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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원도 아닌 "98만원만 보내줘"…그놈들 이유 있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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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번호 가입자의 '카카오톡 메시지' 예시. 경기북부경찰청

해외 번호 가입자의 '카카오톡 메시지' 예시. 경기북부경찰청

“급히 송금할 곳이 있는 데 대신 송금해주면 갚아줄께.”
지난 2월 경기 의정부에 사는 40대 여성은 동생으로부터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다. 동생이 보낸 것으로 믿고 불러준 계좌로 98만원을 송금했다. 뒤늦게 알고 보니 동생을 사칭한 메신저 피싱 사기범이 보낸 메시지. ‘메신저 피싱’이었다. 타인의 메신저를 도용해 접속한 뒤 해당 메신저에 등록된 지인에게 금전을 요구하는 내용의 메신저를 발송해 돈을 받아 가로채는 수법이다.

금융기관에서는 지난 2015년 9월부터 100만원 이상을 통장으로 송금하면 ATM 자동화기기에서 30분간 해당 송금액을 찾을 수 없는 ‘지연 인출제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사기범들은 이를 비웃듯 100만원 미만의 돈을 요구하는 수법을 썼다.

가족·지인 사칭 메신저 사기 기승

지난 1월 경기 고양시 일산에 사는 50대 남성 C씨는 군 복무 중인 아들로부터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다. 아들은 “액정이 깨져 스마트폰을 서비스센터에 맡겼다”며 문화상품권(컬처랜드 티켓) 10만 원권 8장을 대신 구매해달라고 했다.

“바쁘다”고 하자 신분증 사진을 받아내 결제사이트 회원 가입을 대신하도록 한 뒤 결제까지 유도해 상품권 고유번호인 ‘핀 번호’를 받아냈다. C씨는 아들의 평소 말투와도 비슷하고 실제 아들의 프로필 사진을 보내와 큰 의심 없이 돈을 송금했다. 경찰 수사 결과 메시지를 보내고 돈을 뜯어낸 사람은 아들을 사칭한 메신저 피싱 사기범이었다.

문화상품권 앞쪽에 적힌 고유번호인 핀 번호는 다양한 온라인 사이트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어 문화상품권을 요구하는 메신저 피싱 사기 피해가 지속해 증가하고 있다.

지난 2월 경기 양주시에 사는 10대 여학생 D양은 학교 친구로부터 페이스북 메신저로 안부 인사와 함께 “송금할 곳이  있는데 공인인증서가 안되니 급히 돈을 빌려달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받았다. 이를 친구가 보낸 것으로 믿은 D양은 불러준 계좌로 돈을 송금했다. 이 또한 친구를 사칭한 메신저 피싱 사기였다.

경기북부경찰청 청사. 경기북부경찰청

경기북부경찰청 청사. 경기북부경찰청

메신저 피싱, 1년 새 5배 늘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사회 전반에 모바일 등을 통한 온라인 쇼핑이 활성화하는 가운데 메신저 피싱 등과 같은 사이버 사기는 증가하고 있다. 경기북부경찰청은 15일 “사이버 사기 사건은 경기 북부 지역에서만 지난해 8305건 발생, 전년의 7785건보다 6.7% 늘었다. 이 가운데 메신저 피싱은 2019년 99건에서 지난해 486건으로 490%나 급증했다”고 밝혔다.

경기북부경찰청은 이에 따라 사이버경제범죄 수사팀을 신설하고, 지난달 1일부터‘사이버 사기 특별 단속’을 벌여 현재까지 총 101명을 검거해 9명을 구속했다. 이들 사건의 피해 금액 인출책 역할을 한 30대 남성과 20대 남성 등은 검거돼 검찰로 넘겨졌으나, 피싱 사기 주범들은 경찰이 아직 추적 중이다. 경찰은 메신저 피싱, 몸캠 피싱, 로맨스스캠, 다중·다액 사이버 사기 등 주요 사이버 범죄에 대해 집중 수사를 지속하기로 했다.

보이스피싱 그래픽. 중앙포토

보이스피싱 그래픽. 중앙포토

“사이트 내 비밀번호 수시 변경해야”

경찰 관계자는 “메신저 피싱 피해 막으려면 주소록이 저장된 사이트가 해킹돼 개인정보가 유출되지 않도록 사이트 내 비밀번호를 수시로 변경하고, 국내 및 타 지역 해외 로그인 차단 설정 및 2단계 보안 인증 설정 등 다각적으로 보안을 강화해 둬야 한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이어 “가까운 지인이나 가족·친척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공인인증서, 통장 분실 등을 이유로 금전을 요구한다면 반드시 전화로 사실 여부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이와 함께 카카오톡의 경우 등록되지 않은 대화 상대가 해외 번호 가입자로 인식되면 주황색 바탕의 지구본 그림이 프로필 이미지에 표시되고 ‘친구로 등록되지 않은 사용자입니다’라는 경고 문구가 나타난다며 이 경우 금전 거래에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전익진 기자 ijj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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