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중앙일보

입력

망하고 흥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글을 시작하기 전에 이런 질문을 먼저 해보자. "당신의 병원이 다른 병원과 비교해서 가장 강점인 것과 약점인 것은 무엇인가." 우수한 의료진, 친절한 서비스, 첨단 장비, 관리 능력, 홍보력…

답이 얼른 떠오르지 않고 고개를 갸우뚱거린다면 귀하의 병원은 경쟁력이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의사는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병원이 병이 들었는데도 치료는커녕 진단조차 할 줄 모른다면 이런 의사는 병원을 경영하기 보다 교육이나 연구, 아니면 월급쟁이 의사가 제격이다.

돈을 벌고 싶어하는 의사는 많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병원에서 이윤을 얻기란 갈수록 쉽지 않다. 가까스로 자신의 월급을 가져가거나 투자비도 건지지 못하고 문을 닫는 병·의원이 속출하고 있다. 병원이 망하고 흥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성공한 병원을 분석해보면 그 이유는 명확히 드러난다. 일본의 MK택시 서비스를 도입한 안동병원, 삼성의 제일주의를 표방한 삼성의료원, 전문화로 IMF를 거뜬히 이겨낸 해정병원 등 사례는 무수히 많다.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도 과장과 스탭들의 자기관리, 그리고 과 운영방법에 따라 수입에 엄청난 차이가 드러난다. 환자가 몇 달씩 밀리는 의사가 있는가 하면 근근히 자기 월급만 가져가는 사람도 흔하다. 앞으로 연재될 `병원도 마케팅 시대'는 의사라는 직업을 봉사로 생각하는 의사에게는 맞지 않는다. 또 월급 닥터나, 연구직에 만족하는 의사와도 무관하다. 돈을 벌고 싶은 의사, 병원을 기업처럼 생각해서 크게 일궈보고 싶은 의사를 위한 글로 생각해주면 좋겠다.

돈은 벌려고 하면 벌린다
돈을 버는 데 왕도는 없다. 경영을 전공한 석학이라고 돈을 버는 데 유리한 것은 없다. 병원으로 재벌이 된 분들의 경력을 보면 경영과 관련된 학문적 배경이 있는 것도 아니다. 뭔가 이들에게는 돈을 버는 `솜씨'가 있다.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독특한 경영 능력이 있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것이 됐든 돈을 벌기 위해서는 이들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배워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의사들은 돈을 버는 의사들을 비난하는 투다. 의사가 돈을 버는 것을 비윤리적이고 부도덕한 행위로 매도하기도 한다.

그런 비난 가운데는 자신도 돈을 벌고 싶어하는 잠재의식이 담겨있다. 인건비와 리스료, 임대료 등 경영 현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의료는 그다지 부가가치가 높은 업종은 아니다. 앞으로도 이런 현상은 점점 심화될 것은 분명하다. 또 대부분의 수익은 의사의 경쟁을 부추기는 사람들의 손에 들어갈 것이다. 예컨대 첨단장비를 개발하는 의료기기 업자나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 임대료를 올리는 부동산업자 등.

따라서 의사도 철저하게 사회적 변화를 읽고 병원 경영과 관련된 다른 분야를 배우고 이용해야 한다. 같은 자격증으로 어떤 의사는 나날이 병원을 키워 가는데 어떤 사람은 늙어죽을 때까지 구멍가게를 면치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왜일까. 답은 간단하다. 돈을 벌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돈은 벌겠다고 생각하면 벌린다. 자신에게 돈을 벌어주게 하는 것은 환자다. 돈을 벌고싶은 사람이 환자에게 권위적이거나 불친절할 수는 없다. 환자가 병원을 찾도록 연구를 하고, 한번 온 환자가 다시 오지 않으면 그 이유를 분석해 볼 것이다.

의사는 다른 어떤 직종 보다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다. 국가에서 인정한 의사자격증 그 자체가 안정된 직업을 보장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돈을 벌지 못하면 그것은 사회나 주변환경에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로지 개인의 문제인 것이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의료는 상품이다. 환자는 고객이다. 의사는 세일즈맨이며 병원장은 대표이사다.' 병원이 기업 경영마인드를 도입하면 환자에게 적극적이 될 수밖에 없다.

사례를 들어보자.

퇴행성관절염이 심한 환자가 치료를 받기 위해 왔다. 환자는 나이가 많고 그리 돈이 많아 보이지도 않으며, 질병에 대해 이해도 낮다. 정형외과의사는 환자에게 퇴행성관절염에 대해 설명을 하고 최선의 치료법은 인공관절 수술뿐이라고 설명한다. 환자는 수술의 고통, 그리고 후유증, 치료비 등에 대해 물어보고 수술을 거부한다. "뭐 얼마나 더 살겠다고 비싼 수술을 받아야 하느냐"는 것이다. 이때 '능력 있는' 의사는 환자가 수술을 기피하는 이유를 재빨리 간파한다. 그리고 수술을 받은 뒤 삶이 질이 얼마나 향상될 수 있는지를 강조한다.

친구·가족과 야유회 한번 가지 못하고 집에만 틀어박혀 살아야 하는 비참한 노후에 대해 은근히 겁을 주면서, 또 인공관절은 튼튼하고 관리만 잘하면 죽을 때까지 사용하기 때문에 인체관절보다 좋다고 설명한다. 물론 보호자에게는 효심을 자극시킨다.

마케팅은 돈을 벌어준다. 그렇다고 마케팅이 어려운 것은 아니다.

종래 의사와 병원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 병원 마케팅에 접근하는 제1보다. 발상의 전환, 사고의 틀을 깨자는 것이다.

이미 병원과 의료, 의사에 대한 개념은 바뀌고 있다.

왜 의사는 흰 가운을 입어야 하나, 병원은 왜 흰 색을 고집해야하고 의사는 왜 근엄해야 하나. 의사는 코미디처럼 환자를 웃기면 안되나. 왜 원무과는 꼭 원무과라고 써야 하나, '돈 내는 곳'이라든가, '의료비 지불창구'라고 하면 안되나. 왜 병원은 분위기가 침울하고 어두워야 하나, 카페처럼 부드럽고, 서커스 장소처럼 활기 있고, 웃음이 넘칠 수 있는 곳이면 안되는가.

이미 기존 병원의 틀을 깨고 있는 병원들도 많다. 가운을 부드러운 하늘색 제복으로, 병원에 웃음 가득한 도우미가 등장하고, 병원로비에 카페가 실제 들어서고 있다.

마케팅은 경영전략의 핵심

마케팅 하면 단순히 병원을 알리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제는 단순한 언론 홍보의 개념을 떠나고 있다.

마케팅은 고객만족을 통한 기업의 궁극적인 목표(이윤추구)를 달성하기 위한 기업의 총체적 활동이다. 병원 마케팅도 같은 개념이다. 단지 병원은 진료행위를 통해 이윤을 추구한다. 따라서 기업인의 윤리보다는 좀더 강도 높은 윤리의식이 강요된다. 이러한 윤리의식은 병원이 마케팅을 하는데 제약요건이지만 한편으론 강점이 될 수도 있다.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이 국민들에게 신뢰성을 주기 때문이다.

과거에 경영은 마케팅보다 상위 개념이었다. 마케팅은 경영활동 중 제품을 팔기 위한 단순한 기능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경영과 마케팅이 동일한 차원에서 인식된다. 오히려 급변하는 시장환경과 소비자의 변화 속에서 경쟁기업과 차별화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마케팅이 기업전략의 핵심요소가 되고 있다.

병원의 존립이 환자의 선택에 좌우되고 있는데 아직도 환자에게 접근하는 병원 마케팅에 대해 모른다면 당신의 병원은 생명이 없는 식물병원이나 다름없다.

다른 병원과 뭔가 차별화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차별화한 핵심능력의 개발, 그것을 마케팅으로 풀어보려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