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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연령 낮추자”→“20대 경험치 낮다” 與의 독한 변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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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저는 어떤 후보 말대로 경험치 없는 20대입니다. 20대가 왜 박영선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는지 이유를 공개 하겠습니다.”

28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앞 광장에서 열린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유세에서 취업준비생 양준우(27)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양씨는 “미래 세대에 빚만 떠넘기는 (여권의) 행태에 염증이 났고, 건물주·토착 왜구·부자를 갈라치는 분열의 정치에 신물이 났다”며 “(문 대통령이 약속한) 평등·공정·정의가 조국, 윤미향,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 박원순 전 시장의 성추행 사건으로 인해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양씨 등 청년들의 발언을 담은 유튜브 영상은 온라인상에서 “유세장을 찢어놨다”(좌중을 압도했다는 의미)는 반응을 끌어내며 화제 몰이를 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가 1일 서울 양천구 목동종로학원 앞에서 열린 집중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오종택 기자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가 1일 서울 양천구 목동종로학원 앞에서 열린 집중유세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오종택 기자

과거 20대는 국내 정치에서 '진보'를 상징하는 세대였다. 하지만 최근 “60대 이상과 더불어 집권 여당에 가장 부정적인 세대”라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도 이런 현상을 뒷받침한다. 뉴시스-리얼미터 여론조사(3월 30~31일 조사)에서 20대의 오 후보 지지율은 51.2%, 박 후보 지지율은 32.7%로 18.5% 포인트 격차였다.
같은 기간 뉴스1-엠브레인퍼블릭 조사에서도 20대 지지율은 오 후보(37.2%)가 박 후보(19.3%)를 17.9% 포인트 격차로 앞섰다. (기사에 인용된 자세한 여론조사 수치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20대의 변심을 불편해하는 직설적 반응이 여권에서 나왔다. 박영선 후보는 지난달 26일 “20대는 과거의 역사에 대해서 30~50대보다는 경험 수치가 좀 낮지 않은가”라고 말해 논란이 일었다. 평소 문재인 대통령을 공개 지지해왔던 시인 류근(56)씨는 SNS에 “20대 청년이 그 시간에 전화기 붙들고 앉아서 오세훈 지지한다고 뭔가를 누르고 있다면, 얼마나 외로운 사람인가”라고 비꼬았다. 강성 친문(親文) 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20대가 우경화됐다”, “고생을 안 해봐서 철이 없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문 정부 탄생 주역 20대, 與 과거엔 ‘극찬 일색’

2018년 3월 22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진행된 개헌안 3차 발표. 왼쪽부터 진성준 당시 정무기획비서관, 조국 민정수석, 김형연 법무비서관. [청와대사진기자단]

2018년 3월 22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진행된 개헌안 3차 발표. 왼쪽부터 진성준 당시 정무기획비서관, 조국 민정수석, 김형연 법무비서관. [청와대사진기자단]

20대를 바라보는 여권의 눈길이 처음부터 곱지 않았던 건 아니다. 원래 20대는 문재인 정부 탄생의 주역 중 하나였다. 2017년 대선 방송3사 출구조사에서 문 후보를 뽑았다는 20대 응답은 47.6%로 안철수(17.9%), 유승민(13.2%) 후보를 크게 앞질렀다.

문재인 정부 초기인 2017년 중반만 하더라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20대의 국정운영 지지율이 무려 90%를 넘기도 했다. 당시 여권은 청년층에 극찬 일색이었고, 이는 정부·여당이 만 18세 선거 연령 하향을 추진한 배경 중 하나였다. 2017년 우상호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는 “우리 청소년 정치의식이 외국보다 안 떨어진다”고 말했고, 2018년 3월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은 “선거 연령 하향은 더는 늦출 수 없는 시대의 요구”라고 강조했다.

공정 논란, 부동산 폭등, 성추행에 등 돌려

3월 17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기자회견에 고 박원순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자리가 마련돼 있다. 뉴스1

3월 17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기자회견에 고 박원순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자리가 마련돼 있다. 뉴스1

하지만 정부·여당을 향한 20대 지지율은 조금씩 금이 갔다. 시작은 20대 남성이었다. 2018년 이후 젠더 갈등 문제가 심화하자 20대 남성들의 ‘탈문(脫文) 현상’이 두드러졌다. 이후 조국 사태, 인천국제공항공사(인국공) 사태,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 아들 군 복무 특혜 논란이 잇따라 터지자 젊은 층은 더욱 술렁였다.

쐐기를 박은 건 부동산값 폭등 사태였다. 여기에 여권 인사들의 연이은 성 추문과 2차 가해가 논란이 되자 한 때 문 대통령 지지율을 든든하게 지켰던 20대 여성들마저 고개를 가로젓기 시작했다. 알앤써치 여론조사(15~16일 조사)에서 20대 여성의 문 대통령 지지율은 33.6%로 부정평가(51.7%)가 더 높았다.

“보수 집토끼” vs “이념 얽매인 세대 아니다”

3월 28일 오세훈 후보의 선거 유세에 참여한 한 양준우씨가 오 후보 지지 연설을 하고 있다. [오세훈TV 유튜브 캡처]

3월 28일 오세훈 후보의 선거 유세에 참여한 한 양준우씨가 오 후보 지지 연설을 하고 있다. [오세훈TV 유튜브 캡처]

하지만 문 대통령과 민주당에 등 돌린 20대들이 ‘보수 집토끼’로 자리 잡을 것이냐에 대해선 정치권 의견이 분분하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86세대와 강성 친문 세력의 허위와 위선에 질색한 20대들이 우리 당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고, 이런 지지세가 굳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 국민의힘 등 야권이 제대로 된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면 “20대는 언제든 등질 준비가 돼 있다”는 해석도 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중앙일보에 “민주화 운동,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등을 거치며 정치권과 동류의식을 느끼는 40대와 달리 20대는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개인의 삶을 중시하는 성향을 보인다”며 “이번 선거에서 20대의 정권 심판론이 우세하지만, 향후 국민의힘과 순조롭게 결합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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