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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우리편 안 서나' 박범계 말에···신현수 충격, 떠날 결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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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고위직 인사를 둘러싼 박범계 법무부장관과의 갈등 등으로 사의를 표명한 뒤 18일부터 휴가를 떠난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은 서울 용산의 자택이 아닌 지방 모처에 머물고 있다고 그의 지인들이 19일 전했다. 청와대는 이날 신 수석과의 접촉 여부나 내부 분위기 등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

신 수석은 휴가중에도 지인들에게 “힘이 든다”, “내 결정이 바뀔 일은 없다”는 취지의 짧은 말을 전하고 있다고 한다. 이와 관련 신 수석과 가까운 여권 인사는 중앙일보에 "지난 18일 청와대에 출근한 이유는 신변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던 걸로 안다"며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 등이 설득했지만 그는 사의를 굽히지 않았고, 결국 유 실장이 '일단 휴가로 처리할테니 깊이 고민해달라'는 취지로 재고를 요청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신 수석은 휴가에서 돌아오는 22일께 거취와 관련한 입장을 밝힐 예정인데, 그 사이 청와대와 박 장관측이 물밑 설득 작업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신 수석이 사의를 표명한 직접적인 계기는 알려진대로 박 장관이 자신을 배제하고 문재인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발표했다는 검찰 인사다. 그런데 신 수석과 가까운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인사 협의 과정에서 박 장관이 했던 발언들 때문에 신 수석이 큰 상처를 입었고, 사의를 굳히는데도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1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통화를 하고 있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왼쪽)과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 연합뉴스·뉴스1

1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통화를 하고 있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왼쪽)과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 연합뉴스·뉴스1

 여권 관계자는 이날 중앙일보에 "인사 협의 과정에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등의 거취 문제에 대한 이견이 발생하자 박 장관이 ‘왜 우리편에 서지 않느냐’는 취지로 신 수석을 몰아세웠고, 이같은 편가르기식 발언에 신 수석이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박 장관이 ‘우리 편’의 의미에 대해 구체적 밝히지는 않았지만, 여권 관계자들 사이에선 "민주당 소속 국회 법사위원을 중심으로 한 강경 친문(親文) 세력과 친(親)조국, 추미애 그룹 등을 포함한 개념 아니겠느냐"는 해석이 나온다.
중앙일보는 박 장관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취했지만 19일 밤까지 연결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박 장관은 신 수석과 조율하지 않은 인사안에 대한 재가를 문 대통령에게서 받았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5일 서울고검 청사에서 만나 검찰 인사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다. 윤 총장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는 않아 형식적 만남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 법무부]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5일 서울고검 청사에서 만나 검찰 인사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다. 윤 총장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는 않아 형식적 만남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 법무부]

의문은 문 대통령이 박 장관의 제청 때 신 수석과 조율이 되지 않은 인사안임을 인지했는지 여부인데, 청와대는 박 장관이 어떤 식으로 제청을 요청했는지를 포함해 이 부분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지난 17일 “(대통령의 인지 여부는)말하지 않겠다. (인사가)조율되는 과정은 민정수석까지고, 대통령은 거론하지 말아주기를 부탁드린다”,"청와대에서 이뤄지는 의사결정 과정을 낱낱이 공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말만 반복했다

정치권과 법조계 등에선 “민정수석 경험자로 검찰 인사 절차를 잘 알고 있는 문 대통령이기 때문에 인사안을 재가하기 전에 수석실과의 조율 여부를 물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도 있다.

18일 기자들과 만난 박 장관이 "법률상 (검찰)인사권자는 대통령","(조만간 단행될 검찰 중간간부 인사)일정은 대통령의 뜻도 여쭤봐야 한다. 규모 역시 마찬가지"라고 말한 걸 두고도 일부 언론은 "신 수석을 패싱한 건 문 대통령의 뜻이었다는 걸 우회적으로 밝힌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만약 조율되지 않은 안임을 알고도 문 대통령이 재가했다면 결과적으로 박 장관이 언급했다는 '우리 편'에 문 대통령이 포함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파문이 더 커질 수 있다.

박 장관은 신 수석이 사의를 표명한 뒤인 설 연휴 직전에야 직접 사과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신 수석은 그 뒤에도 “다시는 박 장관과 보거나 만날 일은 없다”며 불쾌한 심경을 주변에 토로했다고 지인들은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오전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지도부 초청 간담회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오전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지도부 초청 간담회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이날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와의 청와대 회동에서도 신 수석과 관련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여당 지도부 역시 관련 언급을 피했다. 청와대 인사들은 “신 수석의 복귀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 같다”면서도 “돌아오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반면 일각에선 “상황이 장기화 되기 전에 정부에 부담을 주고 있는 신 수석의 거취를 신속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지난해 6월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6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 참석한 문 대통령과 윤 총장의 모습.연합뉴스

지난해 6월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6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 참석한 문 대통령과 윤 총장의 모습.연합뉴스

이와 관련 한 청와대 인사는 “윤석열 총장에 이어 또다시 검찰 출신인 신 수석이 반문 진영의 영웅처럼 부상하는 상황에 대해 가장 우려하고 있다”며 “일각에선 재차 검찰을 대표하는 윤 총장과 문 대통령의 일대일 구도가 형성되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고 전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g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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