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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나는 향·소·부곡민”…노무현 비주류 마케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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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왜 (당을) 나갑니까”(8일)

“제 사전에 탈당은 없습니다”(9일)

이재명 경기지사가 연일 더불어민주당 탈당설을 부인하고 나섰다. 앞은 언론 인터뷰 중 질문에 대한 대답이고, 뒤는 이튿날 개인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일부 친문(親文ㆍ친문재인) 지지자들로부터 거센 공격을 받는 이 지사지만, 공개적인 탈당 압박도 없는 상황에서 왜 굳이 탈당설을 적극적으로 거론한 걸까.

이재명 경기지사. [뉴스1]

이재명 경기지사. [뉴스1]

표면적으론 “이참에 탈당 논란을 아예 털고 가자”(경기도청 관계자)는 이유가 있지만, 오히려 “탈당설을 적극 거론한 건 그만큼 당 주도권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는 뜻”(이종훈 정치평론가)이란 분석도 있다. 언제나 ‘아웃사이더’로 취급받던 이 지사였지만 이번엔 자신을 향한 탈당 요구를 “극히 소수의 소망사항”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2018년 탈당설엔 납작 엎드렸던 이재명

이 지사의 태도는 실제로 탈당 압박에 시달렸던 2018년 때와 대비된다. 2017년 대선 경선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격렬하게 붙었던 이 지사는 이후 친문 지지자들의 공적(公敵)이 됐다.

특히 2018년 6ㆍ13 지방선거를 앞두고선 이른바 ‘혜경궁 김씨’ 트위터 논란이 크게 번졌다. 문재인 대통령 비방 글을 올린 ‘@08__hkkim’이라는 트위터 계정 주인이 이 지사의 아내 김혜경씨 아니냐는 의혹이다. 경기지사 경선 경쟁자이자 친문 핵심인 전해철 의원이 이 의혹을 적극적으로 제기했고, 관련해서 경기도 선거관리위원회에 고발까지 했다.

그해 7월엔 당권에 도전 중이던 친문계 김진표 의원에게서 공개 탈당 압박을 받았다. 당시 김 의원은 기자간담회에서 이 지사의 ‘조폭 유착 의혹’을 거론하며 “(탈당 여부에 대해) 어떤 일이 옳은 건지 본인이 결단하라”고 말했다. 당내 압박이 이어지면서, 10월 경기도 국정감사에선 야당 의원이 이 지사에게 “최근 당내 문재인 정권 실세로부터 자진 탈당 압력을 받은 적이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이에 이 지사는 “그런 말을 하는 분이 있었다"고 답했다. 또 다른 야당 의원이 “이 지사가 엄청난 압박을 받아서 안 됐다는 느낌도 있다”고 하자 이 지사는 “인생무상”이라고 답했다.

2018년 10월 19일 이재명 경기지사가 경기 수원시 경기도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기도 국정감사에 참석한 모습. 이날 “문재인 정부 실세로부터 탈당 권유를 받은 적 있나”라는 야당 의원 질의에 이 지사는 “그런 말을 하는 분이 있었다”고 답했다. [연합뉴스]

2018년 10월 19일 이재명 경기지사가 경기 수원시 경기도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기도 국정감사에 참석한 모습. 이날 “문재인 정부 실세로부터 탈당 권유를 받은 적 있나”라는 야당 의원 질의에 이 지사는 “그런 말을 하는 분이 있었다”고 답했다. [연합뉴스]

이즈음 이 지사는 “작년 대선 경선 때 제가 싸가지 없고 선을 넘은 측면이 분명히 있다”(10월 라디오 인터뷰), “문재인 정부에 누가 되는 일을 하지 않겠다”(11월 트위터)는 고해성사를 했다.

◇‘비주류’ 강조…“노무현 케이스와 비슷”

이 지사가 탈당설과 함께 스스로 ‘비주류’임을 강조한 것도 여러 해석을 낳는다. 이 지사는 지난 8일 탈당설을 부인하는 과정에서 “저의 위치를 굳이 골품제로 본다면 성골ㆍ진골ㆍ육두품도 아니고 향ㆍ소ㆍ부곡 출신 정도일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미천한 신분 탓에 탈당이라는 음해에 시달린다는 취지다.

장성철 공감과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이를 “교묘한 이중 포석”이라고 말했다. “탈당설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면서 비주류임을 강조하고, ‘나는 비주류이기 때문에 오히려 당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메시지”라는 설명이다. 박상헌 정치평론가는 이런 전략이 “비주류였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새 정치’ 아이콘으로 떠오르며 환호받았던 케이스와 비슷하다”며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비주류를 강조하는 건, ‘이재명 정부는 문재인 정부와는 다르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한때 족쇄로 여겨진 출신 성분이 이제 그의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지사도 앞서 지난해 11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비주류라고 하는 것은 기회보다는 위기가 많은 삶을 말한다”면서도 “오히려 그런 것들이 지금은 더 큰 자산이 된 것 같고, 저한테는 플러스 요인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재명 계속 때리는 친문 임종석

한편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10일 기본소득을 핵심 정책으로 내세운 이재명 경기지사를 또 한 번 비판했다. 이 지사가 전날 페이스북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기본소득을 지지했다”고 밝힌 것에 대해, 임 전 실장은 페이스북에 “이탈리아어로 salariouniversale, 우리말로 옮기면 ‘보편적 기본임금’”이라며 “이는 생활임금제와 비슷한 개념”이라고 말했다. 생활임금제는 노동자에게 최저임금 이상의 소득수준을 보장하자는 것이므로, 노동과 관계없이 주는 기본소득으로 해석한 건 잘못됐다는 취지다. 임 전 실장은 지난 8일에도 이 지사를 겨냥 “지도자에게 철학과 비전만이 필요한 게 아니라, 때로는 말과 태도가 훨씬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준영 기자, 김수현 인턴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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