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마음 다이어리

거짓말·절도·동물학대 잦은 아이, 약물·행동치료 병행을

중앙선데이

입력 2021.03.27 00:21

업데이트 2021.03.27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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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9호 28면

[아이 마음 다이어리] 품행장애

아이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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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래전 일이라 그 남학생의 얼굴과 이름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나이는 열세 살쯤 됐다. 몇 개월 후 그의 가족은 외국으로 이민을 간다고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 나는 정신과 전문의 면허를 갓 취득한 초보 소아정신과 의사였다. 학생의 엄마는 한국을 떠나기 전 남은 기간 아이의 문제행동을 개선해 달라며 병원을 찾았다.

사회적 규범 어기는 행동 되풀이
타인 감정에 무신경, 죄책감 없어
성인기에 사이코패스 될 수도

문제행동 땐 부모가 단호히 대처
조기 발견, 적극적 환경 교정 중요

아이가 가진 문제는 여럿 있었다. ▶거짓으로 학교에 간다고 말하고 PC방에서 하루 종일 보내기 ▶말없이 가출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부모에게 미안한 기색이 없음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를 고층 베란다에서 일부러 떨어뜨림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 학용품을 자주 훔쳐서 강제 전학 당함.

ADHD 방치 땐 품행장애 될 가능성 커

나는 아이와 단둘이 면담을 시작했다. 엄마는 아이가 병원에 온 것이 자기 뜻이 아니어서 불만일 것이라고 귀띔해 주었다. 아이는 그 불만을 온몸으로 표현하듯 나와 면담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책상 한쪽 모서리에 눈을 고정하고 나에게 전혀 눈길을 주지 않았다. 사전 초진 설문지에 “아이가 엽기적인 블로그에 자주 들어감”이라고 쓰인 것을 상기했다.

“참, 네가 자주 들어가는 블로그가 있다면서? 선생님도 어떤 곳인지 한번 보고 싶은데 보여 줄 수 있을까?” 내가 친근한 말투로 물었다. 책상 한쪽에 고정돼 있던 아이의 시선이 서서히 나를 향했다. “근데 여기 인터넷 돼요?” 아이가 무심하게 물었다. 면담 시작 15분 만에 아이가 처음으로 던진 말이었다. 20년 전 인터넷이 썩 원활하지 않았던 시대에는 자연스러운 질문이기도 했다. “물론이지. 인터넷 잘돼. 네가 인터넷 창에 직접 주소를 쳐 볼래?” 나는 아이 쪽으로 키보드와 모니터를 돌렸다. 아이가 침묵을 깬 것이 내심 반가웠고 블로그를 매개로 상담을 진행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주저 없이 블로그 주소를 입력했고 순식간에 사이트에 접속했다.

“그런데, 선생님 보시면 놀라실 텐데? 뭐 의사이시니 괜찮겠죠?”라며 혼잣말인지 나에게 말하는지 구분이 안 되는 톤으로 중얼거렸다. 모니터를 본 나는 놀랐다. 아이가 접속한 블로그에는 동물들의 사체나 해부 사진들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더욱 나를 경악하게 한 것은 그런 사진들을 보여 주며 태연하게 웃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었다. “이런 사진들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들어?” 나는 물었다. “기분 좋으니까 보겠죠?”라고 아이는 무심히 대답했다. 이후로 나는 아이와 4~5차례 더 면담을 진행했다. 중학생 나이임에도 아이는 이야기로 하는 면담을 힘들어했다. 뜻밖에도 진료실 코너에 배치된 장난감들에 관심을 보였다. 특히 장난감 칼이나 사자나 공룡 피규어를 좋아했고 놀이는 약간 과격했다. 몇 차례 진료 후 더는 내원하지 않았고 이후로 아이의 소식은 전혀 듣지 못했다.

아이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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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과대학에서 학생들에게 품행장애(conduct disorder)를 가르칠 때 이 사례를 언급하곤 한다. 아쉬움이 크기 때문이다. 현재의 내가 그 아이를 처음 진료한다면 어떻게 상담하고 치료할 것인가 상상한다. 아마 부모에게 아이의 문제 행동들이 단기간에 개선되기 어렵다고 말하고 이민을 앞둔 상황에서 치료의 한계점부터 설명하지 않을까 싶다.

품행장애는 타인의 기본 권리를 침해하거나 나이에 적절한 사회적 규범과 규칙을 어기는 행동을 반복적, 지속적으로 보이는 경우에 진단한다〈별도 진단기준 표 참조〉. 사례 속 아이처럼 거짓말과 절도, 무단결석과 가출, 동물에게 잔인한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해당된다.

품행장애 진단기준(DSM-5에 의거)
A 타인의 기본 권리를 침해하거나 나이에 적절한 사회 규범, 규칙을 어기는 행동을 반복적, 지속적으로 보인다.
(지난 12개월 동안 다음 15개의 기준 중 최소 세 가지 이상, 지난 6개월 동안 최소 한 가지 이상의 기준을 충족해야 함)

● 사람과 동물에 대한 공격성
① 자주 타인을 괴롭히고 협박하거나 겁준다.
② 자주 신체적 싸움을 시작한다.
③ 타인에게 심각한 신체적 상해를 입히기 위해서 무기를 사용한다.
④ 사람에게 신체적으로 잔인한 행동을 한다.
⑤ 동물에게 신체적으로 잔인한 행동을 한다.
⑥ 피해자를 직면한 상태에서 물건을 훔친다.
⑦ 타인에게 성적인 행동을 강요한다.

● 재산의 파괴
① 심각한 손해를 끼칠 의도를 갖고 고의로 방화에 관여한다.
② 타인의 재산을 고의로 파괴한다.

● 속이기 또는 훔치기
① 타인의 집, 건물 그리고 차에 무단 침입한다.
② 재화나 호의를 얻기 위해서 또는 의무를 피하기 위해서 자주 거짓말을 한다
③ 피해자를 대면하지 않고 중요한 가치를 가진 물건을 훔친다.

● 심각한 규칙의 위반
① 13세 이전부터 부모의 금지에도 불구하고 자주 외박을 한다.
② 보호자와 같이 살고 있는 동안에 적어도 2회 이상 가출을 하거나 1회 이상 장기간 가출을 한다.
③ 13세 이전부터 자주 무단결석을 한다.

B 이러한 품행장애는 사회적, 학업적, 직업적 기능에 임상적으로 중대한 장애를 초래한다.

C 18세 이상인 경우에는 진단 기준이 반사회적 성격장애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

최근 개정된 DSM-5 진단 기준에는 냉담-정서결여적(callous-unemotional: CU) 성향을 지닌 하위 유형에 대해 명시했다. 즉, 타인의 감정에 무신경하고 냉담하며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후회나 죄책감을 거의 느끼지 않는 경우가 이에 속한다 (단, 처벌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표현하는 후회감정은 제외). CU 성향을 지닌 품행장애 유형의 청소년들은 성인기에 반사회적 인격장애나 사이코패스로 진행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신경과 의사이자 뇌과학자인 제임스 팰런 교수는 자신이 사이코패스의 뇌를 갖고 있다고 말해 유명해진 의사다. TED 강연과 그의 저서 『사이코패스 뇌과학자』는 상당히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이코패스 유전자가 존재하고 환경과 상호작용을 해서 발현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한다는 팰런 교수의 주장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는다. 다만, CU 성향을 보이는 사람들의 뇌의 특성이 정상인과 다르다는 연구결과들은 설득력이 있다.

학대당한 아이, 우울성 행동장애 많아

2020년 미국에서 청소년 1만2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대규모 뇌영상 역학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9~11세에 촬영한 뇌영상에서 편도(amygdala)와 해마(hippocampus) 영역에 회백질의 양이 적은 아이들이 향후 반사회적 인격장애로 진행될 수 있는 CU 성향 가능성이 크다는 내용이다. 이 연구의 취지는 이런 특성을 조기에 발견하고 진단해서 적극적인 환경 교정과 치료를 진행한다면 반사회적 인격장애나 사이코패스로의 진행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에 방점이 있다.

품행장애를 고치기 위해서는 정신치료와 행동치료가 꽤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게다가 가족, 학교와 같은 아이 주변의 지지체계에 대한 개입이 일찍 이루어질수록 성공적 치료 가능성이 커진다. 초등학교 1학년 행동특성 평가에서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의심군으로 분류되어 치료를 권고받았으나 치료 없이 지내다 중학생이 되어 가출과 도벽 등의 문제로 내원한 사례가 있다. ADHD를 적기에 충분히 치료받지 못하고 가정 내 폭력과 불화 요인이 있을 경우 품행장애로 발전하기도 한다.

문제행동을 보이는 자녀를 둔 부모는 아이의 행동을 지적하고 비난하는 방식을 취하기 쉽다. 지나치게 통제하려는 방식으로 대하거나 아이의 요구를 무조건 허용하는 식의 방임형 부모도 있다. 남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과 폭력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즉각적이고 단호하게 대처하되 아이의 사소한 잘못들은 추궁하지 않아야 한다.

평소에 아이들의 작은 자율성까지 간섭하고 통제하다가 자녀가 폭발하거나 과격한 행동을 보이면 놀라서 갑자기 허용적 태도로 대응하는 부모도 있다. 반대가 되어야 한다. 부모가 가정 내에서 일관된 규칙을 정해 놓고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원칙을 적용할 때 아이들은 오히려 안도감을 느낀다.

폭력성이 심한 경우에는 정신치료와 행동치료 이외에 약물치료가 반드시 필요하다. 초등학생 시절 감정조절에 미숙하고, 과격하고, 충동성을 보이는 경우 조기에 약물치료를 병행한다면 심각한 품행장애로 진행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기저에 우울증이 깔려 있으나 겉모습은 가출이나 무단결석, 도벽의 문제행동을 보이는 청소년들도 있다. 이런 경우는 가면 우울증(masked depression), 우울성 행동장애(depressive conduct disorder)라고 부른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품행장애에 비해 우울성 행동장애 청소년들이 상대적으로 덜 폭력적이며 아동학대당한 과거력을 흔히 지닌다. 이 경우 우울증 치료를 하면 문제행동이 함께 호전되고 품행장애에 비해 경과도 양호하다.

품행장애는 어떤 질환보다 예방이 매우 중요하다. 자녀가 영유아기에 기질적으로 감정조절이 미숙하고 충동적이며 공격 성향을 보이는 경우, 부모가 각별히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전문가를 찾아 적절한 대처법을 배우고 양육 훈련을 받기를 권한다. 아이들에게 환경이란 병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강력한 치료적 요소이기도 하다.

※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등장인물을 가명으로 처리했고, 전체 흐름을 왜곡하지 않는 범위에서 일부 내용을 각색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천근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
연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 영국 국제인명센터(IBC)가 ‘세계 100대 의학자’로 선정. 저서로는 『아이는 언제나 옳다』, 『엄마 나는 똑똑해지고 있어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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