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국 왜 암 완치율 낮나] 분야별 "치료팀" 없이 의사 혼자서 수술·투약

중앙일보

입력

개인사업을 하는 K씨는 올해 초 음식을 먹고 나면 배가 거북한 증세가 있어 내시경 검사를 받은 후 위암으로 판정됐다. "수술로 완치될 확률은 40%, 나중에 재발할 위험은 60%"라는 담당 의사의 말을 들은 K씨는 완치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굳이 수술받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때 그의 친척이 약만으로 암을 완치할 수 있다는 광고를 본 적이 있다면서 고가의 약 구입을 권했다. 솔깃해진 K씨는 3개월치의 약을 사 복용했으나 증세는 나아지지 않았고 배가 불러 오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 병원을 찾아 CT 검사를 한 결과 복수가 생긴 것이 확인됐다. 이때는 이미 수술도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는 결국 5개월 만에 죽었다.

'암 걸려서 살아난 사람을 보지 못했어' '치료받느라 고생만 하다 결국은 갈 텐데…' '마지막으로 좋다는 약이나 먹어보자'….

국립암센터 이진수 병원장은 암을 늦게 발견하는 데다 암에 걸린 뒤에도 민간요법에 매달리려는 의식이 암 완치율을 낮추는 중요한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빨리 발견하고 제때, 전문적으로 치료받아야 완치율을 높일 수 있는데도 아직 환자나 그 가족의 의식이 못 따라준다는 것이다.

◇비전문가가 진료 그르치기도
최근 한 병원에서 항암제 치료를 받은 뒤 10일 만에 숨진 가정주부 C씨(59)는 비전문가의 잘못된 처방으로 생명을 잃었다. C씨에게 고농도의 항암제(MTX)를 쓰면서 반드시 함께 써야 하는 해독제를 빠뜨린 게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이 병원엔 항암제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종양내과 전문의가 없었다.

위암 진단을 받은 회사원 S씨(40) 역시 암을 전공하지 않은 의사가 위암이 선암인지 악성 림프종인지 구별하지 못해 돈 내고 부작용을 얻은 경우다. 암 절제 수술을 받은 뒤 S씨는 한달치 환자 부담 약값이 40만원인 고가의 항암제(탁솔)를 주사 맞았으나 증세가 오히려 악화됐다. 다른 병원으로 옮겨 조직검사를 다시 받은 결과 위에 생긴 악성 림프종으로 판정됐다. 처음에 간 병원이 위암 중 가장 흔한 선암으로 오진하고 이에 효과가 있는 탁솔을 처방한 것이다.

그 뒤 S씨는 악성 림프종에 효과적인 저가의 항암제(아드리아마이신)만으로 증상을 호전시켰다.

경희대병원 종양내과 김시영 교수는 "엉뚱한 항암제를 처방하거나 항암제의 양을 너무 많게 또는 적게 쓰거나, 투여기간이 너무 길거나 짧아도 환자의 생명이 위태로워진다"고 말했다.

◇미국은 전문가에 맡겨
미국 MD 앤더슨 암센터의 경우 암 환자가 입원하면 항암제 치료 10명, 수술 5명, 방사선 치료 5명, 병리 1명, X선 검사 판독 2명 등 20여명의 전문 의사가 한팀이 돼 환자의 치료계획을 세운다. 단계별 치료는 자신의 전문 분야에만 국한해 한다. 수술 전문의사가 항암제 처방을 내리면 바로 환자 측에게서 고소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병.의원은 일부 대형 병원을 제외하곤 대부분 한명의 의사가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된다. 의사 면허증만 있으면 항암제 처방, 수술, 방사선 치료까지 모든 시술을 할 수 있는 우리의 의료법과 관행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정기적인 검진에 의한 조기진단을 강조한다. 암의 완치율은 암이 초기냐 말기냐에 따라 하늘과 땅 차이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너무 늦게 암을 발견하면 의사가 손을 쓰기가 어렵게 된다. 이 때문에 불안해진 환자와 가족들은 오히려 효과가 불확실한 민간요법에 매달리는 등 악순환이 일어난다는 지적이다.

모 대학병원의 한 내과의는 "암이 말기까지 진행된 뒤에서야 병원을 찾는 환자들의 비율이 세계적으로도 우리나라가 무척 높은 편일 것"이라며 "이 경우 아무리 의료기술이 좋아도 환자를 살려내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또 미국처럼 환자가 의사와 함께 치료계획을 세우는 등 직접 자신의 암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 서울대병원 내과 허대석 교수는 "국내 병원에선 가족의 동의 없이는 암 진단 사실을 환자에게 알리지도 못하는 것이 현실이며 이는 신속하고 효율적인 치료계획을 세우는 데 걸림돌이 된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