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에게 가장 곤혹스러운 경우는 환자나 가족들로부터 남은 수명이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다. 미국 내과의사 1500명이 참여한 연구에 따르면, 그들은 1년 동안 환자로부터 “제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평균 열 번 받았고, 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의 가족들로부터 서른 번 정도 같은 질문을 받았다. 한 해에 마흔 번쯤 환자의 여명에 대한 질문을 받는 셈이다. 그런데, 의사들은 이런 질문을 받는 것이 상당히 괴롭다.
환자의 남은 수명 예측은 #숙련된 의사들도 쉽지 않아 #지나친 낙관도, 비관도 금물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였으면
연구에 참여한 의사들의 60%가 환자들의 남은 수명을 예측하여 말해주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응답했다. 59%는 예측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고 얘기했다. 또 90%는 예측이 틀려 환자의 신뢰를 잃게 될까 봐 염려했다. 그래서인지 의사들의 44%는 여명에 대해 먼저 설명하지 않고 환자가 물을 때까지 기다린다고 했다.
그런데 정작 환자 가족들은 의사들이 하는 이야기를 잘 믿지 않는다. 미국 피츠버그 의대 더글러스 화이트 교수의 연구를 보자. 연구팀은 중환자실에 입원해있는 환자의 가족들을 연구에 초대하여 10분짜리 동영상 두 편 중 하나를 보여 주었다. 영상에 등장하는 환자의 상황은 동일했는데, 의사가 가족들에게 설명하는 방식이 달랐다. 첫 번째 영상에 등장하는 의사는 “환자분이 회복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돌아가실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두 번째 영상에서는 “환자분이 회복될 가능성은 10% 정도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돌아가실 가능성이 90% 가량이나 된다는 뜻입니다”라고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 설명했다.
의사가 이렇게 이야기한다면 조만간 돌아가실 것이 분명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런 설명을 들은 환자 가족들은 어떻게 판단했을까? 의사가 사망 확률이 매우 높다고 말하는 첫 번째 영상을 본 가족들의 22%가, 그리고 생존 확률이 10% 정도라고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의사가 등장하는 두 번째 영상을 본 가족들의 26%가 환자는 결국 회복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의사가 뭐라고 하건 가족들은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놀란 화이트 교수는 후속 연구를 통해 왜 가족들이 의사의 설명을 믿지 않는지 확인해 보았다. 연구팀은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는 환자의 가족 50명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중환자실에서 의사들이 환자가 살아날 가망이 없다고 얘기할 때 가족들은 이 말을 믿어야 하나요?” 이 질문에 무려 환자 가족들의 88%가 의사들의 예측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대답했다.
왜 그럴까? 화이트 교수팀은 가족들을 자세히 인터뷰한 후 다음과 같이 4가지로 이유를 정리했다. ① 회복 여부에 신이 관여하기 때문이다. ② 원래 미래는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③ 의사의 틀린 예측을 예전에 경험했기 때문이다. ④ 담당 의사가 미숙해 보이거나 의사들마다 말이 다르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각양각색의 이유로 의사들의 말을 그대로 믿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누구 예측이 더 정확할까? 미국 듀크 의대 크리스토퍼 콕스 교수팀의 연구를 참고하자. 이들은 중환자실에 오래 입원하여 기관절개술까지 받은 환자 126명의 담당 의사와 가족을 따로 면담하여 해당 환자의 1년 후 생존 가능성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의사들의 43%가 자신이 맡은 환자가 1년간 생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가족들은 93%가 1년 후에도 환자가 살아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1년이 지난 후 연구팀은 환자들의 생존 여부를 확인해 예측과 맞추어 보았다. 결과는 어땠을까? 실제로는 126명 중 70명, 즉 56%의 환자들이 중병을 이겨내고 살아남았다. 환자 가족들이 믿었던 93%보다는 훨씬 못했지만, 의사들이 예상한 43% 보다는 나았다. 그러니 의사들은 실제보다 부정적으로 예상하고, 가족들은 지나치게 희망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얼마 전 부친상을 겪었다. 썩 건강하신 편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한두 해는 거뜬하게 견디실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갑자기 돌아가셨다. 지금 돌아보면 중환자실에 입원하신 적도 있으니 언제든 돌아가실 수 있는 상태였다. 수많은 환자들의 ‘사망선고’를 한 경험이 있는데도 부친의 상태를 턱없이 낙관했으니 이번만큼은 절망하는 의사가 아닌 희망하는 가족 역할을 한 셈이다. 자식이라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부디 그곳에서 평안하시길.
임재준 서울대 의대 교수 의학교육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