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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손" 임종기 환자가 떠날 때 하는 마지막 말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78)

임종기에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지할 수 있는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지 2월로 3년이 된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이 2020년 12월 말 기준으로 공개한 자료를 보면 그동안 서류로 연명의료 중단 의사를 밝힌 사람은 모두 79만 명이다. 시행 첫해에 10만 명, 두 번째 해에 43만 명으로 증가하더니 지난해에는 25만 명에 그쳤다. 연명의료 중단에 관심 있는 사람이 주로 시니어라고 가정하면 50세 이상 인구의 약 4% 정도가 동의한 셈이다.

대중매체에서 그동안 간간이 다루긴 했으나 시행 3년이 되었으니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치료가 무엇인지 그리고 보완해야 할 점은 없는지 다시 한번 점검해보는 것도 필요할 듯하다. 뉴스를 통해 용어는 들었지만 그게 정확히 어떤 치료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시민도 적지 않다. 연명 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치료에는 무엇이 있을까. 법률 시행 첫해에는 인공호흡기 착용·심폐소생술·혈액투석·항암제투여 네 가지였고, 이듬해에 체외생명유지술(ECMO)·수혈·혈압상승제 치료가 추가되었다.

인공호흡기를 착용하는 것은 어떤 치료일까. 환자가 자기 의지로 호흡할 수 없을 때 관을 기도에 넣고 강한 압력으로 공기를 주입하는데, 자발 호흡을 억제해 고통이 무척 크다. 임상에서는 고통을 줄이기 위해 대개 진정제를 사용한다. 한번은 호흡기내과 의사에게 그 고통이 어떠한지 물었다. 그는 내게 밥을 먹다가 생선 가시가 목에 걸린 일이 있냐고 물었고, 그렇다고 답하자 그때 어땠느냐고 다시 물었다. 몹시 괴로웠다고 얘기하니 생선 가시가 목에 걸려도 그러한데 굵은 구경의 관을 목에 삽입했을 땐 어떠하겠냐며 은유적으로 설명했다.

인공호흡기를 착용했을 때의 더 큰 문제는 환자가 의사표시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호스피스 간호사에 의하면 환자가 의식이 살아 있을 때 마지막에 하는 말이 있다. 말할 기운이 없어 길게 얘기하지도 못한다. 바로 ‘손’이라는 한 마디다. 저승 가는 길이 두려워 손이라도 잡고 싶다는 바람이다. 그러나 인공호흡기를 삽관한 상태에서는 그런 말조차 할 수 없다. 얼마간 생명을 연장하고자 보호자도 없는 중환자실에서 기계 소음에 시달리며 혼자 세상을 떠나야 한다면 그건 환자가 원하는 죽음이라 할 수 없다.

얼마간 생명을 연장하고자 보호자도 없는 중환자실에서 기계 소음에 시달리며 혼자 세상을 떠나야 한다면 환자가 원하는 죽음이라 할 수 없다. [사진 unsplash]

얼마간 생명을 연장하고자 보호자도 없는 중환자실에서 기계 소음에 시달리며 혼자 세상을 떠나야 한다면 환자가 원하는 죽음이라 할 수 없다. [사진 unsplash]

심폐소생술은 심장이 정지되었을 때 시행하는 치료다. 과거엔 의사가 직접 심장을 마사지하여 뛰게끔 하였으나 심폐소생술이 개발되어 어느 정도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환자를 도울 수 있다. 그러나 건강한 사람이 갑자기 심정지 상태가 되어 응급처치를 받는 경우와 달리 이미 기력이 쇠해 임종을 앞둔 환자에게 시행하는 경우는 효과가 다르다. 후자의 경우 거의 소생하는 예가 드물다. 심폐소생술을 하는 도중 기도로 혈액이 역류하기도 하고 갈비뼈가 부러질 수도 있어 결국 고통 속에 죽는다. 임종기 환자는 심폐소생술 이전에 이미 신체 쇠약으로 기능이 현저히 떨어져 자연사 과정에 있는 사람이다. 이미 전신의 생물학적 기능이 멈추었는데 심장마사지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임종기는 종교를 믿는 사람이 자기가 믿는 신에게 귀의하고자 조용히 기도를 드리는 시간이다. 죽어가는 순간에 어떤 마음을 갖느냐에 따라 내세가 결정된다는 주장도 있다.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지나온 시간을 회상하며 마음을 순화하는 시간일 수도 있다. 이런 소중한 시간에 가슴을 심하게 억누르고 압박한다면 환자로서는 극적인 기회를 놓치는 셈이다.

예일대 의대 교수인 셔윈 B. 누랜드는 일부 의사가 자신의 영향력을 보여주려고 환자의 호흡이 멈추는 시간을 뒤로 미룬다고 개탄했다. 그런 의사의 시도는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주어진 권리를 빼앗는 행위다. 누랜드는 생을 좀 더 연장하기 위한 헛된 노력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마지막 순간에 대한 결정권도 전문의에게 넘기지 않을 것이며 자기 방식대로 결정하거나 아니면 자신을 잘 아는 사람과 의논해 결정할 생각이라고 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가정의 제도가 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다.

2019년 새로 추가된 체외생명유지술(ECMO)은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치료다. 에크모는 심장과 폐 양쪽에 문제가 있어 인공호흡기만으로는 정상적인 체내 산소 공급이 어려운 중환자에게 산소를 공급하는 장치다. 환자의 몸에서 혈액을 모두 빼내 기계를 통해 돌리면 그 과정에서 혈액 속의 이산화탄소를 제거하고 산소를 보충해 다시 체내로 보내는 일종의 몸 밖에 있는 심장과 폐의 역할을 한다.

인공호흡기를 달 때 환자가 호흡기를 언제 뗄 수 있을지 모르는 것처럼 에크모도 장착한 후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비용도 매우 고가다. 어느 의사가 밝힌 자료에 의하면 인공호흡기와 에크모를 동시에 단 환자가 50일간 치료하는데 에크모 비용만 2000만 원이 넘었다고 한다. 에크모의 비용이 1억 원을 넘는 사례도 있다. 자칫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매달리다가 가산을 탕진할 수 있다.

자식들은 평소 부모를 잘 모시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임종기에 있는 부모의 생명을 어떻게 해서든지 연장하려고 한다. [사진 unsplash]

자식들은 평소 부모를 잘 모시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임종기에 있는 부모의 생명을 어떻게 해서든지 연장하려고 한다. [사진 unsplash]

이러한 배경에는 가족의 잘못된 효 개념과 의료의 산업화가 존재한다. 자식들은 평소 부모를 잘 모시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임종기에 있는 부모의 생명을 어떻게 해서든지 연장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치료로 인해 환자가 받는 고통은 그다음이다. 이래서는 곤란하다. 그보다는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염두에 두고 치료에 임할 필요가 있다.

의사도 사실 이런 기준을 갖고 환자를 치료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의사의 사명이라는 생각과 자신이 속한 직장의 이익을 고려해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택하기 쉽다. 병원은 장시간 환자에게 자세히 설명하는 의사보다 고가의 검사를 많이 시행한 의사를 선호하는 구조다. 진료 수입에 연동해 의사의 연봉을 책정하는 대신 환자의 만족도를 평가요소에 반영할 수 있다면 우리나라 의료의 질이 훨씬 나아지지 않을까. 의사도 물론 환자에게 시간을 많이 할애하고 싶다. 하지만 현행제도로는 그러하기가 어렵다.

연명의료결정법에서 보완이 되었으면 하는 치료가 하나 있다. 바로 인위적인 영양 공급이다. 몇 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부터 기력이 쇠해선지 자리에서 잘 일어나지 못했다. 음식물 섭취도 내가 몸을 부축해야 간신히 일어나 드셨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유동식조차 삼키기 힘들었다.

가족들과 상의한 끝에 어머니를 모시고 집 근처에 있는 종합병원에 갔다. 어머니를 진료한 의사는 특별한 병이 없고 노화의 한 증상이니 병원에서 해줄 것이 없다며 집으로 모시기를 권유했다. 어머니는 얼마 후 집에서 가족들의 보살핌 속에 임종하셨다. 지금 생각해도 그 의사가 참 고맙다. 자칫하면 비위관이나 위루술을 통해 인위적인 영양 공급을 받으며 병원에서 힘든 날을 보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음식물을 삼킬 수 없다는 것은 이제 수명을 다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의학은 굶겨 죽일 수는 없지 않냐는 논리로 환자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영양을 공급한다. 현행 연명의료결정법도 영양 공급은 연명의료 중단의 대상이 아니다. 당사자들의 생각은 어떨까. 2011년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에서 환자·보호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전체 564명 중 96%인 545명이 자기 의사에 반하는 인위적인 영양 공급을 원치 않는다고 답했다. 물론 개중에는 영양 공급을 원하는 환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영양 공급 여부를 연명의료 중단의 대상에 포함하여 환자의 의사에 따라 시행했으면 좋겠다.

무의미한 연명의료 중단은 사전의료의향서로 신청할 수 있으나 평소 가족과 죽음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필요하다. 죽음이 가까이 왔을 때 어떤 돌봄을 원하는지, 자신이 의식이 없다면 어떻게 해주었으면 좋겠다든지, 삶의 막바지에서는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받고 싶다든지 하는 의사를 미리 얘기해주면 임종이 가까워졌을 때 가족들이 당황하지 않고 대처할 수 있다.

본인의 장례에 대해서도 의견을 밝혀두는 것이 좋다. 매장을 원하는지, 아니면 화장을 원하는지, 수의와 관의 종류, 부고를 알릴 사람의 명단, 장례식의 방법 등이 그런 것이다. 가족들은 왜 벌써 그런 얘기를 하느냐며 외면하기보다 잘 경청해 사후 가족 간의 의견 차이에서 오는 불협화음을 방지하고 서로 죽음에 대해 성찰하는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 이런 시간을 통해 가족 간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면 그건 덤이다.

아름다운 인생학교 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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