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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기술자와 고수는 다르다"…'영원한 국수' 김인 9단 [1943~2021.4.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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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1966년 제10기 국수전에서 조남철 국수를 꺾고 한국 현대바둑 사상 첫 세대교체를 달성한 김인 국수(왼쪽). [중앙포토]

1966년 제10기 국수전에서 조남철 국수를 꺾고 한국 현대바둑 사상 첫 세대교체를 달성한 김인 국수(왼쪽). [중앙포토]

김인 9단

김인 9단

한국 바둑계의 거목, ‘영원한 국수(國手)’ 김인(사진) 9단이 4월 4일 별세했다. 78세.

15세 입단, 23세 국수전 첫 제패 #한국 현대바둑 첫 세대교체 이뤄내 #국수 6연패, 왕위전 7연패 전성기 #상금 털어 어려운 후배들 잘 챙겨

1943년 전남 강진에서 태어난 고인은 한국 현대바둑에서 첫 번째 세대교체를 이뤄낸 인물이다. 한글을 깨칠 무렵 접한 바둑이 평생의 길이 됐다. 1955년 바둑판을 안고 홀로 상경, 김봉선 5단과 아마 고수 이학진을 사사했다. 본격적으로 바둑을 배운지 3년 6개월 만인 58년 15세 나이에 입단하면서 ‘중후한 기풍과 심연의 수읽기’란 평가를 받았다.

1962년 제6기 국수전에서 ‘한국 현대바둑의 개척자’ 조남철 국수에게 도전했으나 패한 후 조 국수의 소개 편지로 당시 세계 바둑의 메카로 통하던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기타니 미노루 9단을 사사했다. 일본 언론은 김인과 일본의 오다케(大竹英雄), 대만의 린하이펑(林海峰) 등 동아시아 3국 천재들을 한데 묶어 ‘김죽림(金竹林) 시대’를 예언하기도 했다.

김 국수(오른쪽)는 같은 해 중앙일보가 주최한 제1기 바둑왕위전에서도 우승했다. 이후 김 국수는 왕위전 7연패, 패왕전 7연패, 국수전 6연패 등 기전을 휩쓸었다. [중앙포토]

김 국수(오른쪽)는 같은 해 중앙일보가 주최한 제1기 바둑왕위전에서도 우승했다. 이후 김 국수는 왕위전 7연패, 패왕전 7연패, 국수전 6연패 등 기전을 휩쓸었다. [중앙포토]

1963년 귀국한 고인은 66년 10기 국수전에서 조 국수를 꺾고 우승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20년간 한국 바둑을 군림해온 조남철의 아성을 허물고 김인 시대의 출발을 알린 것이다. 1971년 15기 국수전까지 6연패를 달성해 바둑계에서 ‘영원한 국수’, ‘김국수’ 등으로 불렸다. 이후 조훈현 9단에게 한국 바둑 일인자 자리를 넘길 때까지 고인은 왕위전과 패왕전을 각각 7연패 하는 등 10여년 간 총 30회 우승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프로생활 63년간 통산 전적은 1568전 860승 5무 703패. 1968년의 40연승은 현재까지 한국기원 최다 연승 1위 기록이다.

1960~70년대 한국 바둑의 도약 시기를 평정한 고인이지만 악착스럽고 비정한 승부사는 아니었다. 바둑의 도(道)를 추구하는 이상주의자이자 낭만주의자였다. “기계처럼 단련하고 세상사를 잊어버린 채 전력을 기울여 승리만을 추구해 이겨지는 게 바둑이라면 그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바둑의 기술자와 바둑의 고수는 다른 것”이라는 게 그의 소신이었다. 고인은 조명 밑에서 시간에 쫓겨 둬야 하는 TV 바둑이 바둑의 본질에 어긋난다며 KBS 바둑왕전에는 끝까지 참가하지 않았다.

2005년 11월 열린 ‘현대바둑 60주년 기념식’에서 한국 바둑의 일인자 계보를 이어온 김인 9단, 조훈현 9단, 이창호 9단(오른쪽부터)이 핸드 프린팅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2005년 11월 열린 ‘현대바둑 60주년 기념식’에서 한국 바둑의 일인자 계보를 이어온 김인 9단, 조훈현 9단, 이창호 9단(오른쪽부터)이 핸드 프린팅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고인은 술과 친구를 좋아하는 호인이기도 했다. 상금과 대국료를 풀어 형편이 어려운 후배들을 챙기는 데 앞장섰다. 후배들은 그를 변치 않는 ‘청산(靑山)’이라 부르며 따랐다. 박치문 바둑 칼럼니스트는 “결과보다 과정을 더 중시하는 ‘장이’였고, 모든 사람의 귀감이 될 만한 인품의 소유자였다”고 고인을 기렸다.

2004년부터 한국기원 이사를 지낸 그는 투병 중에도 바둑대회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중국 등 해외에서 국제 바둑대회가 열리면 늘 한국 선수단의 단장으로 동행했다. 고인은 2007년부터 고향 강진에서 열리는 ‘김인 국수배’에 대회장으로 참여해 아마추어 기사들과 만나는 것을 즐거워했다. 전국 어린이 바둑대회로 출범한 김인 국수배는 2008년 국제 시니어 바둑대회로 업그레이드됐다. 2019년 제13회 김인 국수배를 마지막으로 참관했던 고인은 지난해 코로나19 여파로 대회가 열리지 못한 것을 무척 안타까워했다고 전해진다.

유족으로는 부인 임옥규씨와 아들 김산씨가 있다. 4월 6일 영결식이 한국기원장으로 거행됐다. 장지는 경기도 광주 시안추모공원. 평생 바둑 발전과 보급에 이바지한 공로로 고인에게 지난 10월 체육훈장 맹호장이 수여됐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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