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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남의 떡이 커 보인다" 새해 이직하려는 직장인에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76)

직장인은 한곳에 오래 다니다 퇴직하는 것을 선호할까, 아니면 대우가 좋은 직장을 찾아 옮겨 다니는 것을 선호할까? 한 직장에서 근무하기를 원했으나 타의에 의해 여러 직장을 전전한 사람도 있겠고, 좋은 직장을 찾고 싶었으나 여의치 못해 한 직장에만 근무했던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거에는 직장을 자주 옮긴 사람을 애사심이 부족하다고 경계했으나 요즘엔 한 직장에만 근무한 사람을 오히려 능력 없는 사람으로 폄훼하는 경영인도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한 회사가 소위 단자회사라고 불리던 투자금융사였다. 단자회사라면 생소한 사람도 있겠지만 하나은행의 전신이 바로 단자회사였던 한국투자금융이다. 사금융을 제도금융으로 유입하기 위해 나라에서 인가한 금융회사였다. 금융 수요가 항상 공급을 초과했던 때라 단자회사는 호황을 누렸다. 수익이 높다는 소문이 나자 정부에선 몇몇 그룹에 단자회사의 신설을 추가로 허가했다.

새로 인가받은 회사에선 경력자가 필요했기에 기존회사에 있던 사람들을 스카우트했다. 나도 회사 설립을 주도했던 지인과의 인연으로 그때 새로 설립된 회사로 전직했다. 그리고 전 직장의 경력을 살려 인사업무를 맡았다. 창업을 준비하며 여기저기서 뽑은 경력직원의 직책과 호봉을 책정하기 위해 호텔 방을 빌려 야근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금융회사는 순환보직이 원칙이라 그 후 다른 부서에서 근무하다가 인사부로 다시 돌아왔다.

구조조정의 명분을 살리려면 사실 윗사람부터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만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사진 pixabay]

구조조정의 명분을 살리려면 사실 윗사람부터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만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사진 pixabay]

인사부장으로 근무할 때다. 외부에서 새로 사장이 영입되었다. 어느 날 회의 끝에 금융 업황이 좋지 않다며 인력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기업의 자금조달 방법이 다양해져금융의존도가 전보다 낮아졌고 파이는 한정되어 있는데 금융회사의 수가 많아 금융업의 수익이 점점 떨어지던 시기였다.

금융업이 비교적 안정된 직장이라 나이든 직원의 수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소위 인력구조조정이라는 게 뭔가. 한마디로 인건비가 높은 상위 직급의 직원을 내보내는 작업이다. 회사를 운영하는 경영자로서는 다소나마 인건비를 절약하고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구조조정의 명분을 살리려면 사실 윗사람부터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만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하루는 인사를 담당하는 다른 회사의 부장들과 미팅을 가졌던 적이 있다. 휴식 시간 중에 한 사람이 웃으며 “우리 회사 사장들의 공통점이 무언지 아냐?”고 물었다. 뜬금없는 소리에 다들 궁금해하자 그가 한마디로 직원을 잘 자르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몇 사람이 그렇다며 거들었다. 냉소적인 탄식이지만 사장에겐 어느 정도 냉정함도 필요하다.

인사부에서 회의를 거듭한 끝에 인력구조대상 지침이 만들어졌다. 요즘 은행의 명예퇴직처럼 직급에 따라 연봉의 얼마를 가산해주는 조건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직원들의 반발이 심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남아 있는 동료들의 마음도 편치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직원들의 사표를 수리해 인력구조조정이 거의 마무리되었을 때 나도 사표를 냈다. 떠나가는 직원들의 등을 떠밀며 자리를 지키고 있자니 면목이 서지 않았다.

회사를 그만둔 후 얼마 되지 않아서 IMF 외환 위기가 우리나라를 급습했다. 여러 회사가 살아남기 위해 회사조직을 축소했다. 적지 않은 사람을 내보낸 건 물론이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많은 회사가 문을 닫았다. 그중에는 은행도 있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정부에서 인가받은 은행이 문을 닫는 건 상상하기 어려웠던 때다.



직장에 사표를 낼 때만 하더라도 다른 회사에 취업하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IMF 같은 비상사태가 벌어지자 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모두 사람을 내보내려고만 했지 새로 채용하려는 곳이 거의 없었다. 노력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대학원에 등록하고 평소 하고 싶던 공부를 시작했다. 하루는 전 직장에서 알고 지내던 지인에게 안부 전화가 왔다. 근황을 묻더니 수일 내에 들리라고 한다. 얼마 후 그의 추천으로 새로운 회사에 들어갔다.

하기 싫다고 생각하면 점점 더 스트레스를 받는 게 회사 일이다. 그러니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를 권하고 싶다. 자신이 맡은 일을 좋아하면 그런대로 할 만한 게 또 직장생활이기 때문이다. [사진 pixabay]

하기 싫다고 생각하면 점점 더 스트레스를 받는 게 회사 일이다. 그러니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를 권하고 싶다. 자신이 맡은 일을 좋아하면 그런대로 할 만한 게 또 직장생활이기 때문이다. [사진 pixabay]

일전에 잡코리아에서 직장인 540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조사해보니 대상자의 48.1%가 새해에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이직을 계획 중이란 답변은 대리급에서 52.0%로 가장 높게 나타났고 다음으로 과장급 이상(49.4%), 사원급(46.4%) 순이었다. 이렇게 많은 직장인이 이직을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에 솔직히 놀랐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그냥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자기의 역량을 발휘하라고 권하고 싶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말도 있듯이 회사를 옮겨보았자 전의 회사보다 크게 나을 것도 없기 때문이다. 차라리 지금 근무하는 회사에서 일을 성실하게 하는 편이 낫다. 직장생활을 돌이켜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기보다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어떤 일이 좋아 보여도 막상 그 일을 맡아보면 기대만큼 못한 걸 뒤늦게 알게 된다. 직장 내에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거의 없다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 로스쿨 도입으로 변호사 인기가 전보다 못하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이 선망하는 직업이다. 그러나 당사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모 법무법인에서 일하던 젊은 변호사가 있었다. 재직 중 거래 기업과의 소송 때문에 가끔 만났는데 어느 날 그가 변호사란 직업도 힘들다고 한다. 그러면서 ‘좀 더 재미있는 일은 없을까요’ 하며 물었다. 재판 서류가 담긴 가방을 하나 들고 오전엔 본원에 갔다가 오후엔 다른 지원으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이 보기 안타까웠다.

하기 싫다고 생각하면 점점 더 스트레스를 받는 게 회사 일이다. 그러니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를 권하고 싶다. 자신이 맡은 일을 좋아하면 그런대로 할 만한 게 또 직장생활이다. 회사 밖에 있는 여러 사람이 지금도 그곳에서 일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만약 꼭 이직하겠다면 현재 근무하고 있는 회사에서 좋은 평을 받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만 다른 회사로 옮길 수 있다. 그러다 보면 혹시 자신의 회사가 다시 좋아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 전직을 해도 늦지 않다.

아름다운 인생학교 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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