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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그저 오래 살고 싶다는 헛된 욕망 가진 분에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79)

올해 은퇴한 60세의 지인에게 소원을 물었더니 앞으로 15년만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답한다. 젊었을 적에는 거의 죽음을 생각하지 않았는데 60세가 되니 비로소 여명에 대해 생각이 미치는 모양이다. 우리나라 남성의 기대수명이 80세이고 건강수명이 70세이니 남들보다 5년만 더 건강하게 살았으면 하는 소망이다. 지금부터라도 건강관리를 잘한다면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런데 그 기간에 무엇을 하며 보낼 것인지가 궁금하다.

70세가 된 사람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더니 그도 역시 15년만 잘 살았으면 하는 것이 소원이었다. 위의 사람도 그랬는데 왜 하필 15년일까. 10년은 왠지 짧은 거 같고 20년은 욕심인 거 같아 그렇게 타협했다고 한다. 기대수명보다 5년만 더 살고 싶다는 소원인데 그것도 노력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실제로 우리 주위를 보면 80세가 넘어서도 일상생활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다만 그때까지 건강하게 살려면 남들 못지않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90세인 노인은 어떨까. 19세기 일본의 화가 가츠시카 호쿠사이는 90세까지 장수했다. 지금 기준으로도 그렇지만 당시 사람으로서는 꽤 오래 산 셈이다. 그런 그도 임종 때 5년만 더 살 수 있다면 진정한 작품을 만들 수 있었을텐데 그러지 못함을 아쉬워했다. 이렇듯 사람은 누구나 오래 살기를 기원한다. 다만 그에겐 70세부터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는 분명한 소원이 있었다.

모두 오래 살기를 바란다. 다만 장수하기 원한다면 그 기간에 무엇을 해야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이나 꿈이 있어야 한다. [사진 unsplash]

모두 오래 살기를 바란다. 다만 장수하기 원한다면 그 기간에 무엇을 해야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이나 꿈이 있어야 한다. [사진 unsplash]

임종을 앞둔 환자의 소원은 어떨까. 서울대병원 암 전문의가 전한 얘기다. 환자는 70세의 노인이었다. 그는 자신의 기대 여명을 듣고 10년만 더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의사가 판단하기에는 올해까지 버티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진찰할 때마다 ‘10년만 더’를 소원했다. 의사는 환자가 현실을 받아들였으면 했는데 환자는 그렇지 않았다.

하루는 의사가 욕심인 줄 알면서 환자에게 물었다. “10년 더 사시면 뭘 하고 싶으세요?” 그의 질문에 환자는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뭐 그런 거 있잖아요,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가고 싶다거나, 하는 거요.” 의사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환자가 소원을 이루었으면 해서 여러 번 질문을 던졌는데 환자는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막연히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만 있었을 뿐 구체적인 계획이나 소망이 없었다.

반면 70세의 또 다른 노인 환자는 그렇지 않았다. 하루는 의사에게 얼마나 더 살 수 있는지 물었다. 생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에게 에둘러 말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므로 의사는 솔직히 6개월 이상은 생존하기 어렵다고 답해주었다. 환자는 남은 시간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다 해보고 떠나야겠다며 본인의 결심을 말했다. 그 후부터 그는 매주 하나씩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시작했다. 아내와 바닷가로 여행가기, 좋아하는 노래 모아 자식들에게 선물하기, 고향 사람에게 밥 사주기, 예전에 싸웠던 친구에게 연락하기 등등. 그는 병원에 올 때마다 지난주에 했던 일을 얘기하며 즐거워했다. 그리고 진작에 이렇게 살았어야 했는데 하며 아쉬워했다.

거의 같은 시기에 운명했지만 한 사람은 그저 오래 살기만 바라다가 그러하지 못한 원망을 안고 세상을 등졌다. 임종의 시기에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내세가 결정된다는 주장도 있는데, 만약에 그렇다면 그의 내세가 걱정된다. 다른 한 사람은 오래 살고 싶다는 헛된 욕망을 저버리고 남은 시간을 가족 이웃과 함께 알차게 보냈다. 이생에서의 이별은 슬픈 일이지만 그래도 가족들에게 좋은 기억을 남기고 떠났다.

생명을 가진 존재라면 다 오래 살기를 바랄 것이다. 다만 장수하기 원한다면 그 기간에 무엇을 해야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이나 꿈이 있어야 한다. 이런 꿈이 있다면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 평소 몸 관리에도 힘쓸 테니 당연히 오래 살 가능성이 크다. 에베레스트 산을 등정하고 싶다는 사람이 마약이나 알코올에 취해 살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하느님도 소망을 이룰 수 있도록 그의 여명을 늘려줄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환자가 임종을 앞두고 만나보고 싶은 가족이 올 때까지 숨을 거두지 않는 사례도 있다.

꿈이라면 어떤 꿈을 가져야 할까. 꿈이 잘 떠오르지 않을 때는 만약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산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로 시작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사진 unsplash]

꿈이라면 어떤 꿈을 가져야 할까. 꿈이 잘 떠오르지 않을 때는 만약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산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로 시작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사진 unsplash]

꿈이라면 어떤 꿈을 가져야 할까. 달나라에 가고 싶다거나 큰 부자가 되고 싶다거나 하는 비현실적인 것보다 노력하면 달성할 수 있는 꿈이면 좋겠다. 그 강도는 약간 높은 것이 바람직하다. 너무 높으면 포기하기 쉽고 너무 낮아도 해야 할 동기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꿈이 잘 떠오르지 않을 때는 만약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산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로 시작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호스피스 간호사의 전언에 의하면 사람은 살아온 대로 죽는다고 한다. 그래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얼굴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임종을 6개월 앞둔 말기 암 환자가 그 시간을 알뜰히 쓰려고 노력했던 것에 비하면 지금 우리는 훨씬 여유가 있는 편이다. 그때 가서 허둥지둥하기보다 좀 더 효율적으로 남은 생을 설계할 수 있다. 현재의 삶에서 소망하는 바를 이룬다면 아마 임종 시에도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해가 바뀐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설 연휴다. 흔히 친인척 또는 지인들이 올해 소원을 물을 텐데 무슨 꿈을 갖고 있으며 어떤 노력을 꾀하고 있는지 서로 관심사를 나누는 것도 좋겠다. 그러다가 자신과 같은 가치관을 지니고 있거나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것보다 반가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가 평생 인생을 나눌 동지가 될 수도 있다. 이번 설에는 연휴를 이용해 우선 나만의 꿈을 한번 그려보자.

아름다운 인생학교 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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