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국민의당 서울시장 후보가 지난 10일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전화해 "빠른 시일 내에 만나자. 단일화 등을 놓고 속 터놓고 얘기하고 싶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11일 확인됐다. 김 위원장은 이번 서울시장 선거 야권 단일화 국면에서 안 후보에 대해 “제3지대 후보는 성공할 수 없다. 이번 보궐 선거는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 될 것”이라고 공언하는 상황이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실무협의단 "17~18일 여론조사, 단일화 발표는 19일"
이날 양당 인사들에 따르면 안 후보는 10일 김 위원장에게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있는데, 당 대표로서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다. 조만간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도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안 후보가 만나자고 하기에 원하는 날짜를 잡아보라고 했다”면서 “하지만 나는 결국 제1야당 후보인 오세훈 후보가 단일화에서 이길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은 그러면서 대뜸 윤석열 전 검찰총장 얘기를 꺼냈다. 김 위원장은 “11일 두 후보가 윤 전 총장에 대해서 서로 가깝다고들 이야기를 하는데, 지금 국면에서는 윤 전 총장을 상수로 놓고, 서로 자신감을 가지고 경쟁을 하면 되는 일”이라며 “아무래도 선거를 앞두고 있는 경쟁 상황이라 윤 전 총장에 대한 얘기를 각자 꺼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두 후보는 윤 전 총장을 놓고 미묘한 신경전을 벌였다. 안 후보 측에서는 “윤 전 총장과 자연스러운 만남이나 소통이 있을 수 있다”(이태규 의원)거나 “안 후보와 윤 전 총장이 함께 하는 부분은 기대하셔도 좋다”(권은희 의원)는 말이 나왔다. 안 후보 본인도 이날 국회에서 취재진에게 “정권교체를 위해 야권이 넘어야 할 게 서울시장 선거이니 (윤 전 총장의)역할을 기대한다”고 얘기했다.
안 후보 측에서 ‘윤석열 이슈’를 치고 나가자, 오 후보 쪽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오 후보는 이날 오전 취재진과 만나 “윤 전 총장과는 직접은 아니지만, 모종의 의사소통이 시작됐다”면서 “단일화 이후 얼마든지 만날 수도, 협조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그런 가운데 오 후보와 안 후보는 지난 10일 밤 비공개 회동을 가졌다. 회동을 앞두고 두 사람 사이에는 이런 대화가 오갔다고 한다.
오세훈 “오늘 밤 가볍게 한 잔 하며 얘기 하시죠.”
안철수 “일정 때문에 저녁 식사를 못했는데 술 대신 다른 것 어떻습니까.”
야권 단일화를 놓고 협상 중인 오 후보와 안 후보는 최근 ‘회동 정치’에 한창이다. 두 후보는 지난 10일 밤 서울 마포의 한 미팅룸에서 배석자 없이 50분 가량 차담을 나눴다. 지난 7일 밤 맥주회동 이후 두번째 만남으로 첫 만남은 안 후보가, 이날 만남은 오 후보가 제안해 성사됐다.
이날 회동에서 두 사람은 비교적 다양한 사안에서 의견 일치를 봤다. 우선 18~19일 후보등록일 이전에 단일화를 매듭짓기로 했다. 또 비전 발표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비전 발표회는 오 후보와 안 후보가 각자 공약과 비전을 발표한 뒤 언론인 등 전문가 패널의 질문을 받는 방식이다. 안 후보 측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르면 이번 주말 비전 발표회를 열 수 있다”고 전했다.
오 후보와 안 후보는 특히 정책 협의팀을 구성하고 서울시 공동 경영을 해나가기로 뜻을 모았다. 양 측은 정책 협의팀에 대해 “두 후보의 공약이 충돌하는 부분이 없는 지 조율하고, 단일화 시 탈락 후보의 공약을 계승하는 조직”이라고 설명했다.
향후 서울시 공동 경영을 놓고도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했다. 다만 양측 관계자들에 따르면 두 후보 회동에서 공동 경영이란 표현이 자칫 ‘나눠 먹기’로 오해될 수 있다며 “공동 경영 대신 연립시정이라는 틀에서 접근하는 게 어떠냐”는 말이 나왔고, 두 후보가 향후 연립 시정이란 표현을 사용키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 후보의 연이은 비공개 회동을 놓고 야권에선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적극적인 단일화 시그널을 주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톱다운 방식은 수뇌부가 먼저 회동해 큰 틀의 합의를 이끌어내고, 실무진 회동에서 디테일한 조정을 이루는 것을 뜻한다. 실제 두 후보는 실무협상단 첫 회의(9일)를 이틀 앞둔 7일, 두번째 실무단 회의(11일)을 하루 앞둔 10일 회동했다.
이날 오후 실무단은 두번째 회의를 마쳤다. 안 후보 측 이태규 의원은 회의 뒤 취재진과 만나 “17, 18일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19일 단일화를 발표하기로 합의를 봤다”고 밝혔다. 실무단은 12일 오전 3차 회의를 이어간다.
오 후보와 안 후보의 단일화 경쟁은 초접전 양상이다. KBS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11일 공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범야권이 오 후보로 단일화해야 한다는 응답은 38.4%, 안 후보로 단일화 해야한다는 응답은 38.3%로 조사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