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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창업가가 개인 생활 누린다는 건 호사이자 사치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이태호의 직장 우물 벗어나기(27)

얼마 전 늦은 밤에 SNS에 올라온 한 스타트업 대표의 글이다.

“쉬어야겠다. 술 몇 잔 더하고 잠을 좀 더 청하는 것이 아니라 좀 무언가를 놓아야겠다. 사업을 하는 삶은 생각보다 멋이 없다. ‘제발 안 망했으면 좋겠다. 제발, 제발’을 되뇌는 것이 80%인, 끝없는 불만족의 과정이다. 그리고 남은 20%의 여유로 세상에 없던 걸 만들고 누군가의 삶을 유지하게 하는 데 쓴다. 하지만 얼마나 성장하고 뭘 더 해야 하는지. 사업은 안타깝게도 이성적인 영역이고 자본과 자원으로 이루어지기에, 이런 오랜 고민의 과정은 나의 삶을 갉아먹는다. 정작 내가 행복해지기 위한 신년 계획은 사업을 시작하고 세워본 적도 없고 그럴 여유도 없다. 나 자신을 너무 갉아먹었다.”

평소에 존경하는 대표이기도 했거니와, 최근까지도 큰 규모의 투자유치와 매년 100%씩 로켓 성장으로 사업이 번창하고 있었기에 이 글을 읽고 매우 의아했다.

글 속의 내용은 나와 비슷한 초기 창업가나 성장하지 못하고 위기에 봉착한 사업가나 느낄 법한 감정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제법 성공 가도에 올라선 창업가도 저런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에 ‘도대체 창업가의 고민 끝은 어디일까. 성장을 하면 성장을 하는 대로 또 엄청난 고민의 연속이구나. 우린 언제쯤 행복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스타트업은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을 해내야 하고, 입증해야만 한다. [사진 unsplash]

스타트업은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을 해내야 하고, 입증해야만 한다. [사진 unsplash]

망해가는 회사는 물론, 성장하는 회사 역시 계속된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어느 단계에 있든 우린 지속해 성장해야만 하는 암묵적인 룰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스타트업은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을 해내야 하고, 입증해야만 한다. 그러다 보니 창업가에게는 매사에 사업의 생존과 성장이 우선시 되고, 본인 자신의 성장이나 개인적인 삶에 대한 계획은 늘 뒷전일 수밖에 없다.

나 역시도 사업을 시작하고 매년 초 회사의 신년 계획과 목표를 꼼꼼히 세우고, 매일 퇴근과 동시에 다음 날의 ‘To-Do 리스트’는 철두철미하게 세우면서도, 정작 나 자신의 계획에 대해서는 세워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창업한 이후로는 사업과 나의 삶이 동일시 여겨지는 계획뿐이었다. 회사의 매출액 달성이 나의 계획이었고, 나의 목표였다.

창업가들끼리 모여 술 한잔하게 되는 날에는, “나야 내가 선택한 길이지만, 나 때문에 고생하는 가족에게 미안하다”라는 말을 꽤 많이 한다. 모처럼 가족들하고 개인적인 시간을 보낼 때도 머릿속의 회사 일을 떨쳐내기가 쉽지 않다고들 한다. 자신을 갈아서 회사의 생존과 맞바꿨다는 ‘웃픈’ 이야기도 많이 한다.

올해는 회사의 계획을 세우는 데 들인 공 만큼, 창업가 자신의 계획을 세우는 데에도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진 unsplash]

올해는 회사의 계획을 세우는 데 들인 공 만큼, 창업가 자신의 계획을 세우는 데에도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진 unsplash]

이처럼 창업가인 우리 대부분은 지금 개인의 삶보다는 회사의 성장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살게 되어 있다. 개인의 생활을 누린다는 것은 나중 성공했을 때 추후의 일로만 미루어 생각하게 되고, 현재의 자신에게는 호사이자 사치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매스컴 창업가의 이야기 뒷면에는 상당한 멋없음이 상존한다.

창업가는 성공의 화려함을 누구보다 꿈꾸지만, 오히려 실상은 화려한 껍데기보다 생존하기 위해 해야만 하는 일상적인 일이 꽤 많고, 외로움이 극에 닿아있는 존재다. 창업가도 사실 성공확률보다 실패 확률이 더 높은 게임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자신의 사업만큼은 성공의 확률 안에 들게 하기 위해 오늘도 끊임없는 고뇌의 연속을 보내고 있다.

실제로 창업을 결심하는 그 순간부터 절벽에서 뛰어내린 것과 같은 상태가 되어 머릿속은 온통 본인이 한 선택에 대한 책임감과 불안감으로 가득 차 있고 본인이 선택한 이 길이 옳았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존재한다.

이런 ‘숙명’을 선택한 나를 포함한 창업가의 삶을 격렬히 응원한다. 그리고 올해는 회사의 계획을 세우는 데 들인 공만큼, 창업가 자신의 계획을 세우는 데에도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올댓메이커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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