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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코로나 성묘 길' 조상 뵙고 오니 마음에 위안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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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조남대의 은퇴일기(9)

설날을 일주일 앞둔 시점이라 고속도로가 한결 여유롭다. 코로나 거리 두기로 인해 큰댁에 모여 차례를 지낼 수 없어 앞당겨 성묘를 다녀왔다. 돌아오는 길에 슬로시티인 청송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았다. 멋진 풍경과 훈훈한 이야기를 눈과 가슴에 가득 담아 왔다.

고향이 곶감의 고장이라 곶감에 대한 나의 사랑은 지극하다. 그래서 설날에는 주로 곶감을 선물한다. 예년처럼 사돈과 처가에 곶감을 선물하기 위해 물색하다 우연히 고향에서 곶감 농사를 짓는 ‘황이련 곶감’ 농원을 알게 되어 성묘 가는 길에 들렸다. 마을 입구에 ‘상주곶감특구지역’이라는 높다란 간판이 곶감의 중심 마을이라고 자랑하듯 서 있다. 동네 입구 가로수뿐 아니라 마을 주변 전체가 감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경북 상주 곶감 마을 입구에 세워진 간판. [사진 조남대]

경북 상주 곶감 마을 입구에 세워진 간판. [사진 조남대]

마당에 들어서자 곶감을 손질하던 안주인이 고향 특유의 상냥한 목소리로 반긴다. 50대 초반의 부부가 3대째 곶감 농사를 하고 있다. 샤인머스켓 포도와 복숭아까지 합해 1만 평 이상 과수 농사를 하고 있단다. 감나무밭에 제초제를 치지 않고 일 년에 4번 정도 풀을 깎는 초생 재배를 해 먹거리를 제공하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특허받은 당뇨 예방 재배 방법으로 감을 생산해 자연건조 한 것에 믿음이 간다. 고향 들를 때 꼭 놀러 오고 복숭아 꽃 필 때 과수원 농막에서 주무시고 가라며 살갑게 대해 오래전에 알았던 지인처럼 정을 듬뿍 나눴다.

곶감 농원에서 산소까지는 10여 분 거리다. 간단히 준비해 온 제물을 차려 놓고 아내와 함께 성묘했다. 지난해 종중 묘지를 조성해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20여 분의 친척을 한 곳에 모셨다. 앞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양지바른 곳이라 속이 확 트인다. 조상들이 같이 계시니 얼마나 좋아할까? 특히 7대 종손인 선친께서는 생전에 종중 묘지 조성을 간절히 바라셨는데, 하늘나라에서 제일 기뻐하실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종중묘역에서 성묘를 하는 필자.

종중묘역에서 성묘를 하는 필자.

고향 마을에는 농공단지를 조성하기 위해 올해부터 공사를 시작한다. 태어나서 중학교까지 다닌 고향이다. 집과 골목길과 논밭과 산이 눈에 선하다. 조만간 모두 흔적 없이 사라지다니 앞으로 고향이 그리울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그나마 동네 뒤에 있는 선산과 종중 묘지는 포함되지 않아 다행이다. 훗날 고향 산천이 그리울 때 꺼내 보기 위해 많은 사진을 찍어 두었다.

사라질 고향을 두고 오자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한 시간을 달려 처가 산소가 있는 성주에 접어들자 주변은 온통 흰 물결로 뒤덮여 있다. 참외의 본고장인지라 비닐하우스가 지천으로 널려 있는 것이다. 장인과 장모를 비롯해 조상을 한 곳에 모신 가족묘지다. 나의 최고 팬이던 장모는 99세까지 살다 2년 전 돌아가셨다. 사리 판단이 정확해 노인정에서는 교장 선생님으로 불렸다.

결혼 후 명절이나 행사가 있을 때 찾아뵈었는데, 이제는 산소에 누워 절을 받는다. 비록 반가운 음성과 따뜻한 손길은 없지만 곱게 한복 차려입고 두 팔을 벌려 온몸으로 반기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간다.

주산지 물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300년된 왕버들나무.

주산지 물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300년된 왕버들나무.

가까운 거리에 동생들과 처남이 살고 있지만 만남을 자제한 채 청송으로 발길을 옮겼다. 하룻밤 머물면서 주산지, 자작나무숲과 송소고택을 돌아보기 위해서다. 일출 전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다음 날 아침 일찍 주산지에 도착했다. 이른 시각이라 관광객이 거의 없다. 저수지 대부분이 얼음으로 덮여 있어 물에 비친 아름다운 풍경과 물안개를 촬영할 수 없어 아쉬웠다. 300년이 넘은 왕버들 나무는 물속에 뿌리를 내린 채 긴 세월을 지켜왔다. 나무도 해가 갈수록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예전보다 세력이 많이 약해진 것 같다. 몇몇 나무는 수액 통을 허리에 달고 있다. 링거를 꽂고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아 애처로워 보였다.

무포산 피나무재에서 꼬불꼬불한 임도를 따라 4km 정도 들어가면 확 트인 곳에 쭉 벋은 하얀 자작나무숲이 나타난다. 눈앞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 것 같아 가슴이 뻥 뚫렸다. 8만㎡의 산에 20~30년 된 자작나무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봄기운이 묻어나는 시원한 공기를 가슴 깊이 들이마셔 본다. 순식간에 머리를 한 바퀴 돌면서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다. 그 넓은 산을 우리 부부가 오롯이 독차지했다.

무포산에 빽빽이 심어져 있는 자작나무.

무포산에 빽빽이 심어져 있는 자작나무.

송소고택의 별당.

송소고택의 별당.

송소고택은 1890년 송소 심호택이 지은 99칸 고택이다. 오래된 한옥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250년간 만석의 부를 유지해온 영남의 대부호였지만 농지개혁 때 소유한 토지를 소작농에게 선구적으로 나누어줘 9대째 이어져 온 부를 내려놓았다. 가진 것을 내어놓는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결단이었을 텐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한 한국의 모범 사례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존경심이 우러나온다. 그래서인지 해마다 5000∼6000여명이 숙박 체험을 할 정도로 지금도 인기가 좋다. 99칸의 종갓집 옆에 30칸씩 집을 지어 동생 3명에게 나누어 주어 총 190칸의 고택이 한 곳에 어우러져 있다. 다정한 형제애를 보는 것 같아 흐뭇하다.

부럽기도 하지만 이 넓은 한옥을 관리하는 일이나 체험하러 오는 손님 맞이가 무척 힘들 것으로 보인다. 고향을 지키고 전통을 보존하는 분이 계시기에 문화유산을 이어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지난 추석에 이어 설날에도 형제들이 함께 모여 차례를 지낼 수 없어 얼마나 허전하고 안타까운지 모르겠다. 30명이 넘는 대가족이 모여서 왁자지껄하고 “하하”, “호호” 웃는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산소를 찾아 조상님을 뵙고 오자 다소나마 마음의 위안이 된다.

동북아경제협력위원회 행정위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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