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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저도 한땐 인터넷 도박에 빠졌더랬어요"

중앙일보

입력

서울의 한 병원에서 정신과 상담요원으로 근무하던 1999년 어느 날. 그는 우연히 인터넷 게임 사이트에 접속해 들어갔다가 이런저런 게임에 재미를 붙이게 됐다. 가장 깊이 빠져들었던 건 '고스톱'과 '포커'. 점점 게임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밤을 꼴딱 새고 출근하는 일도 잦아졌다. 사이트에서 만난 사람들과 온라인상에 따로 모여 돈내기도 했다. 그렇게 1년이 흘렀다.

"화투 한 장 구경할 수 없었던 집안에서 자란 제가 그렇게 변할 줄은 정말 몰랐어요. 도박 외에는 모든 게 시들하더라고요. 자리에 누워도 패 돌아가는 장면이 떠오르고, 패 섞는 소리도 들려오는 거예요. 직장생활 10년간 모았던 그 많던 돈이 눈 녹듯 사라진 것은 물론이고요. 사람 꼴이 이게 뭔가 싶더군요."

'이게 도박 중독이구나.' 이론적으론 알고 있었지만 정작 자신이 그렇게 되니 기가 막히더라고 했다. 모질게 마음먹고 손을 뗐지만 5년이 지난 지금도 안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도박 중독은) 완치를 단언할 만큼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001년 9월 강원랜드 부설 한국도박중독센터가 설립될 때부터 전문상담원으로 일하고 있는 신행호(38)씨는 한때 도박 중독자였던 자신이 상담 전문가로 변신하게 된 사연을 이렇게 솔직히 털어놓았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정신보건 전문요원 자격시험에 합격해 상담요원으로 일하고 있을 때였어요. 평소 알고지내던 건국대 이영분 교수님께서 도박 중독자 상담 업무를 해볼 의향이 있느냐고 제안하셨어요. 제 쓰라린 경험이 떠올라 선뜻 응했지요. 교수님께선 제가 도박 문제에 관심이 있다는 건 알고 계셨지만 아마 이런 사정이 있는 줄은 모르셨을걸요."

동병상련이었을까. 그는 열성적으로 도박 중독자들을 상담했다. 지난해 7월 분소 격인 서울상담소(종로구 수송동)가 세워지기 전까지는 강원도 정선군 강원랜드에 상주하며 주말부부 생활을 마다하지 않고 일했다. 최근엔 보호관찰 도박사범을 대상으로 하는 집단 상담프로그램을 개발해 8월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갈 예정이다.

"도박 문제가 그렇게 심각한가"하고 우문(愚問)을 던졌더니 신씨는 이런 얘기를 했다.

"한 중소건설업체 사장님이 수십억 재산을 도박으로 날리고 죽고 싶다며 찾아오셨어요. 그 뒤 1년간 도박을 안 하셨는데…. 막노동으로 돈을 좀 모으자 다시 손을 댔다는 거예요. 흔히 돈이 떨어지면 도박을 그만둘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가 않아요."

결국 '예방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혹 증세가 있다고 여겨지면 바로 상담소를 찾으라고 했다. 그는 정부 당국에 쓴소리도 했다.

"국민의 약 18%가 도박 중독 증세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요. 다른 나라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정부가 나서서 사행산업을 해요. 국가 차원의 대책 마련은 뒷전이고요."

*** 혹시 나도 도박 중독?

1. 일이나 공부대신 도박으로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2. 도박 때문에 가정이 불행해진 적이 있다

3. 도박이 내 평판에 악영향을 끼친 적이 있다

4. 도박 후 후회하거나 가책을 느낀 적이 있다

5. 빚 등 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박한 적이 있다

6. 도박 때문에 능력 감소를 경험한 적이 있다

7. 잃은 돈을 도박으로 되찾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8. 돈을 따고서도 더 따겠다는 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

9. 판돈이 완전히 떨어질 때까지 도박을 하게 된다

10. 도박을 위해 돈을 빌린 적이 있다

11. 돈 될 만한 것을 팔아 도박한 적이 있다

12. 생활비를 도박밑천으로 쓰는 게 아깝지 않다

13. 도박 때문에 자신과 가족을 소홀히 한 적이 있다

14. 당초 계획보다 오랜 시간 도박한 적이 있다

15. 불안감이나 걱정거리를 피하려고 도박한 적이 있다

16. 도박 밑천 마련을 위해 나쁜 일을 계획한 적이 있다

17. 도박 때문에 수면 취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 적이 있다

18. 부부싸움.의견대립 등으로 도박 충동을 느낀적이 있다

19. 도박으로 한밑천 잡아보겠다는 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

20. 도박 때문에 자살이나 자해를 생각해본 적이 있다

<위의 '도박 중독 자가진단표' 중에서 네 가지 이상에 해당하면 가능성이 높고' 일곱 '반드시 전문가 상담을 받아야 하는' 단계임>

※자료=한국도박중독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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