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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멈춘 공익·공존·공유…‘공’이 굴러야 함께 산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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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0호 25면

스포츠 오디세이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우리의 일상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이젠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서력(西曆)이 BC(Before Christ) 와 AD(Anno Domini)로 나뉘듯 앞으로 세상은 BC(Before Corona·코로나 이전)와 AD(After Disease· 대질병 이후)로 나뉘게 될 것이다.

‘스포츠 혁신 전도사’ 김도균 교수 #헬스클럽 등 거리두기 제재 #스포츠 영향력 깨닫게 한 역설 #3·3농구 등 인원·경기장 축소 #스포츠도 미니멀리즘이 대세 #정부서 간섭 말고 지원해줘야

포스트코로나 시대 스포츠는 어떻게 바뀔 것인가. 우리는 바뀐 현실에 어떻게 적응해 가야 하는가. 미증유의 혼돈 속에 거대한 변화가 꿈틀대고 있는 현실을 해석하고 길을 알려줄 구루(스승)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도균 경희대 체육대학원 교수는 ‘스포츠계 혁신 아이콘’으로 통한다. 그는 국내 체육학과 교수 최초로 SERI (삼성경제연구소) 특강을 진행했고, 삼성 사장단 수요회의에서 특강을 한 적도 있다.

그는 나이키코리아 재직 당시인 1993년 나이키 3대3 길거리농구를 국내에 도입해 공전의 히트작을 만들었다. 24년 뒤인 2017년에 3×3 농구가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됐고, 그는 그해 한국3×3농구연맹 초대 회장을 맡게 된다.

혁신은 일상 속 발상의 전환에서 나와

지난 연말 제 27대 한국체육학회장에 취임한 김도균 교수가 체육학회 사무실에서 자료를 찾아보고 있다. 전민규 기자

지난 연말 제 27대 한국체육학회장에 취임한 김도균 교수가 체육학회 사무실에서 자료를 찾아보고 있다. 전민규 기자

김 교수는 트렌드를 남다른 시선으로 포착하고, 명쾌한 주제어로 그 현상을 설명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스포츠의 역사를 뒤바꾼 혁신의 장면들을 소개하는 유튜브 강사로서도 명성을 떨치고 있다.

김도균 교수는 지난해 12월, 제 27대 한국체육학회장(임기 2년)에 취임했다. 한국체육학회는 산하 16개 분과 학회를 거느린 체육계 최대 학술단체다. 김 회장을 지난 연말 서울 올림픽공원 내 체육학회장실에서 만났다.

코로나가 한국 스포츠에 미친 영향은 뭔가요.
“코로나로 인해 가장 크게 제재를 받는 분야가 스포츠입니다. 당장 프로스포츠 경기가 무관중으로 치러지거나 아예 리그가 중단되기도 했지요. 도심 대형 마트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한데 헬스클럽과 스키장은 영업 중단 처분을 받았잖아요. 역으로 말하면 스포츠가 그만큼 요즘 사람들한테 영향을 크게 미친다는 뜻입니다. 그동안 그걸 몰랐을 뿐이죠.”
스포츠 역사를 바꾼 혁신 사례를 많이 이야기하시는데요.
“대표적인 게 1마일(1.6㎞) 4분의 벽을 깬 로저 베니스터입니다. 1956년 5월 6일 그가 400m 트랙 네 바퀴를 3분59초4에 주파하기 전까지 4분은 인간이 깰 수 없는 기록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습니다. 생리학자들은 ‘1마일을 4분 안에 뛰면 심장·관절·인대가 파열해 죽는다’고까지 했죠. 옥스포드 의대생이었던 베니스터는 치밀한 연구와 체계적인 훈련으로 그 벽을 통쾌하게 깨 버렸습니다. 놀랍게도 그 후 두 달 만에 10명이 4분 안에 들어왔고 그 숫자는 2년 만에 300명으로 늘었습니다.”
1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높이뛰기에서 배면뛰기 기술로 금메달을 딴 딕 포스베리. 2 육상 1마일에서 사상 처음으로 4분의 벽을 깬 로저 베니스터. [중앙포토]

1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높이뛰기에서 배면뛰기 기술로 금메달을 딴 딕 포스베리. 2 육상 1마일에서 사상 처음으로 4분의 벽을 깬 로저 베니스터. [중앙포토]

높이뛰기의 배면(背面)뛰기도 혁신의 사례죠.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미국의 딕 포스베리가 처음 시도해 금메달을 딴 기술이 이제는 높이뛰기의 표준이 돼 버렸죠. 포스베리는 당시 착지 지점에 쿠션이 설치되는 것을 간파했고, ‘등이 먼저 땅에 닿아도 다치지 않겠구나’는 확신을 갖고 이 기술을 개발한 겁니다. 세상의 변화 속에서 새로운 걸 끄집어내는 능력이 중요한 거죠. 농구의 24초 룰(24초 안에 슈팅해야 하는 규칙)도 지금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당시로서는 파격이었잖아요. 이처럼 혁신은 일상 속 발상의 전환에서 나옵니다.”
최근 스포츠의 혁신 사례로는 뭐가 있을까요.
“미니멀리즘입니다. 인간의 생각이 다양화하면서 행동은 오히려 단순해집니다. 모든 종목에서 장비, 경기시간, 규칙, 인원, 경기장이 줄어들고 있죠. 3×3농구가 올림픽 종목이 됐고, 92년 만에 올림픽에 복귀한 럭비도 전통적인 15인제가 아닌 7인제를 선택했어요. 대한축구협회 주관 초등부 대회는 8인제로 합니다. 과거 올림픽 종목이 원시시대 수렵과 생존에서 유래한 달리기, 던지기,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기 위주였다면 이제는 브레이크댄스, 스키점프, 클라이밍 등 개인의 기량과 아름다움을 겨루는 쪽으로 바뀌고 있죠.”

김 회장의 엔진은 ‘메모’다. 그의 네이버 메모장에는 60여개 카테고리로 정리된 1만5000여개 메모가 빼곡히 담겨 있다. 스포츠산업 동향, 체육정책 등 전공 관련은 기본이고 스피치 기법, 노래방 애창곡, 건배사까지 있다. 새벽마다 조간신문을 보며 좋은 내용이나 표현은 스마트폰에 옮긴다. 화장실에서도 눈에 띄는 글귀가 있으면 사진을 찍고, 배울 점이 있는 사람을 만나면 대화를 녹음해 텍스트로 옮겨 놓는다. 그가 56세에도 젊은이들과 막힘없이 소통하고 끊임없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놓는 비결이다.

스포츠는 더 고급스럽게 변화할 것

김 회장은 학창 시절 축구·육상·럭비 선수로 활약한 만능 스포츠맨이다. 그는 대한민국 최초의 스포츠마케터라는 자부심과 함께 스포츠가 어떻게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 지를 고민한다.

“공이 멈추면 경기도 멈춥니다. 코로나는 공이 멈춘 겁니다. 공이 다시 굴러가게 해야 하는데, 여기서 공(共)은 공익·공생·공존·공유의 개념입니다. 다함께 건강하게 살고, 욕심을 조금만 덜고 가진 것을 나누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코로나는 고민하게 해 줬습니다.”

김 회장은 ‘공’이라는 글자를 180도 돌리면 ‘운’이 된다며 “공을 들이면 운이 옵니다”라며 웃었다.

그는 희망을 이야기했다. “바위 틈, 콘크리트 벽을 뚫고 나온 꽃이 아름다운 것처럼 삶과 죽음, 실패와 성공의 경계인 코로나 혼돈에서 꽃이 핀다면 정말 아름답겠죠. 코로나가 앞당긴 온택트-초개인화 시대에 스포츠는 더 고급스럽고 접근하기 쉽게 변화할 겁니다. 과거 국가나 기업이 스포츠를 끌고 갔다면 이젠 개인이 스스로 건강을 지키기 위해 운동을 하고 스포츠를 소비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바뀐 세상에서 정부는 스포츠에 간섭이 아닌 지원을, 기업은 시혜가 아닌 투자를 해야 하겠죠.”

“감 사·개선·배려가 길거리농구 히트 원동력”

2018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3대3 농구 대표 선발전 모습. [중앙포토]

2018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3대3 농구 대표 선발전 모습. [중앙포토]

나이키 3대3 길거리농구가 한국에서 처음 열린 1993년, 나이키코리아 사원이었던 김도균은 행사의 총책임을 맡았다. 서울·부산·대구·광주를 돌면서 열린 이 대회는 수많은 청소년들이 참가하고 싶어하는 ‘꿈의 경연장’이 됐다.

김도균 회장은 “지금 스포츠이벤트 대행사가 하는 일들을 우리가 다 했어요. 제가 겸임교수를 하면서 가르친 학생들에게 아르바이트 기회를 줬죠”라고 말했다.

그는 70여명의 학생들을 한 달 이상 가르쳤다. “자, 눈을 감고 이 광장에 코트 6개를 그려보자. 골대와 무대는 어느 쪽에 놓아야 할까? 해가 뜨고 지는 방향, 지하철 동선, 풍향과 풍속 등을 다 감안해야 해. 비가 오면 바닥에 라인을 표시한 테이프가 떨어질 텐데 어떻게 하지? 드라이기로 말린다? 그럼 전선을 어디서 끌고 오지?”

김 교수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참가자였다. 첫 경기에서 떨어진 팀끼리 번외경기를 한 번이라도 더 할 수 있게 매치를 엮어 줬다. 기다리는 시간에 지루하지 않도록 다양한 행사를 넣었다. 그는 마케팅의 ABC를 새로 만들었다. “A는 감사(Appreciate)입니다. 참가자들이 감사, 감동하는 마음을 갖도록 신경 썼죠. B는 매년 더 나아지게 하는 Better and Better입니다. C는 배려(Care)지요. 추억과 재미에 흠뻑 젖게 해 주고자 애썼습니다. 나이키 길거리농구가 대 히트를 한 원동력이 여기 있습니다.”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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