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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뚝´ 주민 98명인 전남 보성 장동 마을

중앙일보

입력

전남 보성군 문덕면 용암1구 장동마을. 46가구 주민 98명이 농사를 짓고 사는 이 조그만 산골마을에 집집마다 재떨이가 사라진 지 오래다. 주민 전체가 담배를 끊어 금연마을이 됐기 때문이다.

장동마을에서 담배 연기가 사라진 것은 1년6개월 전. 마지막 흡연자였던 이 마을 둘째 고령자 정일만(85)씨가 지난해 1월 금연 대열에 동참하면서 흡연자가 한 명도 없는 마을이 됐다.

이 마을은 5년 전만 해도 40세 이상 성인 남자 50여 명 중 45명이 담배를 피웠다. 이들 모두 힘든 농사일을 하면서 담배 연기 한 모금으로 피로를 달래온 애연가였다.

그러나 이들에게 '시련'이 찾아온 것은 1998년 마을에 회관이 들어서면서부터다. 주민 공동휴식처인 회관 안에서 담배 냄새가 나는 것을 싫어하는 주민들이 늘면서 여성 등 비흡연자들이 똘똘 뭉쳐 회관에 흡연자 출입금지령을 내렸다. 특히 마을 경로당에서조차 담배를 피울 수 없게 되자 흡연자들은 발 붙일 곳이 없어졌다.

마을회관을 찾는 흡연자들은 주민들과 함께 윷놀이 등을 하다가도 담배가 생각나면 추운 겨울에도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그러자 흡연자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담배를 끊어야겠다는 분위기가 조성돼 2년 만에 10여 명이 담배를 끊었다. 그 뒤 주민들 사이에서 금연운동이 급속도로 퍼졌다. 일부 흡연자는 "담배를 끊느니 차라리 마을회관에 가지 않겠다"며 버티기도 했다.

99년 이 마을이 전남도의 환경친화마을로 지정되면서 금연운동은 결정적인 계기를 맞게 됐다.

각 가정에서는 담배를 피우는 가장들에게 "가족들의 건강도 생각하라"며 혹독하게 질책하기도 했다.

7년 전 담배를 끊은 이상훈(72)씨는 "처음엔 (비흡연자) 주민들과 무척 싸우기도 했으나 담배를 끊고 나니 기관지 등 건강이 훨씬 좋아졌다"고 말했다. 50여 년 동안 피우던 담배를 3년 전 끊은 이 마을 최고령자인 이수업(90)씨는 처음 1년여 정도는 자면서도 담배를 찾는 꿈을 꾸는 등 금단현상을 보였다. 그때마다 가족들은 박하사탕.홍시 등 군것질을 내놓아 담배를 잊도록 했다.

이씨는 "'앞으로 얼마나 산다고 그러느냐'며 담배를 끊으라고 하는 자식들을 혼도 냈지만 금연을 하니 더 젊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없자 마을에서 담뱃가게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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