한 희생이 요구된다. 힘들면 포기하고 싶어진다. 이 길이 맞나 싶어 사업계획서를 들춰보게 된다. 사업계획서 끝 페이지를 읽어내려가며 다시 힘을 내게 된다. 이렇게 우린 또다시 연명한다. ‘좀비’가 아닌 ‘존버’라는 각오로 때를 기다리고 있다.

올댓메이커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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