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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봄꽃, 매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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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장혜수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장혜수 스포츠팀장

장혜수 스포츠팀장

예년처럼 올해도 남도의 섬진강 변 매화마을(전남 광양시 다압면)에 상춘객이 몰렸다. 매년 이맘때 열렸던 매화 축제는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취소됐다. 그걸 알 리 없는 매화는 한껏 꽃망울을 터뜨렸다. 그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꽃에 홀려 몰렸다.

가수 조용필은 1984년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돌아와요 부산항에’)이라고 노래했다. 그래도 시인들이 꼽는 봄의 전령사는 단연 매화다. 당대 시인 백거이(772~846)는 시 ‘춘풍(春風)’에서 “봄바람에 정원의 매화가 가장 먼저 피고(春風先發苑中梅)/앵두꽃 살구꽃 복사꽃 자두꽃이 그다음에 핀다(櫻杏桃李次第開)”고 읊었다. 시인 안도현은 시 ‘순서’에서 “맨 처음 마당가에/매화가/혼자서 꽃을 피우더니//마을회관 앞에서/산수유나무가/노란 기침을 해댄다”고 썼다.

꽃이 시인의 시심만 건드린 건 아니다. 생물학자의 호기심도 자극했다. 진화론의 대부 찰스 다윈(1809~82)에게 꽃식물(종자식물)의 출현은, 그의 표현을 빌리면 ‘끔찍한 미스터리(abominable mystery)’였다. 그는 저서 『종의 기원』에 “자연선택은 극히 미미한 유전적 변화가 보존되고 축적되었을 때만 일어날 수 있다”고 썼다.

문제는 꽃식물이 ‘미미한 변화의 축적’에 따른 결과물로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중생대 백악기 초기 지층에서 발견되지 않던 꽃식물 화석이 백악기 중기에 갑자기 출현했다. 이 수수께끼가 풀릴 날도 머지않은 듯하다. 최근 고생물학 연구는 꽃가루 화석을 통해 꽃식물 출현 시점을 백악기 중기 이전으로 끌어올렸다.

꽃식물 출현 시점이 언제였든, 식물에 있어서 꽃의 존재 이유는 따로 있다. 꽃은 식물의 생식기관이다. 수정이 끝나면 꽃은 열매와 씨를 맺는다. 이를 통해 유전 정보가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꽃의 화려한 색깔과 고운 향기, 달콤한 꿀은, 식물이 저 스스로 움직일 수 없기에 수정을 매개할 누군가를 유인하기 위한 거다. 흐드러지게 피어난 꽃의 유인에 넘어가 매화마을에 몰린 건 상춘객만이 아니다. 부지런한 꿀벌도 이맘때면 그곳에 몰린다. 꿀벌 덕분에 수정에 성공한 매화는 서서히 매실로 영글어갈 거다. 비처럼 또는 눈처럼 지는 꽃잎과 함께, 서서히 깊어가는 봄날처럼.

장혜수 스포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