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끌’한 아파트 절반만 쓴다···시장 왜곡 부른 다주택규제 역설

중앙일보

입력 2021.03.06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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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인 세대가 급증했지만 소형 주택이 별로 늘지 않아 수도권 공급 부족 물량이 50만가구로 추정된다. 사진은 서울 아파트 모습. 연합뉴스

1,2인 세대가 급증했지만 소형 주택이 별로 늘지 않아 수도권 공급 부족 물량이 50만가구로 추정된다. 사진은 서울 아파트 모습. 연합뉴스

# 서울에서 신혼집으로 전셋집을 알아보던 30대 김모씨는 생각을 바꿔 아예 집을 사기로 했다. 전세 매물이 씨가 말라 직장에서 대중교통이 편리한 곳에서 도저히 구할 수 없었다. 매수하는 대신 집 크기를 줄일 생각이지만 쉽지 않다. 가격 부담이 덜하고 신혼부부 두 명이 살기에 적당한 20평대 아파트가 드물어서다.

[안장원의 부동산 노트]
1,2인 세대 급증, 소형 주택은 태부족
다주택 규제 피해 세대 쪼개기
'똘똘한 한 채' 선호해 중대형 거주

김씨는 “주변에 한두 명이 사는 가구가 많은데 집은 대부분 큰 평형이어서 가격과 크기가 맞는 집을 찾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 지난해 ‘영끌’을 통해 30평대 아파트를 산 박모씨. 어린 자녀 한 명을 둔 세 식구가 살기에 20평대가 적당하다고 생각했지만 무리를 해서 30평대를 샀다.

주택담보대출 외에 신용대출 등 온갖 방법으로 부족한 자금을 끌어모았다. 어렵게 마련했는데도 정작 집의 절반 정도는 쓰지 않고 잠가뒀다. 난방비 등 관리비를 아끼기 위해서다.

박씨는 “30평대가 가격 부담이 크고 살기에 넓지만 집값이 더 오를 것으로 보고 집 크기를 키웠다”고 말했다.

주택 크기를 둘러싼 수요와 공급 간 '미스매치'(부조화)의 골이 깊다. 거주 단위인 세대의 분화는 빠른데 주택 크기가 여전히 중대형 위주여서다. 소형주택 공급 부족이 심하고 주택 과잉소비로 공간이 낭비되고 가 심하다. 정부의 주택시장 규제가 낳은 역설이다.

지난해 세대수 2.7% 증가 

주택이 필요한 단위로 보는 세대수 증가가 가속도를 밟았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주민등록 세대수가 2019년보다 전국적으로 2.7%(61만세대) 늘었다. 2010년(3.1%) 이후 10년만의 최대 증가율이다.

현 정부 들어 두드러진다.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세대수가 8.4% 늘었다. 이전 4년간 증가율이 5.4%였다. 인구는 현 정부 들어 거의 늘지 않았다. 0.3% 늘었고 이전 4년간은 1.5% 증가했다. 인구보다 세대수가 훨씬 더 늘어난 것은 세대 분화가 많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허윤경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소득 증가, 핵가족화 등의 사회경제적 이유도 있지만 정부의 세대별 주택시장 규제가 큰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양도세·종부세, 청약자격 등의 규제가 세대를 기준으로 한다. 세대별 보유 주택 수에 따라 세금이 달라지고 세대주여야 청약할 수 있다. 지난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증여도 세대수 증가에 일조했다. 자녀를 세대 분리해 증여해야 세대 보유 주택 수를 줄일 수 있다. 지난해 주택 증여가 15만여건이었다.

2000년대 초·중반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등 강한 규제정책을 폈던 노무현 정부 때도 세대수 증가율이 높았다.

1,2인 세대 62.6%, 소형 아파트 41.1% 

세대 쪼개기로 1~2인 세대가 급증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15년 55.8%인 1, 2인세대 비율이 2020년 62.6%가 됐다.

하지만 1, 2인 세대 세대용 소형주택 비중은 뒷걸음질 쳤다. 전용 60㎡ 이하 아파트 비율이 2015년 42.8%에서 2019년 41.1%로 내려갔다.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에선 소형 주택이 절대적으로 줄었다. 2015년 이후 2019년까지 1,2인 세대는 1만7000여세대 늘었는데 소형 아파트는 5000여가구 줄었다.
주택공급이 중대형 위주로 이뤄지고 강남3구에선 소형 아파트가 재건축으로 많이 멸실됐기 때문이다.

2018~2020년 서울에서 분양한 일반분양 4만가구 중 소형은 1만여가구(27%)에 그쳤다. 소형주택 인허가 물량도 줄었다. 60㎡ 이하 인허가 물량이 지난해 18만가구로 2017년 23만여가구보다 5만가구 줄었다.

다주택자 규제로 주택 수요자들이 ‘똘똘한 한 채’를 찾아 중대형을 선호한다. 집값이 같은 비율로 오르더라도 큰 집이 오른 금액이 훨씬 크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가 지난 4년간 주택형에 따라 서로 비슷한 100%가량 올랐다. 하지만 오른 금액은 전용 27㎡ 6억원, 59㎡ 10억, 84㎡ 12억원이다. 4년전 1억여원 차이 나던 59㎡와 84㎡가 지금은 4억원 넘게 벌어졌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무리해서라도 좀더 큰 집을 사는 게 이득이어서 작은 집에서 큰 집으로 집을 넓혀가는 사다리가 끊겼다”고 말했다.

소형 주택엔 임대 수요가 많지만 양도세·종부세 중과로 다주택자 수요가 크게 줄었다. 1,2인 가구 무주택 비율이 54.6%이고 3인 이상 가구는 39.9%다.

1인당 주거면적 32.9㎡ 

세대원 수 등 필요보다 더 큰 집에 사는 경우가 많아 주택 과잉소비다. 1인당 평균 주거면적이 2017년 31.2㎡에서 2019년 32.9㎡로 5%가량 커졌다. 주거면적 증가는 주거환경 개선으로 볼 수도 있지만 1인당 주거면적 소비가 커진 셈이다.

소형 주택 공급을 확대하기 위한 정책도 규제에 발목 잡혀 효과를 내지 못하게 됐다. 기존에 큰 집을 갖고 있던 재건축 조합원이 전용 60㎡ 이하 소형을 추가로 ‘1+1’로 분양받을 수 있지만 2주택자가 돼 양도세·종부세 중과 적용을 받는다. 소형을 분양받을 메리트가 없어진 셈이다.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서울 38만여가구, 수도권 50만여가구의 소형주택 공급이 부족하다. 2025년까지 필요한 소형주택이 25만가구로 추정된다.

건축비 현실화, 세제 혜택 등 필요 

주택산업연구원은 분양가상한제 적용 주택에서 소형주택의 건축비를 현실화하고 소형주택 건설 의무비율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거 재건축 등에서 전용 60㎡ 이하를 20% 이상 짓도록 했으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없어졌다.

소형 임대주택을 늘리기 위해 임대주택으로 등록하는 소형 주택에 대한 세제 혜택도 필요하다. 정부의 등록임대주택 규제 강화에 따라 아파트는 등록임대주택에서 제외됐다. 최근 아파트 가운데 전용 50㎡ 이하인 도시형생활주택만 임대주택 등록이 가능해졌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연구실장은 “수요·공급 불일치가 심한 소형 주택 공급을 늘려 주택시장의 중대형 주택 쏠림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안장원 기자 ahnj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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