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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표현의 자유·젠더·인종…세계가 한국 인권 난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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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인권은 국가·사회의 민주주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다. 한국은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인권 의식과 개념도 함께 확대됐다. 그러나 최근 한국의 인권 문제를 지적하는 국내외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북전단법 30일 발효 “민주 훼손” #미국, 윤미향·박원순 언급 “반인권” #외국인 코로나 전수조사 “혐오 조장” #“한국, 정치적 이익 따라 인권 침해”

오는 30일 발효되는 ‘대북전단금지법(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글로벌 인권 네트워크인 전환기 정의워킹그룹(TJWG)의 신희석 법률분석관은 “정보 유입이 차단된 북한에 전단을 보내는 것은 보호할 가치가 큰 행위”라며 “표현의 자유를 막는 조치는 독재와 민주국가의 중요한 벽을 허물어뜨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12월 이 법안 처리 직후 미국 하원에서도 비판의 소리가 높았다.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의 크리스 스미스 공동위원장(20선)은 “한국의 헌법과 국제규약을 위반하는 조치”라며 “공산주의 북한을 묵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정부는 23일 유엔 인권이사회가 채택하는 북한인권결의안에도 동참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2009년부터 매년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했지만 현 정부 출범 뒤인 2019년 이후 불참해왔다.

미 국무부가 발간 예정인 ‘2020 국가별 인권보고서’에서 한국 공직자 부패와 성추행 사례와 함께 표현의 자유 제약을 구체적으로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의 소리 방송(VOA)’의 20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인권보고서는 북한 인권 문제를 주로 지적했던 과거와 달리 이번엔 한국 여권 인사들의 성추행과 부정부패 사례를 상세히 언급했다. 국무부는 대외원조법에 따라 매년 모든 유엔 회원국의 전년도 인권 상황을 의회에 보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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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는 ‘차별, 사회적 학대, 인신매매’ 항목의 ‘성추행’ 부문에서 지난해 한국에서 성추행이 중요한 사회문제가 됐으며 고위 공직자를 포함해 수많은 관련 혐의가 보도됐다고 지적했다. 구체적 사례로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을 거론했다. ‘부패와 정부 투명성 부재’ 항목의 ‘부패’ 부문에선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김홍걸 국회의원의 부패 혐의를 지적했다. 조 전 장관의 부패 혐의는 2년 연속 담겼다. 국무부는 지난해 불거진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위안부 기금 유용’ 혐의도 담았다.

유엔 오늘 북한인권결의안 채택…한국, 3년 연속 불참할 가능성

보고서는 표현의 자유 제약도 중요한 인권 문제로 언급했다. 대북 전단 금지법과 관련해 인권활동가와 야당은 표현의 자유 침해라고 비판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무부는 한국 언론인이 조국 전 장관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것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국내에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과 관련한 인권침해 문제가 지적된다. 서울시는 지난 17일 행정명령으로 ‘외국인 노동자’의 코로나19 전수검사를 의무화했다가 비난이 쏟아지자 권고 사항으로 입장을 바꿨다. 앞서 지난 8일부터 비슷한 조치를 시행해 온 경기도는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 음성 판정을 받아야만 취업할 수 있는 방안까지 검토하다 철회했다.

강원대 임유진(정치외교학) 교수는 “단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잠재적 위험 요인이라 인식하는 것은 기존의 편견이 방역에도 그대로 적용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서울대 인권센터도 지난 19일 “외국인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혐오를 조장할 수 있는 차별행위”라고 비판했다. 사이먼 스미스 주한 영국대사는 “불공정하고 효과적이지도 않을 것”이라며 한국 정부에 항의했다. 경희대 박희제(사회학) 교수는 “위험요인은 감염에 취약한 노동 여건과 주거환경이지 국적이 아니다”며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명백한 인권침해”라고 지적했다.

경희대 정고운(사회학) 교수는 “국가의 통제가 장기화하면서 인권의식이 무뎌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 교수는 “다수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 아래 개인 의견은 묵살되기 쉽다”며 “한국에선 서구 사회보다 그런 경향이 더욱 심화해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집권세력이 ‘선택적 인권’을 내세운다는 지적도 있다. 박원순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나 서해 피살 공무원이 대표적이다. 두 사건 모두 국제사회에서도 우려가 제기될 만큼 심각한 사안이지만, 문재인 정부는 적극적 해결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성추행 사건 피해자에게 ‘피해 호소인’이라며 2차 가해를 하고, 피살 공무원에게 ‘월북’ 프레임을 씌운 것은 선택적 인권의 사례로 지목된다.

TJWG의 신희석 분석관은 “서해 피살 공무원이나 2019년 강제 북송 사건처럼 국제사회가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며 “특히 북한과 관련된 인권 이슈에 침묵하는 것은 한국도 공범이 돼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권의 기본인 표현의 자유나 젠더·국적 등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전환 없이는 한국이 정치적 이익이나 사회적 상황, 방역 등을 내세워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채인택 국제외교안보 에디터
윤석만 사회 에디터,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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