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골 먹은 ‘오대영’ 두 경기, 성장 기회라 행복했다

중앙선데이

입력 2021.02.20 00:02

업데이트 2021.02.20 01:09

지면보기

724호 25면

[스포츠 오디세이] ‘거미손’ 이운재 전북 코치

한국 축구 역대 최고 골키퍼로 인정받는 ‘거미손’ 이운재(48)를 만나러 가는 길에 복병을 먼저 만났다. 코로나19 바이러스다.

골키퍼도 롱 볼 차기 등 발기술 필요
공 오래 갖고 ‘발재간’ 부리면 안 돼

쩌렁쩌렁 소리 치며 선수들 컨트롤
최후방 사령관 역할 하는 게 중요

2년 폐결핵 투병 때 밤마다 줄넘기
기회 오면 잡을 수 있게 노력해야

올해 초 프로축구 K리그 명문 전북 현대의 골키퍼코치로 부임한 이운재는 전북 완주군 봉동읍에 있는 클럽하우스에서 생활하고 있다. 구단에서는 “방문 이틀 전까지 코로나 검사를 받고 음성 판정 증명을 갖고 와야 클럽하우스 입장이 가능하다”고 했다. 한 명이라도 확진자가 나오면 구단 1년 농사를 망칠 수 있기에 기꺼이 코로나 검사를 받았고, 음성 판정 문자를 확인한 뒤 전주로 향했다.

이운재는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었고, A매치 132경기에 출전한 베테랑이다. 은퇴 후엔 탁월한 골키퍼 조련사로 인정받았다. 전북호의 새 선장이 된 김상식 감독의 러브콜에 기꺼이 손을 맞잡았다.

봉동 클럽하우스에서 2017년 K리그 우승 트로피를 앞에 놓고 새 시즌 결의를 다지는 이운재 코치. 장정필 객원기자

봉동 클럽하우스에서 2017년 K리그 우승 트로피를 앞에 놓고 새 시즌 결의를 다지는 이운재 코치. 장정필 객원기자

봉동 클럽하우스 실내연습장에서 잠시 기다리자 특유의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숙소 이탈 ‘자카르타 사건’ 대가 다 치러

명문 구단은 다르다고 느낀 점은?
“좋은 구단이 되려면 역시 돈이 있어야 하고 과감한 투자를 해야겠죠. 그렇게 투자해서 구단의 재산이 된 선수를 막 대해서도 안 되겠죠. 시간이 지나면 이적을 통해 구단에 큰 수익을 안겨줄 수 있는 자원이잖아요. 전북이 비즈니스에 일찍 눈을 떴고, 선수·팀·회사가 함께 시너지 효과를 누리는 것 같습니다.”
김상식-이운재 하면 2007년 자카르타 사건(아시안컵 기간에 숙소 이탈해 룸살롱 간 일)이 떠오르는데요.
“그 사건을 다시 들춘다 해도 할 말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저희 행동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치렀다고 생각합니다. 질책을 받을 만큼 받았고, 대한축구협회에서 준 벌(국가대표 1년 자격정지)도 수용했고요. 그것보다 더 신경 쓰이는 건 전북이 4년 연속 우승을 했는데 내가 와서 그게 끊기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죠.”
골키퍼 조련에 남다른 노하우가 있죠.
“생각하며 운동하라고 강조합니다. 저는 훈련도 하나로 끝나는 것보다는 여러 요소가 합쳐진 걸 하려고 합니다. 경기장에서 1+1=2가 나오는 상황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상대 슈팅이 우리 선수 다리 맞고 굴절될 수도 있고,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훈련하면서 그걸 늘 생각하자는 거죠.”
2008년 K리그 우승 확정 때 송종국, 차범근 감독과 함께한 이운재. [중앙포토]

2008년 K리그 우승 확정 때 송종국, 차범근 감독과 함께한 이운재. [중앙포토]

요즘 축구는 전방압박과 빌드업(공격 전개)의 비중이 커지면서 골키퍼에게도 발기술을 요구하는데요.
“골키퍼의 발기술과 발재간은 다릅니다. 급하게 백패스가 와서 한 번에 롱 볼을 차야 하는데 어떤 방법으로 할 것인가. 공간을 확보한 우리 선수가 있다면 간결하게 처리하고, 상대에게 마크를 당한 상태라면 높이 띄워서 시간을 벌 수 있게 해 준다든지 이런 판단과 플레이가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어야죠. 여기에 필요한 게 발기술이라는 겁니다.”
안정감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씀이네요.
“맞습니다. 골키퍼가 공을 오래 갖고 있어봐야 좋을 거 없어요. (김병지가 하프라인까지 공을 몰다가 뺏겨 히딩크 감독에게 찍혔던 얘기를 하자) 지도자 입장에서는 그 방법은 원하지 않습니다. 저희 선수들에게는 ‘그런 능력이 있으면 세계적으로 퍼펙트하게 할 수 있다는 걸 보여라. 그렇지 않다면 하지 마라’고 말할 겁니다.”

이운재는 경희대 3학년이던 1994년 미국 월드컵 조별예선 독일전에서 0-3으로 뒤진 후반 전격 기용됐다. 한국은 2-3으로 아깝게 졌지만 무실점 방어를 펼친 이운재는 대표팀 주전으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을 앞두고 이운재는 폐결핵에 걸렸고, 2년 동안 투병해야 했다. 경기 출전은 물론 훈련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이운재는 모진 시간들을 이겨냈고, 2002 월드컵을 통해 세계적인 골키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이기려면 기다려라”고 했는데, 능력이 떨어져서 그런 건 아닌가요?
“그럴 수 있습니다. 2002년 이전으로 돌아가면 이운재라는 골키퍼는 잘 보이지 않았어요. 기회가 오지 않아 기다리면서 무엇을 했냐고 묻는다면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말할 겁니다. 96년 폐결핵으로 2년 동안 제대로 운동을 못할 때도 밤마다 줄넘기를 했습니다.”
골키퍼로는 키(1m82㎝)가 작은 편입니다. 살이 잘 찌는 체질이기도 하고요.
“지금이라면 이 키로 주전이 되기 힘들죠. 남들과 같은 양을 먹어도 살이 더 찌는 체질인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나만의 장점을 만들려고 했죠. 누가 봐도 ‘먹을 수 있는 거야’ 하는 건 먹어도 되는데 ‘저건 막을 수 있는 건데’ 하는 건 막자고 생각했죠. 그걸 100%가 아니라 150%, 200%까지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자는 결론이 나온 거죠.”
최후방 사령관 역할도 잘 했죠.
“그게 정말 중요합니다. 골키퍼는 선수들을 다 컨트롤하고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어야 합니다. 상대가 발로든 머리로든 슈팅을 했기 때문에 공이 골대 안으로 날아오는 거잖아요. 상대를 놓쳐서 계속 볼이 골대로 들어오면 아무리 훌륭한 골키퍼라도 실점 확률이 높아지죠. 동료가 저 멀리에 있어도 들을 수 있도록 쩌렁쩌렁 소리를 질러야 합니다.”

2002 월드컵 폴란드전 가장 기억에 남아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훈련 중인 이운재. [중앙포토]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훈련 중인 이운재. [중앙포토]

가장 기억에 남는 건 2002 월드컵 스페인과의 8강전이겠죠?
“아뇨. 첫 경기였던 폴란드전입니다. 전날 밤까지 선발 명단을 알려주지 않았어요. ‘내가 뛸 것 같다’는 생각은 했죠. 폴란드전 며칠 전 자체 평가전에서 제가 주전 조였거든요. 내 몸에 대해 자신감이 최고였어요. 나한테 기회가 온 거고, 준비를 하고 있었고요. 폴란드전에 김병지 선배님이 나갔다면 내겐 2002 월드컵은 없었을 겁니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경기는요?
“없습니다. 히딩크 감독님 밑에서 당한 두 번의 오대영((2001년 5월 프랑스전, 8월 체코전) 경기도 제겐 성장할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에 행복했어요. 당연히 다섯 골 먹으면 화가 나죠. 그렇지만 ‘이런 골을 먹을 수도 있고, 이런 경기를 할 수도 있구나’ 하면서 골키퍼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새길 수 있었죠.”
‘기다림’이 A매치 승부차기 10승1패 비결
2002 월드컵 스페인전

2002 월드컵 스페인전

이운재는 페널티킥과 승부차기에 특히 강했다. 2002 월드컵 스페인전(사진)을 포함해 A매치 승부차기 11전 10승 1패의 기록을 갖고 있다.

이운재는 2004년 12월 독일과의 친선 경기에서 미하엘 발락의 페널티킥을 막아 3-1 승리에 기여했다. 2004년 포항과의 K리그 챔피언결정전 승부차기에서는 포항의 마지막 키커 김병지의 슈팅을 막아 수원 삼성의 우승을 확정지었다. 승부차기에 강한 비결을 물었다.

“먼저 움직이지 않으려고 노력을 합니다. 방법을 서너 가지 갖고 있죠. 전혀 안 움직이는 것, 한쪽으로 뛰었다 다시 돌아오는 것, 이쪽 갔다가 다시 저쪽 갔다가 돌아오는 것 등이죠.”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했다. “골대 가운데 섰을 때 왼쪽 다리에서 왼쪽으로 2m, 오른쪽 다리에서 오른쪽으로 2m, 무릎에서 허리 높이로 오는 공은 손만 뻗어도 막을 수 있습니다. 승부차기 다섯 개 중에서 2∼3개는 골키퍼의 양쪽 2m 안으로 옵니다. 그것만 잡는다고 생각하는 거죠.”

키커는 찰 방향을 정해 놓고 뛰어오는 선수, 골키퍼가 움직이기를 기다리는 선수로 나뉜다고 한다. 두 번째 유형은 골키퍼가 움직이지 않으면 마음이 급해져서 킥 정확도와 슛 스피드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jerry@joongang.co.kr

*인터뷰 전문은 월간중앙 3월호 ‘정영재 전문기자의 레전드를 찾아서’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