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과 투쟁한 화가 프리다…'프리다 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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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7월 13일 새벽 멕시코 코요아칸에서 한 여자가 죽었다. 지상에서 마흔 일곱 해를 보낸 그는 저승 사자를 그린 일기장에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이라고 써놓았다.

여섯 살에 소아마비에 걸리고, 열일곱 살에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한 그는 평생을 고통과 병마와 싸웠지만 죽음은 또한 그에게 친구이자 가족이었다. 해골을 즐겨 그린 프리다 칼로(1907~54)는 죽음으로 인해 잉태되는 생명을 자신의 몸으로 껴안고 뒹굴다 간 화가였다.

피 흘리고 흐느끼고 찢기는 자신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리면서 그는 현대사 속에 여성주의를 새기는 전설이 되었다.

미국 미술사학자인 헤이든 헤레라가 쓴 '프리다 칼로'는 "20세기의 가장 독창적이고 획기적인 이미지 가운데 하나"를 창조한 프리다의 삶과 작품세계를 상세하게 다룬 전기이다. 2002년 줄리 테이머 감독이 만든 영화 '프리다'의 원전이 됐고, 프랑스 소설가 르 클레지오가 쓴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의 기본자료로 객관성을 인정받았다.

지은이는 "고통 받는 여성, 학대 받는 아내, 아이 없는 여인"이면서 동시에 "정치 영웅이자 혁명 투사"였던 이 비범한 여성을 연민의 기색을 띠지 않고 진실의 거울로 비추어본다."프리다는 성인(聖人)이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모습을 엄격한 세속적 시각으로 평가하며, 하늘을 바라보며 위안을 찾는 대신 정면을 똑바로 응시한다."

프리다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디에고 리베라(1886~1957)다. 멕시코 벽화운동의 영웅이며 공산주의자였던 디에고는 마흔세살에 스물두살의 프리다와 결혼하며 '코끼리와 비둘기의 결합'이란 말을 들었지만, 그들의 사랑이야기는 독립과 혁명의 역사적 순간을 맞은 멕시코의 강렬한 햇빛 속에 불타올랐다.

멕시코 원주민의 영광과 혁명 이상을 벽화에 새기는 디에고 옆에서 프리다는 그의 어머니 구실을 하고 시위에 참여하며 폭풍처럼 격렬한 그림을 그렸다. 프리다의 그림에서 초현실주의를 본 프랑스의 초현실주의자 앙드레 브르통은 "이 젊은 여성의 등장을 지켜볼 수 있는 것은 우리 시대의 특권이다… 이보다 더 철저하게 여성적인 예술은 없다. 최대한의 유혹을 위해서라면 극단적인 순수함과 사악함 사이를 기꺼이 오간다. 프리다 칼로의 예술은 폭탄에 두른 리본"이라고 사모했다.

프리다는 날마다 죽어가는 자신의 육체를 그림과 사랑으로 해방시켰다. 혁명가였던 레온 트로츠키를 비롯해 당대를 이끌던 사상가.예술가들과 우정을 넘어선 애정을 나누며 생명의 충만을 노래했다. 한 발 한 발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며 남긴 마지막 그림에 프리다는 핏빛 물감에 적신 붓으로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인생 만세(VIVA LA VIDA)'.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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