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김동호의 시시각각

‘일주일 천하’ 게임스톱 사태의 교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

전 세계 증시 열기가 뜨겁다. 그 속에 비관과 낙관이 엇갈린다. 거품이 곧 꺼진다는 공포와 함께 지금이 가장 쌀 때라는 투자 유혹이 교차한다. 문제는 아무도 하루 앞 주가를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 가운데 ‘빚투’와 ‘영끌’이 가열되고 있다. 이참에 큰돈을 벌어 조기에 퇴직하자는 ‘파이어(FIRE)족’부터 나만 낙오될세라 투자하는 ‘포모(FOMO)족’까지 가세한다. 반(反)시장적 부동산 정책 때문에 ‘벼락거지’가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마지막 희망을 걸어 보는 형국이다.

대박 꿈꾸며 ‘빚투·영끌’ 주식 광풍 #기업 실적 안 좋으면 실패 확률 커 #박현주 “직장에 열정 가져야 성공”

이 주식 광풍에서 주식 초보자 ‘주린이’가 대거 뛰어든 동학개미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정답은 없지만 마침 참고할 만한 조언을 접했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의 유튜브 방송이다. 그의 얘기는 매우 흥미로웠다. 주식에 대해 큰 그림을 보여줬다.

그의 생각을 간추리면 이렇다. ① 종목보다는 산업 트렌드를 본다. 종목 선정은 틀릴 수 있고 지수 예측은 불가능하다. ② 지수를 볼 필요가 없다. 코스피지수 3000은 상징적일 뿐이다. ③ 우량주 장기 투자가 답이다. 예컨대 월급의 20%를 계속 투자하라. ④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사들인 주식을 자주 보지 않고 트렌드를 보라. 단기 등락은 중요하지 않다. ⑤ 나에게 특정 종목의 주가를 묻는다면 대답하지 못한다.

뻔해 보이는 ‘박현주의 주식 투자 5대 원칙’에는 핵심 함의가 들어 있다. 개인투자자는 증시를 절대 이길 수 없다는 불변의 법칙이다. 기업은 살아 있는 생물이라서 그 기업 가치가 언제 바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박 회장은 혹여 주식 투자를 할 거면 ETF(상장지수펀드)를 권한다고 했다. ETF는 분산투자가 가능한 펀드의 장점을 살리면서 주식처럼 언제든 직접 사고팔 수 있는 투자상품이다. 예컨대 배터리 관련 종목만 모아놓거나, ESG(환경보호·사회책임·투명경영) 관련 기업만 모아놓은 ETF가 있다. 개별 종목이 아니라 특정 산업 전체를 투자하는 셈이다. 산업 트렌드는 오래 가니까 장기투자에 적합하다. 그는 ETF를 세계적인 발명품이라고 극찬했다.

박 회장의 이야기 중 압권은 의외로 주식과 관련 없는 얘기로 들리는 내용이었다. “책을 많이 읽고, 열린 마음으로 늘 겸손하며, 전문성을 키워라. 무엇보다 직장에 열정적으로 다녀라”였다. 명불허전의 ‘구루(guru)’다운 통찰이다. 한마디로 주식 투자에 너무 몰두하지 말라는 조언이다. 그래서 성공하는 사람 못 봤다는 얘기다. 이 당부는 100세 시대 은퇴 전문가로 활약하는 강창희 트러스톤연금교육포럼 대표를 포함해 주식과 노후 준비의 달인들이 한목소리로 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개미군단 ‘로빈후드’는 어떻게 될까. 비디오 게임 대여 사업을 하는 게임스톱의 공매도에 맞서 헤지펀드를 혼내줬다. 하지만 이 집단행동은 일주일 천하로 사실상 막을 내렸다. 실적이 나쁜 기업을 시장에서 걸러내는 공매도의 순기능을 똑똑히 보여주면서다. 공매도는 미국에서 1830년 도입된 뒤 기관투자가가 마음껏 휘둘러 온 것이 사실이다. 개미들은 공매도 폭탄을 맞아 손실을 보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도 헤지펀드가 개미들의 투자 패턴을 들여다봤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그 의혹을 들여다보고 있다. 불공정이 드러나면 합당한 처벌을 받으면 된다.

주식 광풍의 본질은 게임스톱 사태를 통해 다 드러나 있다. 헤지펀드든, 개미든 시장을 이길 수는 없다. 박 회장조차 2007년 중국 시장에 기대를 걸고 인사이트펀드를 내놓았다가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공매도를 금지하고 로빈후드처럼 SNS에서 뭉치면 헤지펀드를 혼내주고 주가를 지킬 것 같지만 며칠 가지 못한다. 주가는 기업의 실적으로 정해지고, 그 실적은 인간의 땀과 노동에서 비롯된다. 박 회장의 조언도 맞닿아 있다. “직장 열정!” 주식 투자는 그다음이다.

김동호 논설위원