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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백신 앞 '각자도생'…美는 "물량 넉넉, AZ 필요 없을 수도"

중앙일보

입력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30일(현지시간) 네번째 아스트라제네카 접종 권고 사항을 발표하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30일(현지시간) 네번째 아스트라제네카 접종 권고 사항을 발표하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에 비상이 걸린 유럽 국가들이 백신 문제를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을 놓고 여전히 혼선이 빚어지고 있는 데다, 유럽연합(EU) 내 백신 배분을 놓고 '각자도생'식 행보를 보이는 회원국들도 생겨나면서다. 반면 백신 확보량이 넉넉한 미국에선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쓰지 않아도 충분히 전 국민 접종을 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EU 회원국 대사들은 2분기에 공급될 화이자 백신 1000만 회분의 배분 방식을 정했다. 며칠간 이어진 회의 끝에 나온 결론으로, EU 회원국 내에 백신이 부족한 5개국(불가리아·크로아티아·에스토니아·라트비아·슬로바키아)에 더 많은 물량을 배분하기로 했다.

각국 인구에 비례한 배분 물량에 더해 285만 회분을 추가로 5개국에 나눠준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동의한 19개 회원국은 자국 몫의 백신을 줄이기로 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체코·슬로베니아 등 일부 회원국은 자국 몫을 양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오스트리아의 '독자 행보'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 [AFP=연합뉴스]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 [AFP=연합뉴스]

특히 오스트리아의 독자적 행보가 두드러지고 있다. 백신 확보 문제로 EU 집행위와 부딪혔고, 아직 유럽의약품청(EMA)의 승인이 나오지 않은 러시아 백신 스푸트니크V 도입에도 먼저 뛰어들었다.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는 이번 회의에 앞서 "일부 회원국이 공평한 몫보다 백신을 더 받고 있다"면서 "백신 배분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EU 집행위에 건의했다. EU 외교관은 AFP 통신에 "쿠르츠 총리가 부족한 연대 의식을 드러내며 5개국을 버렸다"고 비판했다.

지난달 30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오스트리아는 러시아와 '스푸트니크V' 100만회분 도입을 협의 중이다. 쿠르츠 총리는 이와 관련해 "백신 도입을 고려할 때 생산국가가 아닌 효능과 안정성만 검토해야 한다"면서 " (러시아에서) 100만 회분 백신을 추가로 확보한다면 정상화를 앞당기고 많은 인명과 일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스트리아에 이어 독일과 프랑스도 스푸트니크V 백신 도입 문제를 놓고 정상 간 회의를 열었다. 1일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독일·프랑스·러시아 정상은 지난달 30일 화상 정상회의를 열고 스푸트니크V 백신의 유럽의약품청(EMA) 승인 가능성과 승인 이후 현지 합작 생산 가능성에 대해 논의했다.

독일 AZ 놓고 오락가락   

1일(현지시간) 밤 독일 코블렌츠 시내 모습. 코로나19 확산으로 거리가 텅 비었다.[AP=연합뉴스]

1일(현지시간) 밤 독일 코블렌츠 시내 모습. 코로나19 확산으로 거리가 텅 비었다.[AP=연합뉴스]

독일에서는 아스트라제네카(AZ) 접종 방식을 놓고 여전히 혼선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30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AZ 백신을 60세 이상에게만 접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AZ 백신 관련 4번째로 바뀐 권고다. 지난 1월 말 독일은 '안전성 자료 부족'을 이유로 들어 AZ 백신을 65세 미만에게만 접종하기로 했다가 뇌정맥동혈전증(CVST)사례가 보고되자 AZ 백신 접종을 일시적으로 중단했다. 이후 유럽의약품청(EMA)이 AZ 접종 권고를 유지하자 독일은 지난달 19일 접종을 재개했다. 이번에는 처음에 내놓은 정책과 '정반대'의 정책을 발표했다. AZ를 접종한 사람 중 뇌혈전증 사례가 젊은 여성들 위주로 나타나자 60세 이상에게만 접종을 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메르켈 총리는 AZ 접종 관련 네 번째 권고 사항을 발표한 자리에서 '오락가락 정책이 혼란을 가중하는 게 아니냐'는 질의를 받고 "솔직함과 투명성이 최고의 수단"이라고 대답했다. "사례가 발생했는데 이를 무시하고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 권고를 바꿔 혼란을 주는 것보다 백신에 대한 신뢰를 더 흔든다"는 것이다.

유럽이 백신 수급 문제와 접종 방식을 놓고 갈팡질팡하는 사이 코로나19는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한스 클루지 유럽지역 국장도 유럽의 백신 접종 속도에 대해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느리다"고 경고했다. 그는 "유럽 내 80대 이상(백신 접종)을 제외한 모든 연령층에서 신규 감염이 증가하고 있고, 변이 바이러스 확산으로 부담이 커지고 있다"면서 "최선을 다해 백신 물량을 확보하고 빨리 접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파우치 "아스트라제네카 필요 없을 수도" 

반면 상대적으로 백신 확보와 접종 속도가 빨랐던 미국은 여유로운 표정이다.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은 1일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미국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필요 없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파우치 소장은 이날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사용할지를 묻는 말에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라며 "미국 보건당국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사용 승인해도 미국은 그 백신이 필요치 않을 수 있다는 느낌이 든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미국은 다른 여러 백신 제조사와 공급 계약을 충분히 맺어 아스트라제네카에서 공급받지 않아도 모든 인구를 접종할 수 있을 만큼 물량이 있다"면서 "이번 가을에 추가 접종(부스터 샷)을 하기에도 충분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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