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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만에 8집 낸 정원영 “음악 별거 아냐, 인생 천천히 가도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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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 8집 ‘볕’을 발매한 싱어송라이터 정원영. 그는 “볕을 쬐고 있으면 희망적인 느낌이 든다”며 “앨범에 어두운 곡이 많다 보니 제목만큼은 따뜻한 단어를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정규 8집 ‘볕’을 발매한 싱어송라이터 정원영. 그는 “볕을 쬐고 있으면 희망적인 느낌이 든다”며 “앨범에 어두운 곡이 많다 보니 제목만큼은 따뜻한 단어를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싱어송라이터 정원영(61)이 정규 8집 ‘볕’을 들고 돌아왔다. 2015년 7집 ‘사람’ 이후 6년 만이다. 평균 2~3년에 한 번씩 신보를 발매할 정도로 꾸준히 음악 활동을 해 왔던 그의 디스코그래피를 보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린 셈. 5일 서울 성수동에서 만난 그는 “8집은 처음부터 세 파트로 나눠서 발매할 계획이었는데 중간에 ‘딴짓’을 하다 보니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며 웃었다. 이번 앨범엔 2018년 3월 발매된 미니앨범 ‘테이블 세터’ 수록곡 3곡과 그해 7월 발매된 ‘우중간 밀어치기’의 4곡에 신곡 3곡을 더해 총 10곡이 담겼다.

2018년부터 3년간 작업물 10곡 발매 #학전 공연 계기로 정원영밴드도 뭉쳐 #“30년간 학생들 가르치게 될 줄 몰라, #운 좋게 재능있는 친구들 만나 감사”

‘테이블 세터’는 야구 경기에서 1ㆍ2번 타자를 가리키는 말로 판을 깔아주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우중간 밀어치기’ 역시 우익수와 중견수 사이 플레이를 뜻하는 야구 용어다. 한데 전체 앨범명은 어떻게 ‘볕’이 됐을까. “앨범별로 성격이 조금씩 다른 듯하지만 맥락은 같다고 생각해요. 최근 몇 년간 혼자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외롭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다들 그렇다 보니 개인적이지만 보편적인 얘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힘들면 지나치지 말고 티 내며 살길”

정원영은 “코로나로 온라인 수업이 많아져서 힘든 부분도 있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음악도 많이 듣고, 영화도 더 많이 보게 됐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정원영은 “코로나로 온라인 수업이 많아져서 힘든 부분도 있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음악도 많이 듣고, 영화도 더 많이 보게 됐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하여 그의 시선은 주변을 향한다. 타이틀곡 ‘양평에서’는 은퇴한 친구들을 보면서 만든 곡이다. “제 친구들 반 정도는 은퇴했어요. 은퇴하면 어떻게 사는지 잘 알죠. 양평에 있는 친구 집에서 가끔 모이는데 힘들면 그냥 지나가지 말고 얘기를 하자, 그렇게 티를 내면서 살자는 얘기를 많이 해요. 이제 서로 챙겨줘야 할 때잖아요.” 노랫말은 “그리울 땐 손 흔들어/ 우리가 너를 잘 볼 수 있게”라고 썼지만 실상은 “힘들 땐 말을 해 우리가 너를 잘 볼 수 있게”인 셈이다.

연주곡 ‘오래달리기’는 아이들을 위한 곡이다. 1991년 서울예대ㆍ동덕여대 등을 거쳐 2006년부터 호원대 실용음악학부 교수로 재직 중인 그가 신입생을 모아놓고 첫 시간에 던지는 화두와도 연결된다. “음악도 입시 위주 교육을 하다 보니까 막상 입학하고 나면 뭘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기술적으로는 점점 더 완성도가 높아지는데 정신적으로는 피폐한 경우도 많고. 그래서 음악 별거 아니다. 그동안 열심히 했으니 내려놓고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인생 기니까 천천히 가도 된다. 그런 얘길 많이 하죠.”

“학생들과 작업, 오래 걸려도 재밌어”

지난해 6월 정규 3집 ‘홈’을 발매한 정원영밴드.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정원영, 임헌일, 한가람, 박은찬, 최금비, 홍성지, 박혜리. [사진 정원영밴드]

지난해 6월 정규 3집 ‘홈’을 발매한 정원영밴드.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정원영, 임헌일, 한가람, 박은찬, 최금비, 홍성지, 박혜리. [사진 정원영밴드]

솔로 앨범은 다소 늦어졌지만 그동안 뜻밖의 수확도 있었다. 2019년 릴레이 공연 ‘어게인, 학전 콘서트’에 참여하면서 2005년 결성된 정원영밴드 원년 멤버들과 다시 한번 뭉치게 된 것. 홍성지ㆍ최금비(보컬), 박은찬(드럼), 한가람(베이스), 임헌일(기타), 박혜리(키보드) 등 당시 사제지간으로 만났지만 지금은 모두 교수 및 정상급 연주자가 되어 좀처럼 모이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다들 바빠서 힘들 줄 알았는데 흔쾌히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같이 공연하니 너무 좋아서 내친김에 앨범도 만들었어요.” 그렇게 탄생한 앨범이 지난해 6월 발매된 정원영밴드 3집 ‘홈’이다.

“유명한 연주자들과 작업하면 편하죠. 그런데 늘 듣던 사운드가 나와요. 학생들과 작업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힘들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물이 탄생해요. 아직 저마다 개성이 살아있으니 우리들만의 사운드가 나오는 거죠. 15년 전 그런 시간을 겪고 각자 영역에서 활동하다 다시 만나니 더욱 풍성해진 것 같아요. 다들 저보다 바쁘고 돈도 잘 벌어서 모이기 쉽지 않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더 작업해보고 싶어요. 더 나이 들기 전에.”

“K팝 성공 뒷받침할 저변 튼튼해져야”

2011년 중앙일보에 모인 KBS ‘톱밴드’ 우승팀 톡식의 김정우·김슬옹, Mnet ‘슈퍼스타K’ 출신 장재인, 퀸시 존스가 발탁한 정승원. 이들은 오디션 프로와 학교에서 정원영과 만나 사제지간이 됐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011년 중앙일보에 모인 KBS ‘톱밴드’ 우승팀 톡식의 김정우·김슬옹, Mnet ‘슈퍼스타K’ 출신 장재인, 퀸시 존스가 발탁한 정승원. 이들은 오디션 프로와 학교에서 정원영과 만나 사제지간이 됐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80년대 석기시대ㆍ사랑과평화ㆍ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등에서 키보디스트로 시작해 미국 버클리음대 유학 후 어느덧 30년간 학생들을 가르쳤지만 그는 자신의 인생에 ‘학교’가 있을 줄은 몰랐다고 했다. 93년 1집 ‘가버린 날들’을 발표하고 99년 긱스를 결성하는 등 ‘천재 뮤지션’ ‘뮤지션의 뮤지션’ 같은 수식어를 달고 살았지만 정작 본인은 “운 좋게 재능있는 친구들을 만났을 뿐”이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Mnet ‘슈퍼스타K’ 출신 장재인부터 아이돌 비투비의 이창섭ㆍ임현식, 워너원 김재환, 세븐틴의 프로듀서 범주, 알앤비 혜성 수민 등 제자들의 스펙트럼도 넓은 편이다.

“K팝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잖아요. 안무나 비주얼 요소도 중요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최고의 연주자나 곡을 잘 쓰는 친구들이 꾸준히 나와야 그 저변이 튼튼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먼저 데뷔를 하는 게 맞고 누군가는 공부를 더 해야 할 수도 있겠죠. 비단 우리 학교 학생이 아니더라도 외부 심사를 하다 재능있는 친구가 보이면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냐, 유학 갈 생각은 없냐 물어보기도 해요. 하지만 역시 가장 좋은 재능은 음악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좋은 뮤지션과 그냥 뮤지션의 차이는 항상 음악 안에 살고 있는가라고 생각하거든요. 돈 벌기 위해서, 유명해지고 싶어서 음악을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고. 더 많은 친구들과 함께 음악 안에서 오랫동안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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