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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한번 1등은 영원한 1등' 당구 시장 독점 구조 깨려면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이태호의 직장 우물 벗어나기(26)

코로나 사태로 유난히 힘들었던 2020년의 연말이 다가오면서 올해의 성적표를 손에 쥔 자영업자의 표정이 암울하다. 비대면 업종으로 빠르게 전환해 나름 선방한 업체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1등과 꼴찌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고, 폐업선언도 속속 나오고 있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시장은 필수적으로 조정과정을 거칠 터인데,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사업자의 ‘진짜 실력’이 요구된다.

진짜 실력이란 외부의 충격이나 흐름에도 굳건히 매출과 수익을 유지하는 능력이 아닐까 싶다. 사실 코로나19가 아니라도 소비 시장엔 이미 비대면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소비자는 유튜브의 ‘리뷰 채널’로 최저가를 찾아 구매하고 있었고, AI(인공지능)는 내 소비패턴을 분석해 자동으로 내가 관심 있을 만한 물품의 광고를 배너에 띄워놓고, 구매를 유도했다. 나름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하며 유혹하는 인터넷 광고가 홍수를 이루었다. 이러한 기존의 흐름과 코로나19라는 외부충격이 맞물려 시장은 비대면이라는 이름으로 재편되고 있다.

많은 업체들이 좋은 것을 만들려는 노력은 뒷전이고 ‘더 좋아 보이게 하는 것’을 브랜딩이라 착각한다. [사진 pixabay]

많은 업체들이 좋은 것을 만들려는 노력은 뒷전이고 ‘더 좋아 보이게 하는 것’을 브랜딩이라 착각한다. [사진 pixabay]

한편에서는 비대면의 특성을 이용해 잘 만들어 판매하는 ‘진짜 실력’보다는 잘 보이려고만 하는 브랜딩과 홍보에 몰두하기도 한다. 시장에 막 진입한 신생사나 코로나19로 위기에 몰린 업체들 상당수가 그런 경우다. 각자의 제품과 서비스가 업계 최고라며 휘황찬란한 광고를 담아 소비자를 유혹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광고에 혹해 구매한 물건에 진심으로 만족한 적이 몇 번이던가? 결국 많은 소비자는 다시 원래의 1등 제품에 돌아가곤 한다. 진짜 실력을 쌓지 않고 마케팅에만 집중하면 1등에게 위기감을 전혀 안겨 주지 못하고 반짝하고 만다.

‘진짜 잘하는 것’과 ‘잘 보이게 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많은 이가 80점짜리 제품으로 90점의 리뷰와 피드백을 얻는 것을 브랜딩의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즉, 좋은 것을 만들려는 노력은 뒷전이고 ‘더 좋아 보이게 하는 것’을 브랜딩이라 착각한다.

기존의 플레이어가 긴장의 끈을 놓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어떻게 하면 빠르게 좋은 평판을 얻을까”에서 “나는 기존 업체와 어떤 다른 가치를 내놓고 있나”로 질문의 방향을 바꿔봐야 하지 않을까. [사진 pixabay]

기존의 플레이어가 긴장의 끈을 놓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어떻게 하면 빠르게 좋은 평판을 얻을까”에서 “나는 기존 업체와 어떤 다른 가치를 내놓고 있나”로 질문의 방향을 바꿔봐야 하지 않을까. [사진 pixabay]

내가 속해 있는 당구용품 시장 역시 수십 년 동안 상위권 업체들이 압도적인 점유율을 유지하며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이 시장에 새롭게 제품을 내놓으려 기존 업체들을 위협하는 신생사의 출현이 기다려진다. 현실은 시장 점유율 수치를 높여야 한다는 조급함 때문인지 ‘진짜 좋은 것’이 아닌 ‘더 좋아 보이게 하는 것’에만 치중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과연 기존 상위권 회사의 아성을 뛰어넘을 만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1등 업체에 쏠린 소비자의 마음을 빼앗아 오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당구용품 시장처럼 보수적인 시장일수록 장기적으로 가치를 쌓아가겠다는 발상이 전제되어야 하지만, 자금력이 달리는 중소사업자에겐 ‘기다림’ 덕목만큼 어려운 것이 없다. 그러다 보니 큰 포부를 안고 뛰어들었다가 중도 포기한 사례가 빈번해지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한번 1등이 수십 년 동안 1등을 유지하는 구조가 고착화했다.

시장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독점구조보다는 치열한 경쟁구조 체제가 확립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장에 지속해서 새 플레이어의 신제품이 출시되어야 하고, 이에 기존의 플레이어가 긴장의 끈을 놓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어떻게 하면 빠르게 좋은 평판을 얻을까”에서 “나는 기존 업체와 어떤 다른 가치를 내놓고 있나”로 질문의 방향을 바꿔봐야 하지 않을까.

올댓메이커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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