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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정호 논설위원이 간다

2만2319자에 담긴 충정 “인(仁)으로 악에 대적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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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박정호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안중근 자서전 ‘안응칠 역사’ 재평가

안중근 의사는 1910년 3월 26일 순국 직전까지 글을 쓰며 동아시아 평화를 염원했다. 안 의사가 수감됐던 중국 뤼순 감옥 독방. [중앙포토]

안중근 의사는 1910년 3월 26일 순국 직전까지 글을 쓰며 동아시아 평화를 염원했다. 안 의사가 수감됐던 중국 뤼순 감옥 독방. [중앙포토]

1910년 경술년, 음력 2월 5일, 양력 3월 15일. 안중근(1879~1910) 의사는 자서전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를 찍었다. “뤼순(旅順)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이 쓰기를 마치다”라고 썼다. 한자로 총 2만2319자에 이르는 『안응칠 역사』다. 1909년 12월 13일에 시작했으니 꼬박 석 달이 걸렸다. 그리고 열하루 뒤 안 의사는 뤼순 감옥에서 영원히 산화했다. 32년이란 짧지만 긴 역사(歷史)를 마감했다. 올해는 안 의사 순국 111주년을 맞는 해다. 지난 14일은 일본 관동법원이 안 의사에 사형 선고를 내린 날이었다.

순국 111주년 맞아 비판정본 나와 #원문·번역문 전체 온라인 공개도 #21세기 평화의 동북아 비전 제시 #사라진 친필 원고 어디에 있을까

응칠(應七)은 안중근의 자(字·본이름 외에 부르는 이름)다. 안 의사는 자서전 들머리에서 “성질이 경솔하고 조급한 편이어서 이름을 중근이라 했고, 가슴과 배에 일곱 개의 사마귀가 있어서 자를 응칠이라 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6일 서울 강변역 인근의 작은 식당에서 색다른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안응칠 역사』 비판정본 출간 및 독도디지털도서관(dokdodl.org) 개관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코로나19 사태 비대면 원칙에 따라 줌 화상회의로 진행된 이날 모임은 독도도서관친구들 김경애 사무국장의 “안녕하세요”로 시작했다. 회원 20여 명이 노트북·스마트폰 화면을 보면서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2014년 독도책보내기 운동으로 발족한 독도도서관친구들은 현재 월회비 2000원을 내는 시민회원 3370여 명으로 구성돼 있다. 분쟁이 아닌 평화의 섬 독도를 꿈꾸며 2018년부터 안 의사의 책 비판정본 발간을 후원해왔다.

각계 전문가와 시민 3400명 손잡아

독방 안의 책상을 재연한 모습. [중앙포토]

독방 안의 책상을 재연한 모습. [중앙포토]

다소 낯선 개념인 비판정본은 지금껏 전하는 필사본과 영인본, 그리고 여러 출판본을 대조·검토한 일종의 결정본이다. 안 의사가 옥중에서 쓴 『안응칠 역사』 원본(친필본)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이번 정본은 일본인이 베껴 쓴 한문 필사본과 영인본 각각 두 종, 노산(蘆山) 이은상(1903~82)이 정리한  『안중근 의사 자서전』(1981)과 안중근평화연구원이 낸 『안중근 유고집』(2016), 또 열화당에서 발간한 『안중근 옥중 자서전』(2019) 등 기존 판본의 오탈자 및 판독·첨가 오류 등을 바로잡았다. 안중근의 원래 목소리를 최대한 살리자는 시도다. 서양문헌학자, 한국 현대사 연구가, 한문고전 전문가 6명이 각 판본의 글자를 하나하나 대조하며 총 751곳의 주석을 달았다.

예컨대 안 의사는 일제의 사형 선고에 대한 공소(控訴)마저 포기하며 저술에 매진했는데, 후대 한국 출판물에선 이를 한자 ‘拱訴’ 혹은 ‘控所’로 적었다. ‘控訴’는 항소(抗訴)를 뜻하는 옛 법률용어다. 박장대소(拍掌大笑)의 경우 안 의사는 박장대소(搏掌大笑)라고 썼다. 사소한 차이일 수 있으나 지난 100년 사이 한국인의 한자 사용 변화상을 살펴볼 수 있다.

안 의사 처형장 내부 풍경. [중앙포토]

안 의사 처형장 내부 풍경. [중앙포토]

이번 비판정본은 2019년 6월 나온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에 이은 두 번째 결실이다. 한·중·일 3국의 평화체제를 선구적으로 주창한 『동양평화론』 역시 아직 원본의 행방을 모르는 상태다. 정본 작업을 지휘한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는 “학자는 물론 일반인도 믿고 인용할 수 있는 안 의사의 텍스트를 정립한다는 의미가 크다”며 “안중근 연구의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참고로 시판 중인 안중근 자서전은 대부분 이은상 판본을 현대어로 각색한 것이다.

안 교수는 특히 『안응칠 역사』에 등장하는 사회(社會)라는 단어를 주목했다. 안 의사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오늘날 이른바 사회라는 것은 여러 사람의 힘을 모으는 것을 위주로 한다”며 동포들의 화합을 촉구했다. 안 교수는 “영어 소사이어티(Society)를 단순 번역한 모임·조직을 넘어서 사회라는 것에 대한 가장 적확한 번역이다. 한국 근대용어사전을 만드는 주요 자료가 된다”고 평가했다.

안 의사가 자신의 32년 역정을 정리한 『안응칠 역사』 필사본 일부. [중앙포토]

안 의사가 자신의 32년 역정을 정리한 『안응칠 역사』 필사본 일부. [중앙포토]

『안응칠 역사』 비판정본(원문대역 포함) 전문은 단행본과 함께 온라인에 무료 공개됐다. 안중근이란 역사적 자산을 모두 함께 공유한다는 뜻에서다. 디지털도서관 실무를 맡은 최운호 목포대 국문과 교수는 “PC는 물론 스마트폰에서도 편하게 볼 수 있도록 목차와 제목, 본문과 주석을 단락단락 나눠 실었다”며 “앞으로 『동양평화론』 전문을 추가하고, 각종 부가기능도 덧붙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여희숙 독도도서관친구들 이사장은 안 의사의 동시대성을 내세웠다. 그는 “그동안 단편적으로 접했던 안 의사의 전모를 100년이란 시간을 뛰어넘어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단했다는 지사적 측면은 물론 의병장 활동 당시 포로로 잡은 일본군을 풀어준 안 의사의 보편적 인류애에서 미래를 열어가는 거인을 만났다는 것이다. 그가 『안응칠 역사』의 한 대목을 인용하며 각오를 다졌다. 독립군 의병장 참모중장이었던 안 의사의 마음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가 한 번 의병을 일으켜서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명확합니다. 그렇다면 한 번에 성공하지 못하면, 두 번 세 번 시도하여 열 번에 이르고, 백 번 꺾여도 굽히지 않아야 합니다. 올해 성공하지 못하면 다시 내년에 도모하고, 내년 또 내후년, 십 년 백 년이 걸려도 좋은 것입니다.”

100년 시간 뛰어넘는 동시대 인물

안중근 저서 비판정본 작업에 참여한 이들. 오른쪽부터 안재원 교수, 손하누리·김은숙 연구원, 여희숙 독도도서관친구들 이사장. 박정호 기자

안중근 저서 비판정본 작업에 참여한 이들. 오른쪽부터 안재원 교수, 손하누리·김은숙 연구원, 여희숙 독도도서관친구들 이사장. 박정호 기자

안 의사는 2021년 오늘의 우리에게도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향후 대한민국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귀중한 나침반이 된다. 미·중 패권경쟁이 격화되고, 날로 험악해지는 동북아 정세를 헤쳐가는 데 길잡이가 되기에 충분하다. 피 끓는 애국지사, 행동하는 영웅을 넘어 약육강식이란 현실적 정의관을 뒤집는 사상가, 혹은 전략가 안중근이 재조명받고 있다. 19세기 제국주의로의 회귀는 인류의 공멸을 가져올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일본군 포로를 풀어준 것에 대해 의병 내부에서 불만이 터지자 안 의사는 이렇게 대답한다.

안중근 의사

안중근 의사

“일본 4000만 남짓의 인구를 다 죽인 뒤에 국권을 회복하겠다는 계산인가? (중략) 이토의 포악한 책략을 세계에 널리 알려 열강이 동감하는 뜻을 얻은 뒤에야 원통함을 갚을 수 있을 것이오. 이것이 이른바 ‘약한 것으로 강한 것을 제거하고 인(仁)으로 악에 대적한다’는 것이니, 여러분은 부디 여러 말 마시오.”

안 의사 비판정본은 최종판이 아니다. 학계 연구 결과에 따라 새로운 해석이 추가될 수 있다. 앞으로 원본을 되찾으면 언제든지 수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원본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혹시 멸실된 건 아닐까. 안재원 교수는 “『안응칠 역사』 필사본도 1969년 처음 발견됐다. 원본 또한 어디에 남아 있을 것이다. 일본 법무성(옛 사법성) 아카이브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안 의사 유해 찾기에 전념하고 있는 김월배 하얼빈대 이공대 교수도 “친필본을 필사할 정도로 안 의사에 대한 일본인의 관심이 컸던 만큼 원본 또한 사법성 증거물품 보관기관에 있을 것 같다. 민간과 정부의 공조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안중근의 롤 모델은 조지 워싱턴?

조지 워싱턴

조지 워싱턴

“미국 독립의 주역인 워싱턴은 7, 8년의 풍진(風塵) 기간에 수많은 곤란과 고초를 어찌 참고 견뎌낼 수 있었던가? 진실로 만고에 둘도 없는 영웅호걸이다.”

『안응칠 역사』의 한 대목이다. 안 의사는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사진)을 영웅호걸에 견주었다. 워싱턴에 대한 그의 애정은 각별했다. “내가 만일 훗날에 일을 이룬다면 반드시 미국으로 달려가서 특별히 워싱턴을 위해 추억하고 숭배하며 마음이 같았음을 기념하리라”고 다졌다.

『안응칠 역사』에는 안 의사가 존경한 인물이 두 명 등장한다. 안 의사의 롤 모델쯤 된다. 안 의사는 워싱턴에 자신의 고단한 일생을 투영한 듯하다. 또 다른 한 명은 안 의사가 어린 시절 흠모한 중국 초나라 군주 항우다. 의협심이 강한 안 의사는 “만고의 영웅 초패왕의 명예는 천추에 남겨 전한다. (중략) 그는 장부이고, 나도 장부”라고 적었다.

100여 년 전 격동의 국제 정세에 눈을 뜬 안 의사는 워싱턴에게서 새 희망을 발견했다. 안재원 교수는 “안 의사는 신소설작가 이해조가 1908년 발표한 『화성돈전』을 읽고 독립에 대한 의지를 다졌을 것으로 짐작한다”고 말했다. 화성돈(華盛頓)은 워싱턴의 한자 음역어다. 『화성돈전』은 미국서 나온 워싱턴 전기 5종을 일본에서 발췌·편찬한 책이다. 중국에서 이를 중국어로 번역했고, 이를 다시 이해조가 국한문체로 집필했다. 독도도서관친구들은 세 번째 비판정본으로 『화성돈전』을 준비 중이다. 이해조 판본을 중심으로 한·중·일 3국의 텍스트를 비교·검토할 계획이다.

박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