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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도저’ 김현옥 도로 닦고, 구자춘은 지하철 2호선 초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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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호 06면

당신의 삶을 바꾸는 서울시장 

구자춘 시장이 확정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중 을지로~사당 구간이 1983년 개통됐다. [중앙포토]

구자춘 시장이 확정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중 을지로~사당 구간이 1983년 개통됐다. [중앙포토]

대한민국 국토의 0.6%에 불과하지만 전체 인구의 20%가 사는 곳, 서울특별시. 해방 직후인 1946년 서울시로 출발한 이후 지금까지 권한대행을 제외하고 31명이 서울시장 자리를 역임했다. 첫 시장은 김형민. 경성부윤이라는 직함으로 시작했다가 서울특별자유시장으로 바뀌었다.

역대 관선 서울시장들 #김, 고가도로·터널 등 숱한 작업 #염보현, 올림픽 앞두고 도시 정비

2대 시장은 윤보선, 3~4대 시장은 이기붕이다. 1960년 3·15 선거에서 이기붕이 부통령으로 당선됐으나 부정선거로 4·19 혁명이 일어났다. 결국 이기붕은 아들에게 살해되고, 윤보선은 2대 대통령이 된다. 이때 첫 민선 서울시장(김상돈)도 나왔지만 이듬해 5·16 쿠데타로 이후 30년간 대통령이 임명하는 관선시장 시대가 이어진다.

관선시장 가운데 14대 김현옥 시장(1966~70년)은 서울의 간선교통 체계를 재정비한 장본인으로 꼽힌다. 군인 출신으로 ‘불도저’라는 별명답게 ‘돌격’이라고 쓰인 헬멧을 쓰고 건설 현장을 돌았다. 지금은 철거된 우리나라 최초의 고가도로인 아현 고가도로를 비롯해 북악스카이웨이, 청계 고가도로, 서울역 고가 도로 등과 한강대교 남단에서 여의도를 잇는 강변1로(지금의 노들로), 한강 북단의 강변대로(양화대교 북단~성동교) 등을 만들었다. 남산1·2호 터널, 삼청터널, 사직터널도 김현옥 시장의 작품이다. 교통뿐 아니라 건설에도 힘을 실어 종로 3가에 세운상가를 만들고 여의도 개발과 함께 서울대교(지금의 마포대교)도 건설했다. 판자촌을 철거하고 응암, 사당, 연희동 등에 434개동 1만7000가구의 시민아파트를 지었다. 6개월만에 아파트를 올리는 부실공사 탓에 와우 아파트가 4개월만에 붕괴되면서 불명예 퇴진했다.

16대 시장인 구자춘은 서울 지하철 2·3·4호선의 기반을 마련했다. 특히 왕십리~을지로~마포~여의도~영등포로 예정됐던 2호선 노선을 20분만에 지도에 연필로 슥슥 그어 당산과 사당·잠실을 지나는 순환선으로 만들었다(손정목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3권)는 일화로 유명하다.

20대인 염보현 시장은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도시 정비에 큰 업적을 남겼다. 올림픽 경기장 건설과 함께 한강종합개발을 시작했고, 올림픽 대로와 올림픽 대교도 만들었다. 재임 기간 지하철 2·3·4호선을 완공했고, 가락동 농수산물시장, 목동신시가지도 건설했다. 이후 1995년 민주화와 함께 다시 민선 시장 시대가 열리며 조순, 고건, 이명박, 오세훈, 박원순 시장이 차례로 서울을 이끌었다.

마지막 관선시장인 29대 최병렬 시장은 성수대교 붕괴 사고 직후 취임했다가 퇴임 전날인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겪었다. 선거를 통해 당선된 후임 조순 시장은 임기 첫날을 사고 현장에서 시작했다.

김창우 기자 changwoo.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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