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도 없는 숙소는"동물원", 3개월 내 개선 안되면 고발

중앙일보

입력

16일 서울 동부이촌동 의협회관 내 대한전공의협의회 사무실에서 만난 임동권 회장(36)은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회원들의 격려에서부터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까지 다양했다.

협의회가 공개한 전공의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이 새삼 관심을 끌기도 했지만 이를 인권침해로 보고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낸 것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렀다.

임 회장은 “근로여건이 개선되지 않으면 근로기준법 등 실정법 위반으로 병원을 고발하겠다”고 말했다.

-해묵은 문제를 지금 제기한 이유는.

"1968년 수련의 제도가 생긴 이후 40년 가까이 누적된 문제다. 전공의들은 모래알이다. 도제식으로 선배나 병원에 매여 있기 때문에 목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그러다 2000년 의료파업 이후 전공의들이 뭉치면서 협의회가 나서게 됐다."

-그동안 개선을 요구한 적이 없는가.

"개인 차원이나 개별 병원에서 더러 문제를 제기했지만 '싫으면 나가라'는 식으로 나오는 병원의 벽을 넘기 어려웠다."

-병원에 개선해 달라고 하지 왜 인권위로 직접 갔나.

"주당 100시간을 넘는 살인적 근무시간은 근로조건 차원을 넘어 행복추구권.평등권 등 인권을 침해한 것이다. 전공의 수련제도 전반을 개선하려는 게 주목적이다."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3개월 정도 지켜보다 제대로 된 해결책이 안 나오면 근로기준법이나 모성보호 관련 법률 위반으로 노동부 등에 고발할 방침이다."

-다른 직군들도 어려운데 의사까지 나서느냐는 지적이 있다.

"열악한 환경 때문에 진료의 질이 떨어진다. 응급실 호출을 받아도 듣지 못해 처치가 지연되거나 잠결에 전화로 진료지침을 주는 경우도 있다. 자칫 의료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또 과로로 연간 10여명의 전공의가 사망하지만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한다."

-인권위 진정 이후 반응은 어떤가.

"대다수 회원이 속시원하게 잘했다고 격려하고 있다. '괜히 건드렸다가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라는 우려도 있었다."

-정말로 남녀 의사의 공간이 분리돼 있지 않은가.

"인턴 당직실은 분리돼 있다. 여자가 많은 산부인과.내과 등 레지던트 당직실은 대부분 그렇지 않다. 당직실에서 겉옷이나 양말을 벗고 편히 쉬어야하는데 그럴 수 없다."

-인턴 숙소가 더 안 좋다던데.

"30~40명이 24시간 컴컴한 공간에서 들락거리며 잠을 잔다고 생각해 봐라. 창문도 없는 데가 많다. 의사들은 동물원이라 부른다."

-출산휴가를 못 가는 이유가 뭔가.

"상당수 병원이 여자 레지던트를 채용할 때 수련기간 중 애를 낳지 않겠다는 구두서약을 받는다. 또 병원이 90일 사용을 허용하지 않을 뿐더러 다 쉬면 동료들이 그 짐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에 미안해서라도 빨리 출근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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