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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연 변명" 의학적 근거 없다

중앙일보

입력

금연 열풍과 담배 값 인상에도 아직까지 담배를 끊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이들에게는 흡연이 건강에 해악을 미친다는 의학계의 목소리도 무용지물이다.

올 2월 통계청에서 발표한 2003년 사회통계조사 결과에 따르면 흡연자의 45.1%가 '나는 건강하다'고 답했다.

애연가들은 금연을 권하는 사람에게 '스트레스 때문에 못 끊는다', '담배 끊으면 변비 생긴다', '살이 찐다' 등의 변명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이같은 변명들에는 의학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 전문의들의 설명이다.

오는 31일 '금연의 날'을 맞아 흡연자들의 대표적 변명들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알아본다.

◆ 담배 끊으면 소화가 안된다?

애연가들은 담배를 끊지 못하는 첫번째 이유로 스트레스 해소를 꼽는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가슴에 울화통이 치밀면서 위장까지 쓰린데, 이때 담배를 피우면 거짓말처럼 속이 차분히 가라앉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니코틴에 대한 중독 증상일 뿐 실제로는 오히려 속을 더 버리게 된다. 담배 연기는 위산의 분비를 촉진시키는 동시에 위산으로부터 위를 보호하는 '프로스타글라딘'의 분비를 억제한다.

이렇게 되면 위산이 위벽을 녹여 위염이나, 위궤양의 발생률을 2배 이상 높인다.

뿐만 아니라 흡연은 역류성 식도염의 중요한 원인이다.

흡연이 식도 아랫부분의 괄약근을 약하게 해 위산이 식도로 역류하게 만든다.

이외에도 흡연은 소화기 계통의 암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소장 및 대장의 기능을 떨어뜨려 변비, 설사, 복통, 복부 팽만감까지 일으키게 한다.

인천 힘찬병원 내과 이성광 부원장은 "식사 후 소화를 위해 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흡연은 오히려 만성 소화불량을 불러와 속 답답함을 더욱 부추긴다"고 지적했다.

◆ 담배 끊으면 변비가 생긴다?

금단증상의 대표격으로 꼽히는 '변비'도 허울 좋은 변명이다. 애연가 대부분이 '담배가 대장운동을 활발하게 해 변비를 해소한다'는 소문을 철썩 같이 믿고 있는데, 의학적으로 흡연과 대장운동과는 뚜렷한 상관관계가 없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이 직접적인 효과라기보다 조건반사라고 말한다.

즉 화장실을 이용할 때마다 흡연하는 습관이 자기도 모르게 뇌에 인식돼 담배를 물어야만 변의가 느껴지도록 적응돼 있다는 것이다. 금연 후에 나타나는 변비는 인체가 정상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순간적인 현상일 뿐이다.

강남서울외과 오소향 원장은 "흡연은 오히려 대장암과 폴립(대장암의 선행 질환)을 유발시켜 대장운동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금연 후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변비는 섬유질과 수분만 잘 섭취한다면 며칠 안에 해소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 담배 끊으면 살이 찐다?

니코틴은 지방분해를 활성화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비만을 초래한다.

아주대병원이 96~98년까지 건강검진을 받은 30~50세 남성 1천418명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흡연자의 허리둘레는 90.7cm로, 비흡연자(87.7cm)보다 평균 3cm 컸다.

또 복부 비만의 기준인 허리-엉덩이 둘레비도 흡연자(0.92)가 비흡연자(0.878)보다 현저하게 높았다.

이는 흡연이 부신피질호르몬의 분비를 촉진시켜, 복강 내 지방축적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흡연은 살을 빼주는 것이 아니라, 올챙이형 배로 만드는 효과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또한 금연할 때 살이 찌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약하게나마 있었던 니코틴의 비정상적인 지방분해가 멈췄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의의 분석이다.

베스트클리닉 이승남 원장은 "금연하면 일시적으로 살이 찌지만 운동과 식이요법을 통해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며 "단순히 몇 킬로그램이 찌는 것 때문에 몸 전체의 건강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 입담배는 괜찮다?

원스턴 처칠은 골초이면서 장수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특히 그는 속으로 연기를 들이마시지 않는 소위 '입담배'를 즐겼다고 한다. 그래서 일부 입담배 흡연자들은 연기가 폐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기관지에 해악이 적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처칠은 운 좋은 경우일 뿐 이는 상식과 다르다. 입담배라고 할지라도 소량의 담배연기는 결국 인체 내로 흡수된다. 이는 기관지 점막을 마르게 하고, 혈관을 수축시켜 기관지를 손상시킨다.

또 입담배는 단지 암 발생을 폐에서 구강으로 바꿀 뿐 발생률에서는 동일하다.

오히려 입안의 산소 농도를 줄임으로써 치주질환의 원인인 혐기성 세균을 증식시켜 입냄새를 심하게 한다. 특히 술을 마시면서 담배를 피우면 구강암 위험을 더욱 높인다.

◆ 건강식품 잘 챙겨 먹어서 괜찮다?

2003년 사회통계조사에 따르면 흡연자들은 운동과 식사 조절은 등한시하면서 보약이나 영양제는 잘 챙겨 먹는 걸로 나타났다.

흡연하는 동안 비타민 등의 건강 보조 식품들을 먹으면 흡연의 해악을 막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인데, 오히려 정확한 정보 없이 영양제 등을 챙겨 먹다가는 암 발병률이 높아질 수도 있다.

이승남 원장은 "흡연할 때는 오렌지, 감, 귤, 호박, 당근, 살구 등 비타민A의 전구체인 베타 카로틴이 많이 든 과일 및 야채류를 삼가는 게 좋다"고 설명한다.

오히려 이들 과일이나 야채가 폐암 발병률을 높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국암학회지에는 '담배의 유해성분이 베타카로틴을 변형시켜 폐암 발병을 촉진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실리기도 했다.

이 원장은 "담배를 피우면서 먹는 항암물질은 건강에 큰 도움이 안 된다"면서 " 오히려 담배 자체를 끊는 것이 비싼 보약이나 영양제를 먹는 것보다 더 큰 항암 효과가 있다"고 충고했다.

◆ 순한 담배는 괜찮다?

순하다고 광고되는 담배들은 한 개비당 타르나 니코틴 함량이 다른 담배보다 적은 것을 뜻한다. 하지만 담배에는 니코틴과 타르 외에도 수천 가지의 발암물질이 들어가 있다.

즉 타르와 니코틴을 줄였다고 해서 다른 발암물질까지 적게 함유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또 담배는 중독성 기호품이다. 비록 순한 담배라 해도 습관적으로 피우게 되면 체내에는 발암 물질들이 쌓이게 마련이다.

또 일부는 담배를 흡입량과 흡연량이 적은 시가나 파이프로 대체함으로써 건강에 대한 해악이 적을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국제암연구기관(IARC)이 1999년에 독일, 이탈리아, 스웨덴 사람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비흡연자와 비교했을 때 시가 흡연자의 폐암 발병률은 9배, 파이프 담배 흡연자는 8배 가량 각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통 시가를 4개비 피우면 담배를 10개비 피운 것과 동일한 효과를 낸다.

◆ 도움말
인천 힘찬병원 소화기 내과 이성광 진료부원장, 강남서울외과 오소향 원장, 강남 베스트 클리닉 이승남 원장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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