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강찬호 논설위원이 간다

‘방역’‘통진당’ 핑계대며 야당 의원들 막은 대법원

중앙일보

입력 2021.02.10 00:28

지면보기

종합 20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야당, 김명수 대법원장 항의 방문 때 무슨일이 

지난 5일 김명수 대법원장을 항의 방문한 국민의힘 의원들이 대법원 청사 현관에서 자신들을 막은 경호진에게 항의하고 있다. 오른쪽 끝부터 장제원·김기현·유상범·김도읍 의원. [뉴스1]

지난 5일 김명수 대법원장을 항의 방문한 국민의힘 의원들이 대법원 청사 현관에서 자신들을 막은 경호진에게 항의하고 있다. 오른쪽 끝부터 장제원·김기현·유상범·김도읍 의원. [뉴스1]

임성근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의 사표 수리를 거부하며 정치적 중립과 삼권분립을 위반하고 거짓말을 했다는 비난에 휩싸인 김명수 대법원장. 지난 5일 야당 의원들이 그를 찾아가 사퇴를 요구했다. 사법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대법원은 방호원과 쇠사슬로 의원들의 진입을 막아 의원들은 30분간 연좌 농성을 벌이는 등 우여곡절 끝에 김 대법원장을 만났다. 국민의힘 ‘탄핵거래진상조사단’의 일원으로 김 대법원장을 만난 김기현(4선·울산남을) 의원과 장제원(3선·부산 사상), 유상범(초선·홍천-횡성-영월-평창), 전주혜(초선·비례) 의원에게 전말을 들어봤다.

김명수, 면담 내내 묵묵부답
‘코드인사’ 지적에만 반응 보여
“쇠사슬 왜 쳤나” 의원들 항의에
씩 웃으며 “몰랐습니다” 답변

국회눈치 봐야한다던 땐 21대 국회 개원 전

장제원 의원은 “김명수 대법원장을 만나 대뜸 ‘왜 쇠사슬치고 문을 잠갔나’고 추궁했다”고 전했다. “그러자 김 대법원장은 씩 웃으며 ‘몰랐다’고 하더라. 어이가 없어 ‘이렇게 문을 막고 숨는다고 판사들이 가만있겠나? 사퇴 용단을 내리라’고 하니 ‘잘못한 것 전혀 없다’고 하더라. 땅에 떨어진 사법부의 권위를 회복할 방안을 추궁하기 위해 만난 것인데 그는 지엽적 사안을 자질구레하게 변명하는 데 급급했다. 대법원장의 권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방문단의 일원인 김도읍(3선·부산 북-강서을) 의원은 김 대법원장이 지난해 5월 임성근 판사의 사표 수리를 거부하면서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나”고 말한 ‘시점’을 추궁했다. “김 대법원장이 임 판사와 대화한 시점은 현 21대 국회가 개원(5월 30일)하지 않았고, 20대 국회(5월 29일 폐원)는 사실상 문 닫은 상황이라 눈치 볼 ‘국회’ 자체가 없었다. 또 ‘판사 탄핵’은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 당선인 신분인 이탄희 전 판사 같은 사람만 거론하던 수준이었다. 대법원장이 고작 초선 국회의원 당선인의 주장을 의식해 고법 부장판사 사표 수리를 거부했다면 누가 믿겠나. 당시 청와대나 민주당 실세 같은 배후와 거래한 것 아니냐?”

바닥만 내려다본 대법원장

김도읍 의원의 이런 추궁에 대해 김 대법원장은 묵묵부답이었다고 한다. 김 대법원장은 간혹 답변할 때에도 “목소리가 워낙 조곤조곤하고 말투가 웅얼웅얼하는 식”(전주혜 의원)이라 의원들의 답답증은 배가됐다. 김기현 의원은 침묵 속에 드러나는 김명수 원장의 ‘내심’을 관찰했다고 한다. “김 원장이 답변하는데, 의원들 얼굴은 보지 않고 집무실 바닥이나 테이블에 시선을 깔며 말하더라. 표정은 침울하고 곤혹스럽게 보였다. 본인 자신도 중한 죄를 저지른 걸 알고 있으면서도 대법원장 자리는 지키기 원하는 표정으로 느껴졌다.”

김 의원은 “김 대법원장은 자신이 임성근 판사를 오히려 보호했다는 인상을 주려고 애쓰는 듯도 했다”고 덧붙였다. 김 대법원장이 의원들에게 “내가 임성근 판사와 대화할 때 ‘당신이 탄핵을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강조했다는 것이다.

“야당 의원 올 때만 코로나 번지나”

의원들은 진입을 막은 행위도 집중 추궁했다. 김기현 의원은 “대법원이 청사 정문 현관에 쇠사슬 막대를 설치하는 것도 모자라 현관문 손잡이에 쇠막대를 걸고 자물쇠를 채웠다. 또 현관과 로비에 이중으로 방호원들을 세워 인간벽을 쌓았다”고 했다. 전주혜 의원은 현장 책임자에게 “누가 시켜서 막는 거냐”고 따졌다. 책임자는 “내 자신의 판단”이라며 입을 닫았다고 한다. 분노한 의원들은 대법원 간부들에게 잇따라 전화를 걸었다.

김기현 의원의 전언이다. “여러 번 전화를 걸어대니 실장급 고위 간부가 받더라. ‘이게 무슨 짓이냐’고 항의하니  ‘그런 일이 있나?’며 잡아떼다가 결국은 현관에 나와 ‘양해 부탁한다. 문 못 연다’고 하더라. 한 간부는 문 못 여는 이유에 대해 ‘코로나 방역 지침 때문’이라고 하더라. 어이가 없어 ‘누구나 드나드는 법원에 야당 의원만 오면 코로나가 번지나. 무슨 그런 방역 지침이 있나. 지침 내놓으라’고 항의했다.”

전주혜 의원의 말이다. “김인경 법원행정처 차장이 오전 10시 45분쯤 현관으로 와서 ‘통진당이 대법원의 선고를 앞두고 항의(방문)했을 때 매뉴얼이 만들어져 그에 따라 한(문을 막은) 것’이라고 하더라. 어이가 없더라. 어떻게 통진당 방문을 우리랑 연결짓나.”

김기현 의원의 계속되는 전언. “격분해서 현관 앞에 주저앉아 농성에 들어갔다. 30분은 족히 추위에 떨었다. 기자들이 이 모습을 촬영하자 당황했는지 그제야 문을 열어주더라. 대법원장 집무실이 있는 청사 11층에 올라가니 법원 측은 ‘대법원장 대신 조재연 법원 행정처장과 얘기하시라’고 하더라. 그래서 ‘조 처장이 아까는 손님 와서 바쁘다며 전화도 잘 안 받더니 그새 시간 생겼나’며 ‘우리는 대법원장 보러왔다’고 항의했다. 그러자 법원 측은 ‘대법원장 집무실 대신 응접실로 모시겠다’고 하더라. ‘우리를 응접실에 가둬놓고 대법원장은 도망갈 것 아니냐. 자꾸 이러면 복도에 앉아 농성하겠다’고 항의하니 결국 대법원장 집무실로 안내하더라. 면담에 조재연 행정처장이 배석했는데 끝날 무렵 ‘의원님들 막은 것 미안하다’고 하더라.”

‘김명수, 사퇴 생각 1%도 없어 보여’

유상범 의원은 “김 대법원장은 의원들의 추궁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는데 딱 한 가지 주제에만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판사 출신인 전주혜 의원이 “곧 대법관 2명이 교체되는데 우리법 연구회나 민변 등 친문계 코드 인사들을 앉히지 말라”고 요구하니 느닷없이 “새겨듣겠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유 의원은 “사퇴할 생각 없다는 심중을 드러낸 답변 아니겠나”고 했다. 전주혜 의원도 “내가 ‘코드 인사하면 안 된다’고 말하자 김 대법원장이 ‘안 그래도 대답하고 싶다’며 운을 떼더라”며“사퇴하고 싶은 마음이 1%도 없어 보였다”고 전했다.

사시·법대 동기끼리 난처한 만남

방문단 좌장인 김기현 의원은 김명수 대법원장과 사법고시(25회)와 사법연수원(15기) 동기다. 둘 다 59년생 동갑이다. 김명수 원장이 부산 출신인데, 김 의원도 부산에서 초·중·고를 졸업해 동향인 셈이다. 서울대 법대 동문이기도 하다. 김 원장이 77학번이고 김 의원은 재수 끝에 입학해 78학번이다.

그래서 당초 김 의원은 방문단장 역할을 고사했으나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대법원장 상대하는 자리에 검사 출신들만 가면 법원 입장이 묘해질 수 있다. 판사 출신인 김 의원이 가야 한다”고 해서 방문단을 이끌게 됐다고 한다. 그는 “면담 끝나고 나오면서 김 대법원장에게 ‘서로 난처한 상황에서 이렇게 만나 마음이 무겁다’고 한마디 했다”고 전했다.

“법관 독립 훼손한다”며 규탄 시위 막는 대법원·경찰
9일 서초구 대법원 청사앞에 130여개가 늘어선 김명수 대법원장 규탄 화환. [뉴스1]

9일 서초구 대법원 청사앞에 130여개가 늘어선 김명수 대법원장 규탄 화환. [뉴스1]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앞에 9일 ‘근조’ 화환이 130여개 늘어섰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정치 중립 위반과 거짓말 논란을 규탄하는 의미로 시민들이 보낸 것이다. 관리를 맡은 시민단체 ‘자유연대’ 김상진 사무총장은 “지난 7일부터 화환이 놓이기 시작해 이틀 만에 130개로 늘었다. 앞으로 200개는 더 놓일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지난해 10월엔 대검찰청사 앞에 윤석열 검찰총장 격려 화환이 350여개 놓였다. 11월엔 과천 법무부 청사 앞에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을 규탄하는 근조 화환이 340여개 놓인 바 있다. 당시 자유연대는 대검과 법무부 청사 앞에서 각각 윤 총장을 격려하고 추 전 장관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번에도 자유연대는 대법원 앞에서 김 대법원장을 규탄하는 ‘9인 시위’를 열 계획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법관의 직무상 독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집회를 금지해 논란이 일고 있다.

관할서인 서초경찰서는 “대법원(법원행정처)도 ‘규탄 시위가 법관의 독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지난 5일 우리 서에 우려를 표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화환 전시도 “법원 관계자의 진·출입을 방해해 법원 기능을 침해할 것이 우려된다”고 했다. 자유연대는 “김명수 대법원장의 정치 중립 위반을 규탄하는 시위여서 개별 재판의 독립에 영향을 미칠 일이 없다”며 금지 조치 집행 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김 사무총장은 “지난 2년간 대법원 앞에서 사법개혁을 요구하며 10번 넘게 시위해왔지만 한 번도 금지된 적 없다. 또 검찰도, 법무부도 청사 앞 시위를 문제 삼지 않았는데 대법원만 경찰에 비공개로 우려를 표시하며 집회를 틀어막는 이유가 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강찬호 논설위원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