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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TN 퇴출 한방 맞자, 中 "민족 단결 파괴" 英BBC 퇴출 맞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2일 자정 중국 국가라디오방송총국이 홈페이지에 올린 영국공영방송(BBC) 월드 채널 퇴출 통지문. [인터넷 캡처]

지난 12일 자정 중국 국가라디오방송총국이 홈페이지에 올린 영국공영방송(BBC) 월드 채널 퇴출 통지문. [인터넷 캡처]

중국의 최대 명절이던 지난 12일 춘절(春節·중국의 설) 자정 중국의 국가라디오텔레비전총국이 영국 BBC 월드 채널을 전격 퇴출했다. “사실·공정 보도라는 뉴스 원칙을 어기고 중국의 국가 이익에 손해를 끼쳤으며 중국의 민족 단결을 파괴했다.” 총국 홈페이지에 올라온 BBC 불허 이유다.
방송국 퇴출은 영국이 한발 앞섰다. 지난 4일 영국의 방송 통신규제기관오프콤(Ofcom)은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편집권이 없다며 중국국제방송국(CGTN)의 영국 내 방영권을 회수했다. CGTN이 영국 방송법이 불허하는 중국 공산당의 통제를 받고 있으며 시정 요구를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영국 오프콤 허가권을 바탕으로 유럽에 송출하던 CGTN은 지난 12일 독일에서도 송출이 중단됐다고 홍콩 명보가 14일 보도했다. 중국 CGTN의 송출이 유럽 전역에서 퇴출당할 가능성이 있다.
방송국 공방은 중국과 영국이 최근 벌인 충돌의 일각에 불과하다. 영국은 지난달 31일 국적법을 개정해 영국 해외국민(BNO) 여권을 지닌 홍콩인에게 영국 이민을 쉽게 바꿨다. 중국은 영국의 조치를 규탄하며 BNO의 신분증 기능을 불허했다.
2일에는 영국 BBC방송이 신장(新彊) 재교육수용소에서 조직적 강간이 있었다는 위구르족 여성의 증언을 보도했다. 3일에는 영국과 일본 외무·국방(방위)장관이 화상으로 ‘2+2회담’을 가졌다. 회의에서 영국 측은 올해 항공모함 퀸엘리자베스함을 동아시아에 파견해 중국에 맞서겠다고 발표했다. 20세기 초 러시아에 맞서 체결한 영일동맹의 부활이 연상된다는 평가가 나왔다.

지난해 8월 월스트리트저널에 실린 앵글로스피어 칼럼의 일러스트. 영어사용국가의 결집을 주장한 윈스턴 처칠이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의 국기가 그려진 풍선을 들고 있다. [WSJ 캡처]

지난해 8월 월스트리트저널에 실린 앵글로스피어 칼럼의 일러스트. 영어사용국가의 결집을 주장한 윈스턴 처칠이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의 국기가 그려진 풍선을 들고 있다. [WSJ 캡처]

영국은 공세 이유로 중국의 조약 위반을 내세웠다. 중국이 1984년 영국과 체결한 ‘중영연합성명’에서 홍콩 반환 후 50년간 고도 자치를 약속했지만, 지난해 중국이 홍콩 국가보안법을 강행하면서 약속을 위반했다는 주장이다.
중국은 영국의 주장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 2017년 외교부 대변인이 이미 “1984년 ‘중영연합성명’은 역사문건에 불과하다”며 “어떤 현실적 의미도 없다”고 반박했다.
영국의 공세에 영어 사용국가를 통칭하는 ‘앵글로스피어(Anglosphere)’가 지원에 나섰다. 호주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근원에 대한 국제조사를 요구했다가 중국의 거센 보복을 불렀다. 캐나다는 2018년 말 화웨이(華爲)의 멍완저우(孟晩舟)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미국의 요구로 체포했다. 캐나다·호주·뉴질랜드·영국의 첫 글자를 딴 ‘칸죽(CANZUK)’ 그룹과 미국은 이미 기밀을 공유하는 ‘파이브 아이즈’를 결성했다. 미국을 제외하면 모두 과거 대영제국에 속했던 영 연방 국가다.

 캐나다·호주·뉴질랜드·영국·미국으로 구성된 기밀 공유 국가 연합인 파이브 아이즈를 형상화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일러스트. [FT 인터넷 캡처]

캐나다·호주·뉴질랜드·영국·미국으로 구성된 기밀 공유 국가 연합인 파이브 아이즈를 형상화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일러스트. [FT 인터넷 캡처]

앵글로스피어는 중국 견제에 동맹국과 연대를 앞세운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출범과 맞물리면서 글로벌 중국 포위망으로 부상하고 있다. 중국은 반발했다. 지난해 11월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그들이 눈을 다섯 개 가졌든 열 개 가졌건, 중국의 주권·안보·발전이익을 해친다면 눈이 창에 찔려 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응수했다.
앵글로스피어는 아시아로 외연을 넓히고 있다. 중국과 육상 국경 분쟁을 벌이는 인도,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일본이 ‘쿼드(the Quad)’ 틀로 동참했다. 지난 9일 기드온 라흐만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칼럼니스트는 “미국이 중국에 반격할 동맹국을 찾을 때, 앵글로스피어와 아시아 민주주의 대국의 결합이 가장 유망한 조합”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은 앵글로스피어의 포위망에 맞서 새로운 외교 전략을 다듬고 있다. 힘을 기르며 때를 기다린다는 ‘도광양회(韜光養晦)’ 노선에서 ‘싸우지 않는 경쟁’을 일컫는 노자(老子)의 ‘부쟁지쟁(不爭之爭)’ 외교로 진화했다는 분석이다. “다툴 마음이 아예 없어 세상에 그와 다툴 수 있는 자가 없다(夫唯不爭 故天下莫能與之爭)는 노자 도덕경 22장이 중국의 다음 전략”이라고 위안미창(袁彌昌) 홍콩대 명예 강사가 9일자 명보 칼럼에서 전망했다. 알렉스 로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칼럼니스트 역시 지난 9일 “위험하고 책임감 없는 중국의 부상은 위험하고 책임감 없는 미국의 쇠퇴, 브렉시트 이후 독자적이고 능동적인 유럽연합(EU)의 부상과 함께 보아야 한다”며 “앵글로스피어의 소환은 (영·미권의) 힘이 아니라 나약함과 쇠퇴에서 나온 전략”이라고 평가절하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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