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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병상의 코멘터리

얼차려..그때도,지금도 옳지않다

중앙일보

입력

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18년 현역감독 시절 현주엽.

2018년 현역감독 시절 현주엽.

학폭 논란 현주엽 입장문발표..'얼차려 주었지만,개인적 폭력 없었다' #스포츠계 전체가 공범..현주엽이 '폭력 감수성' 홍보활동하면 대박

1.
학폭이 끝이 없습니다.
농구스타 현주엽까지 휘말렸습니다. 현주엽이 15일 입장문을 냈습니다.

‘당시 운동선수들에게는 기강이 엄격했습니다. 주장을 맡았었기 때문에 후배들에게 얼차례를 줬던 일이 있었습니다. 후배들에게 매우 미안하고 죄송한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폭력은 절대로 없었습니다.’

2.
물론 폭로당사자는 현주엽의 입장문에 대해 ‘거짓말’이라고 반발합니다.
다른 대학후배 농구선수는 ‘현주엽은 후배들에게 손찌검한 적 없다’며 옹호하고 나섰습니다.

현주엽은‘폭로내용이 악의적’이라며 수사의뢰하겠답니다.
30년전 사건인지라 진위조차 제대로 확인될지 의문입니다.

3.
그런데 주목할 대목은 현주엽이 인정한‘얼차려’입니다.

현주엽이 말하고싶은 건..
‘얼차려는 당시 스포츠팀 기강확립 차원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졌으며, 주장으로서 책임감에서 얼차려를 주었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도 잘못된 일임을 인정한다.’

4.
얼차려는 원래 군대에서 나온 용어입니다.

‘군의 기강을 잡기위해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육체적인 고통을 주는 일.’
중무장한 상태에서 구보하거나, 땅을 파고 묻는 등과 같은 일입니다.
군대처럼 기강이 필요한 단체스포츠에서 얼차려 문화가 만연해 왔습니다.

5.
성적이 좋지않으면 감독이나 코치가 주장에게 말합니다.
‘후배들 똑바로 챙겨.’

주장은 알아서 전체집합, 얼차려를 줍니다.
그런데 대개 ‘폭력적인 방법’까지 동원하게 됩니다. 원산폭격이 대표적입니다.
현주엽의 말처럼 당시엔 ‘관행’이었습니다.

6.
사실은 모두 공범입니다.

감독은 물론 선수 학부모까지 모두 ‘좋은 성적을 내기위해(명문대학에 진학하기위해) 얼차려는 필요하다’는 인식이 팽배했습니다.
엘리트스포츠 문화속에서 자란 선수들도 비슷합니다. ‘맞으면 성적이 올라간다’고 생각합니다.
단기적으론 효과가 있을 수 있습니다.

7.
그러나 폭력은 인간의 존엄을 파괴합니다. 폭력은 폭력을 대물림합니다.
15일 눈길을 끈 다른 뉴스..

지난달 조카를 물고문해 죽인 범인(이모)이 2019년 아내를 10시간 동안 폭행하고 시신을 유기한 살인범의 딸이라는 사실입니다.
당시‘살인범 아버지의 폭행에 대한 두려움’을 호소했던 피해자가 아동학대 살인을 저지른 셈입니다.

8.
그럼 당시의 관행이 지금은 사라졌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과거보다 덜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아직도 얼차려를 ‘교육’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특히 스포츠 지도자들이 많습니다.

9.
현주엽이 ‘폭력에 대한 사회적 감수성’을 환기시키는 활동을 해주면 효과적일 겁니다.
스포츠스타 출신으로 요즘 제일 핫한 셀럽이니까.
‘국민적 사랑에 대한 보답’과 ‘과거에 대한 반성’이란 진정성까지 담으면 금상첨화가 되겠네요..
〈칼럼니스트〉
2021.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