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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견딘 캥거루, 이번엔 수장 위기…호주 위협하는 기후재앙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호주에서 홍수로 인해 수로에 고립됐던 캥거루가 구조대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됐다. WIRES

호주에서 홍수로 인해 수로에 고립됐던 캥거루가 구조대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됐다. WIRES

지난해 역사상 최악의 산불로 몸살을 앓았던 호주가 최근 기록적인 폭우로 인해 또다시 심각한 피해를 겪고 있다. 특히 홍수 피해 지역은 캥거루, 웜뱃 등의 주요 서식지여서 야생 동물의 피해도 심각하다.

24일 외신 보도에 따르면, 시드니를 포함한 호주 동남부 뉴사우스웨일스주에 100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면서 최악의 홍수 피해를 겪고 있다. 뉴사우스웨일스 북부에는 6일 동안 3월 평균 강우량의 세 배가 넘는 900㎜의 비가 퍼부었다. 폭우로 인해 4만 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정부 당국은 비가 집중된 지역을 중심으로 홍수 경보와 대피 명령을 내렸다.

호주 시드니 지역이 홍수로 물에 잠긴 모습. AFP=연합뉴스

호주 시드니 지역이 홍수로 물에 잠긴 모습. AFP=연합뉴스

글래디스 베레지클리안 뉴사우스웨일즈 주 총리는 “강물이 계속 불어나면서 50년 동안 그리고 몇몇 지역에서는 100년 동안 볼 수 없었던 수준의 홍수가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산불 이어 홍수까지…야생동물 수난

호주에서 구조대원이 홍수로 고립된 캥거루를 구조하고 있다. WIRES

호주에서 구조대원이 홍수로 고립된 캥거루를 구조하고 있다. WIRES

캥거루 등 야생동물들도 폭우에 휩쓸리는 등 재난을 피해가지 못했다. 호주 동물구조단체인 와이어스는 “빠르게 흐르는 수로에 떨어진 캥거루 한 마리를 극적으로 구조했다”며 “운이 좋게도 재난에서 무사히 살아남았다”고 전했다.

호주 시드니 북서쪽 지역에서 사람들이 홍수를 피해 에뮤를 구조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호주 시드니 북서쪽 지역에서 사람들이 홍수를 피해 에뮤를 구조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는 코알라, 캥거루, 웜뱃 등 많은 야생동물의 서식처로 꼽힌다. 하지만, 지난해 최악의 산불이 덮치면서 대한민국보다 넓은 10만7000㎢의 면적이 잿더미로 변했다. 이로 인해 30억 마리가 넘는 야생동물들이 죽거나 서식지에서 쫓겨났다.

또다시 1년 만에 대홍수가 발생하면서 산불이라는 비극에서 아직 치유되지 못한 동물들은 생존에 더 어려움을 겪게 됐다.

“땅속에 사는 웜뱃, 홍수에 갇힐 위험”

지난해 호주를 덮친 최악의 산불에서 구조된 웜뱃. Wombat care bundanoon

지난해 호주를 덮친 최악의 산불에서 구조된 웜뱃. Wombat care bundanoon

야생동물 단체에서는 특히 웜뱃과 바늘두더지 등 땅속에 사는 동물들은 홍수로 인해 서식지에 갇힐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웜뱃은 땅속에 깊은 굴을 짓고 사는 습성이 있어 땅굴 개발업자라는 별명을 가진 동물이다. 지난해 산불 당시 작은 동물들이 웜뱃의 굴을 피난처 삼아 목숨을 구했다는 이유로 현지에서 영웅 대접을 받기도 했다.

동물구호단체인 HSI(the Humane Society International)의 에반 쿼터메인 호주 재난 대응 책임자는 영국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웜뱃이나 바늘두더지처럼 굴을 파는 동물들은 금방 홍수에 갇힐 수 있기 때문에 분명히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라며 “오리너구리와 거북이 같은 수중 동물들 역시 쉽게 그들의 서식지로부터 멀리 휩쓸릴 수 있다”고 말했다.

“지구온난화로 폭우 더 심해져”

유럽우주국(ESA) 코페르니쿠스 센티널 위성에 포착된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타리 지역의 모습. 폭우가 내리기 전인 12일(왼쪽)과 달리 폭우로 강이 범람한 19일(오른쪽)에는 일대가 물에 잠겼다. 유럽우주국

유럽우주국(ESA) 코페르니쿠스 센티널 위성에 포착된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타리 지역의 모습. 폭우가 내리기 전인 12일(왼쪽)과 달리 폭우로 강이 범람한 19일(오른쪽)에는 일대가 물에 잠겼다. 유럽우주국

과학자들은 호주에서 최악의 산불과 홍수 등 극한 기상 현상이 점차 '뉴노멀(새로운 정상)’이 되고 있다며 기후변화의 영향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학 아크기후과학전문센터의앤디 피트먼 소장은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지구온난화와 강우량의 강도가 강해지는 건 밀접한 연관이 있다”며 “지구온난화 때문에 폭우가 더 극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천권필 기자, 장민순 리서처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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